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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순 Aug 11. 2023

프리다이빙 로그북

-1. 쪽팔리지만 써보겠어!

태풍은 큰 피해 없이 지나갔고 해가 솟아오르기에 뭉치를 데리고 나갔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리막에서 쫄딱 미끄러졌다. 다행히 뒤통수가 닿기 전에 팔꿈치로 바닥을 짚었다. 밤새 몰아친 비바람 때문에 시멘트 길 여기저기가 이끼에 덮인 듯 미끄러웠다. 뭉치 줄을 놓쳤지만 앞서가던 뭉치는 자빠진 내게로 돌아와 안부를 물었다. 피가 제법 묻어 나오는 팔꿈치를 감싸 안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다행이야. 뭉치야. 팔꿈치만 까졌어. 다이빙하러 갈 수 있어."


마당 솥단지에 굴뚝을 다시 꽂고, 오줌통을 비우고, 다시 톱밥으로 오줌통을 채우고, 텃밭 점령자를 자처한 호박 넝쿨을 정리한 다음, 세면도구와 갈아입을 옷이 든 가방 하나, 물과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당을 충전해 줄 간식이 든 가방 하나 그리고... 새삥(!) 롱핀과 스노클, 마스크가 든 가방 하나 이렇게 가방 세 개를 챙겨 집을 나섰다. 1시간 20분 후 나는 잠수풀에 도착했고 탈의실에 입실했으며 샤워실로 직행한다. 몸을 흠뻑 적신 후 수영복 파우치를 열었을 때, 파우치 안에 수영모는 있고 수영복이 없음을 나는 확인한다. 이런 뒌장을 연발하는 순간, 샤워실로 입실 중인 트레이너님을 영접한다. 트레이너님은 수영복이 없다는 나에게 자신의 수영복을 하사하신다. 보살인 줄만 알았던 트레이너님은 에인젤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음을 나는 확인한다.


오늘은 레벨 1을 이수하고 1년 만에 풀장을 다시 찾았다는 다이버 한 분, 그리고 처음 뵙는 강사님 한 분과 교육을 시작했다. 보살+에인절 트레이너님이 내가 물을 무서워한다는 소중한 정보를 강사님께 미리 제공해 주셨기에 무척 마음이 놓였다. 일단 풀장을 두어 바퀴 돌면서 스노클을 했다. 스노클 무는 법, 스노클에 물이 들어갔을 때 빼는 법 등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프리이멀전으로 이퀄을 체크했는데 화요일보다는 조금, 아주 조금 더 되는 느낌적 느낌이 있었다. 다음은 덕다이빙. 오리들은 귀엽게도 잘만 들어가던데. 그래, 내가 오리는 아니지만 체리필터의 오리 날다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근데 나는 왜왜왜 왜 왜. 강사님이 입수는 잘한다고 말씀하셨다. (나쁘지 않다고 하신 것 같지만 정신 건강을 위해 잘한다, 로 내 맘대로 바꿨다) 턱 당기고 줄 보고 내려가라고 하셨는데 줄을 본 기억이 일도 없다. 들어갔다 나오면 부이는 먼 곳에. 막판에 강사님이 무슨 목걸이 같은 걸 해주셨는데 (비장의 무기인 듯) 강사님의 수고가 무색하게 들어가자마자 빙글 돌고 나왔다. 다람쥐처럼.


그래도 긍정의 기운을 끌어올려 토닥토닥해보자면, 처음 물에 들어갈 땐, 입수 전에 해야 할 일의 abc도 몰랐다. 그래도 지금은 최종호흡하고 스노클 빼고 이퀄하고 들어가야 한다는 건 안다. 기억했고 매번 그렇게 했다. 토닥토닥. 1일 차엔 부이에 매달려 있느라 (안 죽을라고) 집에 오니 팔뚝이 아팠는데, 이젠 부이에 힘 빼고 매달릴 수 있다. 토닥토닥. 잠수풀엔 고작 세 번 가봤을 뿐이지만 갈 때마다 연습 종목이 늘어난다. 그렇다. 연습만이 살 길이다.


아, 오늘 슈트 입어 보고 사라고, 자신의 슈트를 친히 내어주신 또 다른 에인절이 계셨다. 레벨 3 선배님 두 분이 (내가 조선왕조 임금도 아닌데) 양쪽에서 슈트를 입혀주시고 벗겨주셨다. 오늘의 교육 중 가장 빡센 순간이었지만 두 분께 너무 감사하다.


정리

1. 피닝연습이 절실하다. (하지만 난간 안 잡고 피닝 하는 건 너무 무섭다ㅠㅠㅠㅠㅠㅠ)

2. 무슨 짓을 하든 물에서 놀아야 한다. 그래야 물 공포증이 없어진다.

3. 프리이멀전할 때, 턱 당기고 줄 보고.

4. 덕다이빙 입수 후 스토록 하고 피닝 더 확실하게. (이미지 트레이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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