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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순 Jun 06. 2023

엄마의 아침 식탁 14

나는 실패했다

오늘 아침은 감자수프다. 어제 삶아 호호 불어가며 껍질을 벗겨 먹은 감자가 두 세알 남았다. 양파와 마늘을 올리브유에 볶다가 두유와 삶은 감자를 넣어 으깨듯 저어준다. 약간의 소금과 후추가 감칠맛 담당이다. 엄마식탁엔 감자수프와 카스텔라를 내고, 나는 텃밭 채소에 발사믹 소스와 국간장, 매실청을 끼얹어 빵에 끼워 먹는다. 찬 샐러드를 먹을 때 익은 채소를 곁들이면 좋다. 프라이팬에 버섯과 양파를 기름 없이 볶는다. 버섯과 양파에서 나오는 수분이 기름을 대신한다. 역시 감칠맛 담당은 소금과 후추다.


'나는 실패했다'


작년, 어느 글쓰기 모임에서 마주한 문장이다. 나는 글쓰기 모임의 마지막 프로그램, 참가자가 쓴 글을 자신의 소리와 몸짓으로 낭독하는 시간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주어와 술어로 구성된 저 단순한 문장이 지닌 힘은 강력했다. 글을 쓴 당사자와 그것을 읽고 듣는 동료 참가자들 모두 숨을 골랐다. 글쓴이가 울먹이며 그러나 단호하게 자신의 문장을 읽을 때 나 역시 잠시 숨을 멈췄다.

 

나는 여전히 선언의 힘을 믿는다. 그러나 선언이 곧바로 미래를 향하는 것일 때 주춤댄다. 과거를 복기하는 선언, 자신의 아픔을 길어 올려 직면하는 태도, 나에게 앞으로도 선언이 요구된다면 나의 선언은 그런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작년에 마주했던 문장, '나는 실패했다'라는 문장을 일 년이 지난 지금 더 자주 떠올린다. 어쩌면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실패의 '경험'이 아니라 실패의 '인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들어 지금껏 해 온 일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불행했다는 이들을 자주 만난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나의 실패를 인정했기 때문일 게다. 나는 그들의 직면을 사랑한다. 성공과 행복에 저당 잡히지 않고 실패와 불행을 선언하는 이들. 그들 덕분에 내 실패담을 풀어낼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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