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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순 Aug 19. 2023

프리다이빙 로그북

3. 세상의 모든 줄을 사랑하겠어!

텃밭 풀 뽑고, 마당에 예초기 한 번 돌리고 나니 손이 떨린다. 자고로 풀은 밥 먹듯이 뽑아줘야 하는데 요즘 더워서 밥을 좀 덜 먹는다고 풀도 덜 뽑았다. 얼죽아의 완전 극점에 있는 나는 자칭 '쪄 죽어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로서 일종의 자부심마저 느끼면서 살고 있지만 오늘은 자부심 찾다가 그야말로 쪄 죽기 십상이다. 올해 처음 얼음 띄운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한 모금 마셨는데 이미 맛없다) 사실 풀을 몰아서 뽑게 된 이유가 있다. 물론 프리다이빙 때문이다. 월목은 태극권, 화금은 프리다이빙. 이렇듯 스포츠맨을 모방하는 일주일을 산다. 수요일엔 책 읽기 모임을 한다. 심호흡하는 기분으로. 정말이지 인생의 황금기다. 거듭 말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시절은 황금기가 아니다. 노는 게 제일 좋아.


그런데 어제도 풀장에 가기 싫었다. 늘 시동 거는 게 힘들다. 핀과 스노클, 마스크를 챙기면서 나를 달랜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섭취할 기력 회복용 단 것들을 가방에 넣으며 나를 어른다. 광주로 가는 차 안에서 내내 심장은 방망이질을 친다. 풀장에 도착해 5미터 수심의 푸른 수면을 마주할 때 심장은 이미 내 몸 밖으로 나가 있다. (돌아와 심장아) 지난주에 버디를 해주셨던 다이버 분과 역시 지난주에 여러 가지 팁을 주셨던 (나의 담당 강사는 아니지만 너무나 친절하셨던) 강사님이 계시다. 조금 안심이 된다. 


역시 시작은 스노클이다. 지난주 많은 버디님으로부터 들었던 조언을 총합하여 스노클로 몸을 풀 때 가능하면 핀은 물속에 잠기게 해서 돈다. 확실히 덜 힘들다. 힘이 덜 드니 긴장이 풀리는 건지 긴장이 덜 되니 힘이 덜 드는 건지 그건 모르겠다. 그래도 여전히, 첫애는 모르고 나았지만 둘째는 알고 낳으니 더 무서웠던 것처럼 알게 되어 더 무서운 게 있다. 근데 그런 두려움들은 물속에서 뭔가를 할 때 필수적인 경계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안전에 최선을 다 하되 쫄지 않기. 쫄지 마.


스노클을 하고 풀장 계단에 매달려 이퀄 연습을 한다. 물에 떠 있을 땐 가라앉을까 봐 걱정인데 이퀄하면서 계단을 내려가려니 떠올라 걱정이다. 반복한다. 조금씩 요령이 생긴다. 이퀄은 되는 건가. 사실 잘 모르겠다. 그냥 귀가 안 아프니 내려간다. 이퀄 연습 후 부이로 가서 프리이멀전을 한다. (뭔가 버디님이랑 나랑 되게 체계적으로 연습하는 느낌 ㅋ) 귀는 괜찮다. 근데 사전 이퀄하면 웬만해선 그냥 버틸 수 있다는 생각에 두 번 줄 잡고 한번 이퀄하기를 자꾸 무시한다. 나중에 강사/트레이너/평가관님이 맴매하실 것 같다.


다른 부이에서 연습하시던 3 레벨 선배님이 덕다이빙을 봐주시겠다고 하신다. 세상에. 프렌즈 다이버님들은 뭔가 몸속에 사리가 내장되어 있는 분들인 것 같다. 여전히 입수는 잘 되는데 피닝이 문제라는 조언. 차는 힘보다 미는 힘을 기르라고 말씀하신다. 수면 밖에서 피닝 연습하는 방법을 여쭈니 다리 들고 허벅지 오락가락하라고. 오, 복근 기를 때 하는 그 운동. 그거라면 자신 있다. 3 레벨 선배님이 숙제와 격려를 남기시고 사라지신 후 황강사 님이 덕다이빙을 다시 봐주셨다. 머리를 바닥에 한 번 찧었을 때 별로 아프지 않아서 머리 닿는 건 걱정이 안 된다. 다만 수심에서 줄을 찾아 헤매는 게 문제다. 나는 어쩌자고  내 부이가 아닌 남의 부이 줄을 보고 서 있는 것인가. 


황강사 님이 언제든 하고 싶으면 레벨 1 교육생과 합류하라고 편하게 말씀해 주셔서 다이내믹을 해보겠다고 했다. 지난주에 덕다이빙 땐 수심으로 못 내려가고, 다이내믹할 땐 5미터 바닥을 찍고 온 아픈 기억이 있어서 조치가 필요했다. 황강사 님이 마법 같은 손기술을 알려주셔서 적용하니 세상에 이것이야말로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새로 개설해야 할 마법 과목이로구나. 손의 방향으로 수심을 조절하면서 다이내믹을 편하게 할 수 있었다. 레벨 3 선배님이 앞으로 손을 뻗는 게 더 편하면 그렇게 하라고 조언해 주셔서 그것도 적용했다. 나는 쫙 손을 뻗는 게 더 편하다. 다이내믹할 때 손을 허벅지 옆에 놓으면, 음, 뭐랄까. 주머니에 손을 꽂고 싶은데 못 꽂는 느낌이랄까. 다이내믹을 네 번 정도하고 나니 내 입에서 이런 문장이 발화됐다. 


"아, 재밌다."


신이시여. 이것이 정말 제 입구녕에서 나온 말인 것입니까.


다음 주에 풀장에 갈 때 나는 또 떨겠지. 5미터 풀장을 마주하면 또 미치게 긴장하겠지. 그래도 재미를 알아버렸으니 돌아갈 순 없어. 그나저나 이제 줄만 보면 뭔가 책임감이 생긴다. 오늘 창문 블라인드를 여느라 줄을 당기는데 어쩐지 머리를 땅으로 하고 그 줄을 계속 바라보며 몸을 줄에 붙여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전깃줄도, 빨랫줄도, 세탁하려 풀어놓은 신발끈도 쫙 펴서 내 몸에 붙이고 싶다. 세상의 모든 줄을 사랑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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