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내게 강 같은 평화
실은 매번 풀장으로 향할 때마다 돌아오는 길을 꿈꾼다. 살 떨리게 긴장돼서 다 때려치우고 싶지만 세 시간 동안 오리빵 수십 개 구운 후 돌아오는 고속도로의 경쾌함과 충만함을 상상하며 나를 달랜다. 근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장비를 실을 때도, 차에 시동을 걸 때도, 고속도로를 달릴 때도 왠지 편안했다. (될 대로 돼라 심정인 것인가. 케세라세라~)
오늘도 오리빵은 아쉽지 않게 구웠다. 영선님 그리고 풀장 방문 2회 차지만 무서운 속도로 습득하시는 1 레벨 교육생님 이렇게 셋이 부이에 매달렸다. 돌아가면서 프리이멀젼으로 이퀄 체크하고(이렇게 쓰니 뭔가 디게 프로페셔널해 보인다) 덕다이빙 연습을 했다. (엊그제는 내 발가락이 오리발이 된 꿈을 꿨다) 아직 CWT 후 턴이 어설프다. 마음 편하게 먹고 들어가면 대충 잡고 올라오는데 잘하려 하면 할수록 생각이 많아진다. 하지만 나는 2주 전까지만 해도 덕다이빙해서 들어가 내 부이 놔두고 2미터 뒤의 남의 부이로 나오던 다이버 아니었던가. 셀프 토닥토닥이 필요한 순간이다. 훌륭하다. 나아지고 있다.
오늘 제일 좋았던 건, 나의 버디들이 입수하는 걸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부이에 매달려 바라보는 수심. 수면과는 다른 고요. 버디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집중하는 그 시간이 정말 좋다. 처음 프리다이빙을 해 보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나는 실은 그 고요가 탐났다. 온전히 나 자신과 호흡과 수심에 몰두함으로써 얻어지는 고요. 물론 지금은 고요는커녕 퍼덕이고 줄꼬이고 몸개그 시전하는 수준이지만 고요함에 대한 소망은 놓지 않았다.
강혁강사님이 지지난주 영상과 오늘 영상을 함께 보내주셨다. 비포어&애프터가 이렇게 선명할 수가. 지지난주 영상을 보니 나는 안 본 눈 사고 싶은데, 저런 꼬락서니를 보면서도 잘한다, 좋다, 멋지다 칭찬, 격려해 주신 프렌즈 강사님들은 이제 보살 레벨은 스킵하고 열반에 오르셔야 할 것 같다.
세 시간 다이빙하고 왕복 세 시간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오니 현관문이라도 씹어먹고 싶을 만큼 배가 고팠지만 왠지 모를 평화로움을 만끽하고 싶어 천천히 올리브유에 마늘을 볶고 새송이 버섯을 볶고 토마토를 썰어 넣고, 소금 간 면을 넣어 감빠스 맛 파스타를 해 먹었다. 맥주가 없네. 이럴 땐 나의 애정템 예거 마에스터로 하이볼 한 잔. 완벽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