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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순 Jun 28. 2023

할까 말까 리스트

말까, 를 해보기_1. 프리다이빙


올리브 치아바타를 우적우적 먹는다. 올리브 치아바타는 소금빵 보다 짜다. 몹시 짜다. 빵 탓이 아니다. 아직 입 안에 남아 있는 바닷물 때문이다. 팔뚝이 쑤신다. 피닝은 발로 했는데 왜 팔이? 죽지 않으려고 부이를 몹시도 과격하게 끌어안은 탓이다.

 

물에 두 번 빠졌다.

한 번은 아주 어렸을 때 바다에서. 또 한 번은 수영장에서.  어찌어찌 무언가를 붙잡고 살아났다. 신기한 건 사람들은 내가 물에 빠졌다는 걸 몰랐다는 거다. 수영장에서 빠졌을 땐, 같이 갔던 사촌이 왜 그런 장난을 치냐며 핀잔을 줬다. 난 죽다 살았는데.


지리산으로 이주한 후, 남들 따라 계곡으로 물놀이를 하러 다녔다. (여기 사람들은 수영이라 하지 않는다. ‘물놀이’다.)계곡물도 물이긴 마찬가지여서 나는 무서웠다. 벌벌 떨리는 다리로 바위와 바위 사이를 건너다가 물에 들어가기도 전에 미끄러져 크게 다쳤다. 서른 넘어 다친 상처는 쉬 아물지 않았다. 여러 모로 서러웠다.


마을 사람들이 물놀이를 가니 애가 둘인 나는 물이 싫지만 물에 가야 했다. 물론 발이 닿는 곳에선 제법 첨벙거리고 놀았기에 아주 면이 안 서는 것은 아니었다. 집 마당에서 다라이 가득 물을 받아 엄마에게서 호흡법을 배우던 아이들은 부산 출신 아빠에게 시기별 코칭을 받으며 자유로워졌다. 발이 닿지 않는 계곡에서 아이들이 인어처럼 놀 때 나는 발이 닿는 얕은 물에서 무릎을 긁혀가며 만신창이 물놀이를 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깊은 곳엔 안 가면 되니까. 나는 안전하게 놀 곳을 아니까.


주변에도 프리다이빙을 즐기는 이가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은 내 일이 아니었다. 아니, 대체 무슨 마음으로 머리를 거꾸로 처박고 공기도 빛도 없는 저곳으로 기를 쓰고 고꾸라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주 오랫동안 프리다이빙은 할까 말까 리스트에 조차 올라있지 않았다.


엄마와 한 달을 보내고 엄마를 다시 서울로 모셔다 드리고 내려오는 길, 프리다이빙 강습을 신청했다. 이왕 할 거면 바다에서 해보자 싶어 제주행 티켓도 끊었다. 내겐 봄 내내 거두어들여 나무를 지펴 삶고 널어말린 고사리, 고사리를 판 돈이 있었다. 매년 얼렁뚱땅 생활비로 써 버린 그 돈을 올해부터는 다르게 쓰고 싶었다. 프리다이빙만 하고 오기엔 아쉬울 것 같아 좋아하는 올레길을 한 코스 걷기로 했다. 수업 전에 돌아올 수 있도록 꽉 찬 3박 4일 일정을 짰다.


프리다이빙 샘은 물공포증이 있다니, 믿을 수 없다고 하셨지만 수영장은 발이 닿았다. 숨 오래 참기를 한방에 2분 20초 해버린 건, 명상과 호흡에 익숙한 몸 덕분이지만 그보다는 연습했기 때문이었다. 일주일 내내 여름 감기로 코와 목이 막히고 풀 때마다 누런 코가 쏟아져 나왔지만, 나는 프리다이빙 앱을 깔고 앱이 정해 준 루틴대로 일주일 동안 매일 밤 숨 참기 연습을 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것이다. 나는 잘해야 재미를 느낀다. 못하면 도망가고 싶다. 그러니 잘하는 몸을 만들어야 할 밖에.


스노클링을 하며 물살이를 보라 하셨지만 나는 샘의 롱핀이 물살이인 줄 알고 괴성을 질렀다. 바닥이 닿기는커녕 발과 바닥 사이에 무수한 다른 생명체가 요동치는 바다에 둥둥 떠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저 살아서 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뭍으로 나오고서야 생각에 미친다. 빛도 공기도 없는 바닷속엔 다른 존재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왜 그토록 머리를 처박으며 고꾸라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무해한 존재가 되고 싶은 나는 바다와 조우하는 방법을 또 배워야 할 것 같다. 부이를 붙잡고 물에 안 빠지려 애쓸 땐 죽을 것 같았는데 오히려 숨을 참고 물속에 들어갈 때 살 것만 같았다. 그 기분, 기억하고 싶다.


올해 들어 세 번째 마주한 제주 바다.

전혀 다른 바다가 내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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