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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순 Aug 26. 2023

프리다이빙 로그북

4. 미쳤네 진짜 미쳤어

오지게 아팠다. 검사 안 했으나 코로나로 추정된다. 인후통->몸살->기침 순으로 진행된 것으로 보아 거의 확실하다. 오한, 식은땀, 관절통 3종 세트와 더불어 2박 3일을 지냈다. 큰딸과 작은딸을 모두 대처로 내보낸 후 맞이한 첫 주말을 침대에 누운 채로 보냈다. 분해서 잠이 안 왔다. 나의 분노를 부채질 한 건, 그렇다. 프리다이빙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8월 첫 주부터 9월 마지막 주까지 주 2회 풀장 출석을 계획하였으나 3주 만에 창대한 계획에 금이 갔다. 아플 땐 약도 밥도 잘 안 먹는다. 근데 이번엔 약도 밥도 눈에 보이는 족족 해치웠다. D-day는 금요일. 수요일 저녁부터 오한과 식은땀이 사라졌다. 목요일 오전에는 두통과 기침도 거의 사라졌다. 청신호였다. 비타민c를 2000밀리그램씩 삼시세끼 때려 넣고 보이차로 아궁이에 불 넣듯 몸을 덥혔다. 왜냐, 나는 다이빙을 해야 하는 몸이니까.


대망의 금요일. 약국 앞에 차를 세운다. 내 아무리 프리다이빙에 영혼을 팔아먹은 여자이기로서니 사회적 윤리마저 팔아먹을 순 없다. 2개에 5천 원짜리 자가진단키트를 구입한다. 콧구녕 양쪽을 10회 은근하게 쑤신 후 진단키트의 처분을 기다린다. 15분을 기다리라는데 15분이 너무 길다. (내가 좋아하는 유일한 컵라면) 컵누들 뚜껑에 젓가락 얹고 기다리는 3분만큼이나 길다. 결과는 음성. 그럴 줄 알았지만 확인하니 기분이 좋다. 풀장에서 엄한 이들에게 전염, 전파할 위험은 사라졌다. 바닥을 친 (바닥은 덕다이빙할 때 치라구) 체력 간수만 잘하면 된다. 그러면 된다. 남원을 지나 순창으로 접어드는 길, 세상에,  글로벌한 질환을 이겨내고 다이빙 풀로 향하는 나를 온 세상이 축하하는구나.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 실바람도 불어와. 부풀은 내 마음.


실은 나는 오늘 풀장으로 오기 전에 나 자신과 약속이라는 것을 하였다. 무리하지 않기. 그것이 오늘의 약속이다. 그래서 틈만 나면 밟아버리는 저질 운전 매너도 워워하면서 왔다. 추월하고 싶을 때마다 규정속도를 준수하며 아주 차카게 왔다. 추월선을 주행선으로 착각하는 안 스마트한 운전자들을 미워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왔다. 몸풀기 차원에서 스노클링을 다섯 바퀴쯤 하고 싶었지만 반바퀴 돌고 나니 집에 가고 싶어졌다.  집에 가는 대신 벽에 붙어 쉬었다. 아주 스마트한 결정이었다. 일행으로 보이는 두 분과 함께 모두 셋이 한 부이에 매달려 덕다이빙과 프리이멀전을 연습했다. 덕다이빙은 지난주보다 잘 되지 않았다. 줄을 보고 내려가면 다람쥐 쳇바퀴를 돌고, 바닥까지 내려가면 줄은 먼 곳에. (마음 주고 꿈도 주고 멀어져 갔네~~~) 오늘의 약속은? 무리하지 않기. "저는 좀 쉬고 올게요." 버디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진짜로 쉬었다. 탈의실에 가서 보온병에 든 물도 가져왔다. 풀장 바깥에 걸터앉아 쉬는 내가 너무나 기특했다. 막판 덕다이빙은 줄에 가까워졌다. 출수 직전에 다이내믹도 했다. 기운이 너무 없어서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었다. 힘이 빠지니 왠지 괜찮다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 풀장에 온 목표는 실력 향상이 아니었다. 지난주에 아주 조금 맛본 그 맛을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기억이 났다. 목표 달성.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으면 완전 기진맥진할 줄 알았는데 기운이 났다. 뭐야. 풀장에 약 탔나. 소독약 말고, 그 약. 운전하며 돌아오는 길, 핸들을 잡은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엊그제만 해도 생사의 갈림길에서 방황했던 나는 나에게 이렇게 중얼댔다. 


"미쳤네. 진짜. 미쳤어. 큭큭."


추신 : 집으로 돌아오니 호그와트 마법학교 손기술 과목 프로페서인 황강사 님이 영상을 보내주셨다. 내가 저렇게 움직이고 있었구나. 안 본 눈 사고 싶지만 주야장천 돌려보고 문제파악, 문제해결해야지. 꼼꼼하고 친절하게 코멘트 달아주신, 황강사 님, 은혜 갚는 까치 다이버가 되어보겠습니다아아아아아


오늘의 과제

-덕다이빙 입수 후, 코어에 힘주고 몸 일자로 만들기

-피닝피닝피닝 다리 찢기 하듯이 (너 다리 좀 찢잖아, 응?)

-다이내믹, 몸에 긴장 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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