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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순 Aug 30. 2023

뭉치가 아프다

-우리는 정말 우리일까

뭉치가 아프다.

털을 깎은 다음 맨살에 꼬리 털이 닿을 때마다 괴로워하기에 고무 밴드로 털을 묶어줬다. 그 사이 나는 코로나를 앓았고, 뭉치는 이웃 반려인들과 산책을 즐겼으며 자가진단키트에 음성이 뜨는 걸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나는 그 밴드를 잊었다. 나는 밴드를 잊었지만 밴드는 사라지지 않고 뭉치 꼬리를 옥죄었고 피가 통하지 않아 염증이 생겼다. 며칠 전부터 꼬리가 축 쳐진 느낌이 있었다. 뭉치의 체취가 아닌 낯선 냄새도 났다. 그러나 밴드를 발견하고 밴드를 풀기 위해 꼬리를 잡았을 때 뭉치가 내지르는 비명을 듣고 나서야 나는 뭉치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아프고 나서 자리를 털자마자 싸돌아다녔다. 연수도 있었고, 다이빙도 했고, 영화도 봤고, 친구를 만났다. 그간의 내 행적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질문은 있다. 내가 뭉치의 고통을 지연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뭉치는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고통을 호소했으나 나는 그 호소를 부분적으로 무질렀다. 도덕적 판단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모른 척할 수가 있느냐' 따위의 질문이 아니다. 나는 모른 척할 수 있었고 그 모른 척에는 '힘'이 실려 있다. 그 힘은 뭉치가 갖지 못한 힘이다.


얼마 전, 돌봄에 관한 팟캐스트를 녹음하는 자리에서 나는 말했다. 내가 요즘 주력하는 돌봄의 대상은 '뭉치'라고. 하지만 나의 돌봄은 (인간동물의) 말을 사용하지 않는 비인간 동물의 고통을 지연할 수 있는 돌봄이기도 하다. 이 경우 돌봄의 현장은 생살여탈권의 행사장이 되어버리고 뭉치는 돌봄 없이는 살 수 없는 '수치스러운 몸'으로 전락하고 만다.  서로가 의존하고 돌봄이 공기처럼 흐르는 사회를 꿈꾸지만 가치관이 삶이 되는 시간은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다. 서로 의존하는 우리,라는 문구에, 그 우리에, 나는 뭉치를 얼마만큼 포함시켰나.


"나에게도 어떤 힘이 있다는 것을,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내가 살던 작은 세상과 좁은 시야 속에서, 나는 언제나 고난과 열등감에 시달리던 약자이자 피해자였다. 그러다 길 위에서, 가자 지구와 난민 캠프, 국경을 비롯한 부당한 시설과 그 경계를 바라보며, 내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_<사회적응거부선언> 이하루 지음, 파도문고, 208쪽


'우리'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방법을 매 순간 잊지 않고 싶다.

너무 멀리 떠나지 않아도, 바로 이곳에서.   

동물병원에서_잘 견뎌줬어
상처 핥으면 안되니까 넥컬러
잠을 통 못자서 넥컬러 빼니 바로 꿈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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