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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순 Aug 0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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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까, 를 해보기 3. 웃기

대망의 날이 밝았다. 또 잠을 못 잤다. 제주에서 그랬던 것처럼. 머리만 대면 잠이 오는 스타일인데, 이노므 다이빙, 이렇게 쫄리는데 나는 왜 이걸 하려고 할까. 화장실에 자주 갈까 봐 가슴이 나댈까 봐 커피도 마시지 않았다. 그래도 보이차는 거르고 싶지 않아 새벽잠을 깬 김에 일찌감치 찻물을 데우고 서너 잔 들이켰다. 약한 카페인이 들어갔으니 좀비가 되는 것은 예방. 교육이 진행되는 남부대까지는 고속도로를 타면 1시간 20분 남짓 걸린다. 섬진강을 타고 가는 길인 만큼 넉넉해야 할 마음이지만 여전히 긴장됐다.


이론교육은 흡사 족집게 과외와도 같았다. 나는 레벨 1 교육생이라 테스트를 보지 않았지만 저런 강의라면 백 퍼센트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 같으면 까만색을 택했겠으나 안 하던 짓을 해보기로 했으니 과감하게 하얀색 마스크와 스노클을 구입했다. 스노클과 마스크를 가방에 꽂고 어슬렁 거렸을 뿐인데, 이미 '프리'다이버가 된 듯 어깨에 뽕이 차올랐다. 풀장 교육까지는 시간이 있어 편의점에 들러 단백질바를 샀다. 뭘 먹을 속이 아니었다. 그나마 삼분의 일을 남겼다. 너무 달았다. 단 것도 넘기지 못할 만큼 긴장했다는 얘기다.


탈의실도 샤워실도 모두 낯설었다. 여차저차 수영복을 갈아입고 잠수풀로 향했다. 면책동의서 작성을 마친 다음 슈트와 핀을 지급받았다. 풀에 들어가 발이 닿는 난간에서 겨우 겨우 슈트를 입었다. '헉, 저기로 한 발만 내딛으면 끝이야. 근데 저길 들어가러 내가 여길 온 거잖아. 도대체 왜왜왜 왜 왜?'


둥그렇게 둘러 서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낯선 동작들이 아닌데도 몸이 딱딱하게 굳어있는 게 느껴졌다. 나중에 들으니 강사님은 내가 화났는 줄 아셨다고 한다. 긴장한 탓에 다른 사람까지 긴장시키다니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스태틱을 시작했다. 네 명의 교육생이 있었는데 그냥 냅다 내가 먼저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그렇다. 매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느낌, 그거다. 강사님이 나를 맴매하는 것도 아닌데 왜. 사실 스태틱은 조금 편안했다. 태극권이나 명상하는 거랑 비슷하다. 물속에서 모든 것이 정지한 듯 흘러가는 그 순간이 좀 좋다. 이렇게 얘기하면 고수처럼 보이니까 그만하자. 다이내믹을 하자고 하시는데 기가 막혔다. 발이 안 닿는 저 푸른 물에 숨은 참고 스노클 없이 들어가 저 끝까지 가라니. 내 귀를 의심했다. 동료들에게 물으니 그게 맞단다. 숨이 차면 벽 쪽으로 올라와 난간을 잡으면 된다고 하셨다. 욕심을 낼 생각은 없었지만 중간에 올라오고 싶지는 않았다. 물속에 있는 게 차라리 낳았다. 발 동동 거리면서 수면에서 난간 붙잡고 있는 게 더 무섭다. 이렇게 얘기하면 재수 없으니까 그만하자. 피닝도 할 줄 모르고 손의 위치도 어색하고 끝으로 갈수록 사람들에게 부딪히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하고 엉망진창이었지만 강사님이 날 지켜보고 있다는 게 그렇게 안심이 됐다. 그렇게 끝까지 갔다. 그렇게 엉망진창이었는데도 강사님은 물에 들어갈 줄 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프리다이빙 강사님들은 죄다 보살인가. 프리이멀전을 한다고 하니 또 긴장이 됐다. 제주에서 할 때 헤드퍼스트를 할 때마다 손이 꼬였다. 손의 위치와 방향 때문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이퀄은 안되더라도 그 자세를 꼭 실행해 보고 싶었다. 아임오케이를 하자마자 강사님께 여쭸다. "저 제대로 들어갔나요?" 그렇다고 하시면서 또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제주에선 귀가 아픈 느낌이 전혀 없었는데 오늘은 통증이 약간 있었다. 프렌젤이 잘 되지 않은 모양이다. 그저 귀가 살짝 아프다고 말씀드렸을 뿐인데 귀에 상처가 있는지 보자면서 체크해 주셨다. 프리이멀전을 한번 더 해보고 싶다고 하니, '안 그래도 아쉬워하실 것 같았다'며 흔쾌히 시간을 내주셨다. 그렇다. 강사님은 보살이다.   


나는 제주에서도 좋은 강사님을 만났다. 바다에서 겁에 질려 냅다 소리만 지르는 나를 진정시키고 스노클까지 하게 만드신 분이었다. 그런데 오늘 만난 강사님은, 솔직히 말하자면 좀 더 좋았다. 왜냐면 교육생이 모르는 것, 어려워하는 점을 교육생의 눈높이에서 세심히 코칭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교육생의 긴장감을 완화하기 위해 취해야 할 제스처, 눈빛, 말의 톤 등등 모든 것이 좋았다. 여전히 제주와 광주 사이에서 마음이 오락가락하지만, 지속적인 연습이 가능한 곳을 선택하게 될 것 같다. 강사님, 정말 감사했어요. 같이 한 동료들도 스페셜 땡스. 앞으론 겁먹었는데 인상쓰지 않고 웃을게요. 방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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