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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순 Sep 01. 2023

프리다이빙 로그북

5. 뱁새가황새쫓아가다가다리가찢어질뻔하다가줄잡고살아난이야기 

세상의 모든 줄을 사랑하겠노라, 특히 수심 5미터 잠수풀에 아름답게 드리워진 바로 그 줄을 사랑하겠노라. 마음먹었다. 그래, 분명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몸이 따라와 주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지난주 어찌어찌 오리 흉내를 내며 (오리들아 쏴리) 줄을 잡지 않고 머리를 들이밀며 입수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나는 줄곧 내 부이가 아닌 다른 부이 앞을 서성댔고, 이 세상 여기가 늪인지 저기가 숲인지 알 수 없어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마법사와 에인절과 보살들이 드글대는 프렌즈 다이버님들의 격려에 힘입어 지난주 쪼금 맛본 덕다이빙의 맛을 기억하려 다시 풀장을 찾았다.


금요일 오후 풀장 모임을 신청했다가 오후에 일정이 생겨 난감한 터였는데 금요일 오전 풀장 모임 공지가 떴다. 역시 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어. 세상의 모든 기운이 나에게 다이빙하라고 옆구리 쿡쿡 찌르잖아. 그런데 신청자가 단 두 분. 5초 망설였다. 두 분이 단출하게 연습할 생각인데 눈치 없이 끼는 건가. 아몰랑. 눈치코치 없는 걸로 하고 나는 합류하겠어. 나는 연습만이 살길인 1 레벨 다이버거든. 그런데.


강적을 만났다. 박강혁 강사님과 영선님. 영선님은 다이빙 입문한 지 얼마 안 됐다고 하셨는데, 나는 속으로 '거짓말'했다. 덕다이빙 입출수 자세 모두 너무나 자연스럽고 우아했다. 나는 여전히 줄을 멀리하고 사선을 사랑하는 덕다이버였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세요) 강혁 강사님이 당근과 채찍을 양손에 들고 후려치고 매치는 신기술을 시전 하며 직선으로 입수하는 기쁨과 줄을 가까이하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 주셨다.  출수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줄을 잡고 올라오는 횟수가 늘어났다. 줄을 찾아 몸을 돌리는 타이밍이 여전히 늦지만 나에겐 지금 토닥토닥이 필요하다. 오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수준은 됐으니 말이다.


출수 직전에 강혁 강사님이 시계(이거 뭐라고 그래요? 수중시계?)를 보여주셨다. 100이 넘는 숫자가 반짝였는데 그게 우리의 다이빙 횟수라고 하셨다. 영선님과 교대로 입수했으니 한 사람이 적어도 50회 이상 수심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어쩐지 뒤로 갈수록 모던타임스의 찰리 채플린 생각이 났다. 스패너를 양손에 들고 나사를 돌리던 채플린. 붕어빵 기계처럼 오리빵 기계가 있었다면 우리 셋은 오늘 오리빵 100개 이상을 찍어냈을 것이다.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가 가랑이 찢어질 뻔했지만 탁월한 버디들을 만난 행운을 톡톡히 누린 하루였다.


덕다이빙은 이렇게

-몸 일자->팔 앞으로 나란히-> 어깨를 꽂듯 입수-> 스트록 하면서 줄 찾기->목에 달걀하나 끼워 넣은 느낌으로 고개 들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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