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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순 Sep 05. 2023

프리다이빙 로그북

6. 빡, 트... 를 만나다

화요일 오후 1시 풀장 모임 게시물엔 1 레벨 다이버들이 밝힌 참가 신청 댓글이 있을 뿐이었다. 출발 직전까지 확인했지만 강사 참여 댓글은 달리질 않았다.  '음... 1 레벨끼리 눈 가리고 코끼리 다리 만지는 심정으로 연습을 하는 건가' 하지만 나는 여전히 연습만이 살 길인 1 레벨 다이버인 까닭에 모든 의문을 땅에 묻고 풀장으로 향했다.


프렌즈 다이버들로 보이는 분들이 요기조기 모여 앉아 계셨다. 부끄러워 인사를 나누진 않았다. (몹시 낯을 가린다) 한편으론 과연 오늘 우리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 강사님이 오시는 것인지, 아니 오시는 것인지,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둥그렇게 둘러앉아 함께 답을 찾는 인디언들처럼 우리는 오늘 물에 동그랗게 동동 떠 있을 것인지 사뭇 궁금했다. 약속 시간에서 오분쯤 지났을 때 저기, 어쩐지 낯익은, 그러나 등장 예상 인물 순위에는 없던 그분이 나타나셨다. 그때만 해도 나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무럭무럭 자라날 인간 콩나물이 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시작은 스태틱이었다. 한 달 만에 다시 하는 스태틱. 목표로 삼았던 시간에서 1초가 모자랐지만 스타트를 조금 서둔 것에 비하면 나쁘지 않은 기록이었다. 그래도 참 아쉬웠다. 더 릴랙스 할 수 있었는데 왜 그랬을까. 아마도 이후에 쓰나미처럼 몰려 올 빡트의 기운을 이때 이미 감지했던 것은 아닐까. (모든 건 이**평가관님의 빡트 때문이다) 1 레벨 교육생이 교육받으시는 사이, 다른 다이버들은 덕다이빙 연습을 했다. 오늘의 미션은 물구나무서기. 피닝일랑 할 생각 말고 일단 물구나무서기. 스트록일랑 할 생각 말고 일단 물구나무서기. 다행히 물구나무서기는 어렵지 않게 통과했고 부이로 옮겨 줄을 보고 덕다이빙 연습을 했다. 부이 없이 연습할 땐 벽 맨 위의 (서슬) 퍼런 타일에 시선 집중! 부이 가까이에서 내려갈 땐 부이를 본다. 부이를. 바닥 보지 말고. 내 턱과 목 사이엔 테니스공 하나가 있어. 그거 빠지면 듁음이야. 알겠어?!?!?!?!


입수와 동시에 몸을 틀어 내려가기도 성공. 줄에 몸 붙이는 것도 성공. 턱을 들지 않는 것도 성공. 아마 오늘도 오리빵을 50개는 넘게 구운 것 같다. 근데 왜 나는 자꾸 벽이랑 줄 사이에 낌? 문제는 피닝. 그 후 시작된 것은

.... 인간 콩나물 되기.... 처음에 평가관님이 콩나물 해봤냐고 물으시기에 '아, 프렌즈 다이버들은 프렌들리 하게 프렌들리 한 악보(=콩나물)를 보며 노래를 부르는 쏘스윗한 다이버들이구나'생각했다. 하지만 내 몸뚱이가 인간 콩나물이 되어 그토록 들쑥날쑥한 선율을 만들어 낼 줄 그 누가 알았으랴. 암튼 콩나물 5세트 덕분에 엉망진창이지만 물밖으로 손목이랑 팔꿈치까지 내놓고 피닝 하면서 물속에 서 있어 봤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오늘 덕다이빙이 나아진 것보다 내가 부이를 잡지 않고, 벽도 의지하지 않고, 난간도, 계단도 잡지 않고 물속에 서 있게 된 게 제일 기쁘다. 아무것도 잡지 않고 물속에서 버텨야 하는 순간은 곧 저세상으로 가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물이 너무나 무서웠는데 이젠 물이 그 옛날만큼 무섭진 않다. 문제는 이제 파란 것만 보면 고개를 처박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것. 돌아오는 길, 하늘을 바라보는데, 하늘이 참 5미터 수심 풀장처럼 파랗구나 싶었다.


오늘은 내가 프렌즈 프리다이빙의 프렌드가 된 지 꼭 한 달이 되는 날. 집 마당에서 일몰을 바라보며 하이네켄과 함께 자축.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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