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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순 Aug 0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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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까, 를 해보기 2. 모르는 길 안 물어보고 가기

여행에 관한 얘기는 아니다. 미지의 영역에 발을 담그는 일이니 여행이 전혀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거두절미하고 (또) 프리다이빙 얘기다.


지난 6월 말, 제주바다에 몸을 담근 이후 문자 그대로 나는 앉으나 서나 프리다이빙 생각뿐이었다. 드라이브 쓰루가 다이브 쓰루로 읽혔고, 아이브의 러브 다이브가 감미로워'졌'으며 올리비아 딘의 다이브는 자체로 매혹이었다.  라이선스를 따는 것은 이미 목표가 아니었다. 물에서 지금보다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는 사실,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이 몰두의 원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라이선스가 있어야 그 자유를 누리는 것이 가능했다. 프리다이빙은 안전의 프레임 안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스포츠다. 100미터 프리홀을 오르락 내리는 기욤 네리도, 만나본 적 없지만 애정하는 우리나라 최초 여성 프리다이빙 강사 정은지도 혼자서는 프리다이빙을 할 수 없다. 버디(buddy) 시스템, 서로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엄중함이 다이빙을 통해 누릴 자유의 전제 조건이다.      


제주에서 AIDA 레벨 1을 떠 먹여주듯 이수한 다음부터 자기 객관화가 시작됐다. 이미 느지막이 시작한 프리다이빙이었다. 라이선스를 따느라 서두는 건 뭔가를 손해 보는 느낌이었다. 레벨을 도장 깨듯 따는 게 아니라 안전하게, 내가 나 자신을 믿을 수 있게, 그리하여 누군가의 버디가 되어도 부족함이 없게 준비하고 싶었다. 그게 프리다이빙을 하면서 만끽하게 될 즐거움이어야 했다. 에너지를 확 끌어모았다가 방전하듯 살아온 나에겐 혼자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때문에 버디,라는 짝패 없인 할 수 없는 스포츠를 선택했다는 건 그 자체로 도전이고 시험이었다. 


전국의 프리다이빙 교육 기관 대부분을, 아니 못해도 삼분의 이쯤은 훑은 것 같다. 나는 신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 안전한 교육을 받고 싶었다. 웃고 싶지 않은 말에 억지웃음을 지으며 집으로 돌아가 이불킥을 하고 싶지 않았다. 감수성 바닥인 말들을 받아 치면 통쾌할진 모르나 유쾌하진 않다. 가만히 있는 것도 대거리를 하는 것도 모두 에너지가 소진되는 일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그런 장면들을 목격하지 않는 곳에서 나로부터 말미암은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어떤 프리다이빙 카페는 다이빙이 주인지 뒤풀이가 주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오죽하면 어떤 교육기관은 쿨하게 다이빙하고 쿨하게 엔 분의 일해서 밥만 먹고 헤어지기를 원칙으로 삼고 있을까. 검색을 하면 할수록 처음의 패기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한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라이선스를 따기까지 충분하게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질 것 같았다. 한 교육생의 후기에서 '혹시 신체적인 접촉이 불편하신 분은 말씀해 주세요.'라고 강사가 미리 고지했다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도'를 넘어가는 곳이지만 거리상으론 같은 도의 연습 공간보다 가까웠다. 교육 문의에 대한 응답도 빨랐다. 한 달 동안 했던 고민의 종지부를 막 찍으려는 찰나, 카페 가입 및 승급 절차에 대한 안내문을 읽었고 순간 눈을 의심했다. 카페 멤버 등급의 명칭 때문이었다. 가입인사를 하고 열 가지 질문에 답을 하고 댓글 세 개를 달면 나는 이른바 '물뽕 1단계'로 승급이 되는 거였다. 물뽕이라. 


그렇다. 그들은 다이버다. 그러니 물속의 생활을 물뽕이라 명명하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물뽕은 갖가지 장소와 인물을 떠올리게 하는 '강간'약물이기도 하다. 나는 그들이 중의적인 뜻으로 이 명칭을 사용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물뽕의 용도를 몰랐거나, 이 명칭을 사용했을 때 물뽕이 환기시킬 수 있는 이미지의 확장에 대해 고려하지 못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다 관두고, 다 알았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 명칭을 사용했을 수도 있다.


"엄마, 그러면 엄마 아무것도 못 해."


큰 딸이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자유롭고 싶었으나 또 걸려 넘어질 뻔했다. 교육 신청을 하고 다이빙 준비를 한 후에도 나는 여전히 시물레이션을 한다. '이 얘기를 언제 시작할까', '어떤 표정으로 이 사람들을 만날까'  지금은 그들이 알든 모르든 일부러 그랬든 아니든 내 관심사로 삼지 않을 작정이다. 긴장은 프리다이빙의 적이니까. 하지만 바라는 게 없지 않다. 이곳에서 프리다이빙을 통해 나로 말미암은 자유를 조금이나마 맛보게 됐을 때, 그때 웃으면서 꼭 물어보고 싶다. 


"저.. 혹시... 우리 카페 등급 명칭에 대해서 좀 여쭤봐도 될까요?... 물뽕이요."


나는 내일 물뽕 1단계로서 다이빙하러 간다. 모르는 길, 안 물어보고 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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