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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순 Aug 10. 2023

도저한 품격을 만나는 일

-<사회적응 거부선언> 읽기 모임과 함께

월간정상순 8월호는 책 읽기 모임이다. 거창, 창원, 남원(산내), 무주, 용인에 사는 소위 '거부선언자'들이 온라인으로 모여 책을 읽는다. 우리들이 소리 내어 함께 읽는 책은 이하루의 <사회적응 거부선언>이다. 이하루를 한마디로 소개하긴 어렵다. 영화감독이고 뮤지션이며 작가이자 여행자인 그가 거부할 대상 중 하나는 정체성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에게 차이를 상기시키는 교차성과 차이를 포용하면서 함께 행동할 방법을 제공하는 횡단의 정치' (조애나 버크, "수치" 디플롯, 2022, 에서 부분 발췌)를 (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으며, 바로 그 점에서 발본적이다. 


사회적응 거부선언, 이라는 팔음절의 책 제목은 보다 래디컬 하다. 최근 몇 년간 래디컬이라는 단어는 수모를 겪어왔다. 본질주의에 사로잡힌 이들의 무기가 되어 아버지의 집을 부수기는커녕 주춧돌도 세우지 못한 여성들의 집터마저 흔적 없이 날려버렸다. 이하루는 선언을 하겠다고 한다. 선언을 하는데 거부할 것을 선언한다고 한다. 거부의 대상은 (세상에) 사회적응이다. 이미 제목에서 게임은 끝났다. 질문을 포함한 문장은 좋은 문장이다. 행위를 떠올리는 문장은 이미 문장 이상이다. 이 책의 제목을 읽는 순간, 읽는 이는 작가에게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질문'받는다. 질문을 받았으니 응답할 차례다.


사실 이 책은 사람을 쫄리게 한다. 응답을 하자니 더욱 그렇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 때문이다. 


"남부 유럽의 휴양지 분위기를 기대하며 해변에 앉아 한가로이 햇빛이나 쬐려던 나는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상황임을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이하루, "사회적응 거부선언", 파도문고, 2023, 60쪽)


이 문장 이후 작가는 카우치 서핑으로 한 집에서 지내던 난민운동활동가를 따라나선다. 나는 다시 질문을 받는다.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일을 벌이지 않기로, 나에게 집중하기로, 나라도 해야지, 가 아니라 나 하나쯤이야 정신으로 살아보겠다고 결심한 지 두어 달. 지금의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쫄리니 따라나설 것인가. 아니면 활동가로 북적대는 저 집을 조용히 떠날 것인가. (ㅆㅂ 솔직해지자) 도망갈 것인가. 


나는 쫄렸다. 앞장서는 것 혹은 도망가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를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Nothing이어도 괜찮다는 복음을 들어본 적 없기 때문이다. 늘 Something이 되고자 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누리는 충만함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활동가를 선뜻 따라나서는 이하루를 추앙하지 않고 잠시나마 멈춰 서서 나 자신에게 질문할 수 있었던 것, 그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하루를 질투했다. 홀연히, 선뜻, 기꺼이, 스스럼없이 따위의 부사가 퍽 어울리는, 여행과 여행자의 안팎이 구별되지 않는, 여행이 곧 삶인 그의 행보가 부러웠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꾹꾹 눌러쓴 그의 문장과 문장 사이엔 다음과 같은 서브텍스트가 적혀 있었다. 


누구나 나처럼 떠날 순 없어요. 

누구도 나처럼 살 필요 없어요. 

각자의 자리에서 

기꺼이 

거부선언자가 되어 보아요.


어제, 두 번째 읽기 모임은 위의 서브텍스트에 대한 간증이 아니었나 싶다.  쏟아지는 폭우에 지하수까지 보탤 필요가 있을까 싶어 빗물을 받아 시원스레 샤워를 하는 이의 품격, 에어컨 없는 여름 살이를 견디느니 마당에 노니는 나비를 좇으며 벌겋게 달궈진 자갈을 딛고 여름의 맛을 환대하기로 한 이의 품격,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내 작은 그릇을 수용하며 그 그릇에 온기를 불어넣어 더불어 사는 이들의 쉼표가 되고자 한 이의 품격.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도저한 품격을 만났다. 그 품격은 작가 이하루가 뿌려준 씨앗이 틔워낸 싹이었다. 


어쩌면 이 책은 선언문이 아니라 한 편의 돌아보기 글이다. 당신의 인생에 스며들어 있으나 자주 잊었던 촉촉함을 꺼내보길 원하는 권유문이다. 돌보는 일의 신성함이 아닌 즐거움을 선사하는 유머모음집이다. 누구도 이 문장이 지닌 온기를 뿌리치지 못한다. 정말이지 매주 읽을 때마다 온기가 쏟아진다. 별빛처럼. 다음 주엔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태풍이 부디 노여움을 거두고 떠나가길. 그렇게 또 아름답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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