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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이 있으면 항상 MRI를 찍어야 하나요?

두통으로 MRI 촬영을 앞둔 분들을 위하여

아니요.

첫째, 단순히 두통 증상이 있다고 해서 MRI 보험 적응증이 되지 않습니다.

둘째, MRI를 촬영한다고 해서 무조건 두통의 원인을 알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셋째, MRI를 촬영한다고 해서 두통이 호전되는 것도 아닙니다.


2018년 10월 1일부로 우리나라에서 뇌, 뇌혈관 MR에 보험 적용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전 세계 유례없는 일입니다. 신경과에 가면 MRI는 꼭 한 번은 해봐라 지인들의 성화, 신경과 의사가 MRI를 권하지 않으면 이 의사가 돌팔이가 아닐까 의구심이 드는 요즘입니다. 이 좋은 검사를 비싸서 못했는데 이제는 기존의 1/4 가격으로 할 수 있다니, 당연히 누구나 하고 싶습니다. 'MRI를 촬영하고 싶어서 신경과에 내원한다.' 이런 분들이 최근 많아졌죠.


의료 보험 재정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옆 나라에서 퍼주는 것도 아닌 '우리'가 낸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당장은 남의 돈으로 이득 보는 느낌, 명품을 반값에 구입하여 횡재한 느낌이었지만 흑자였던 건강 보험 재정은 3년도 안되어 빠르게 적자가 되었습니다. 유례없는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국가 의료비 지출이 늘어난 데다가 상급 병실료 같은 불필요한 부문에서도 보장성이 강화되어, 정작 중증 환자분들에게 필요한 의료 지출에 차질이 생기고 있습니다. 곳간이 비어 돈이 없으니 급여화가 시급히 필요한 항암제 부문은 뒷전이 되고 있습니다. 한정된 재원을 긴급하고 중요한 곳부터 투입해야 하는데, 효율적인 재정 관리가 안되고 있지요.


게다가 500억 규모의 첩약 급여화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의료 재정 적자 상황, 한방 첩약을 이용하는 국민의 비율이 소수임을 고려할 때 한방을 의료 보험 특약으로 하여 국민들에게 선택권을 주자는 의견이 많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2018년 10월 뇌 MR 급여화 발표 이후, 6개월 만에 의원이나 일반 종합 병원 급에서 뇌 MRI 촬영 건수가 2배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제가 일하던 병원에서 원래는 MR 오더를 내면 수일 안에 촬영이 가능했는데, 수요가 급증하면서 촬영이 지연되어 수주 이상 걸리기도 했습니다. 정작 급히 뇌 MR이 필요한 신경과 응급 환자들을 촬영할 슬롯이 없어 전전긍긍하다 MR 촬영 기사분께 사정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밤낮으로 고생하시는 MR 촬영 기사님들 감사합니다.)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재촬영 문제인데요, 제가 일하던 신경과 전문 병원에 내원 시 타 영상의학과 의원에서 촬영한 MRI 결과를 CD로 구워온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 MR을 다시 판독해서 봐달라는 말씀인데요, 주치의가 영상물을 확인 후 MR을 재촬영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리면 화를 내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재촬영이 필요한 이유를 간단히 정리하면 1) MR 영상의 선명도 문제가 판독의 결과에 영향을 미쳐서 2) 진단에 필요한 단면이 없어서입니다. 뇌 MR을 촬영한다고 했을 때 뇌의 어떤 부분을 보기 위해 촬영하는 것인지, 어떤 진단에 어떤 촬영 기법이 필요한지 신경과 의사가 판단하는 것도 진단 과정의 일부입니다. 그럼 왜?! 맨 처음 방문했던 의원에서 모든 부분을 촬영하지 않았는지 궁금해하실 텐데요, 처음부터 뇌의 모든 부위를 촬영하면 삭감됩니다. 즉 '국가에서 MR을 급여화'하기로 결정한 이상, MR 평가의 적정성 기준을 '국가'에서 제시합니다.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제재가 들어옵니다.




자, 그럼 어떤 두통을 호소할 때 MR 촬영이 꼭 필요할까요?

보통 흔하게 호소하는 일상적인 두통과 어지럼증 시에는 MR 급여에 제한이 있어 80%까지 본인이 부담하게 됩니다. 뇌질환이 '강력하게' 의심되지 않는데도 MR을 원하는 경우가 많아 건강보험재정 지출이 예상보다 훨씬 늘어나 최근 2020년 3월부터 적응증이 상향 조정되었습니다.



신경과 클리닉에 하루에 100명 환자가 내원한다고 하면, 그중 대략 50-70%가 두통, 어지럼증을 호소합니다. 그중 뇌질환이 강력하게 의심되는 비율은 높지 않아요. 두통과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대부분의 경우 불안감을 갖고 진료실로 내원하는 경우가 많아요. 따라서 원인에 대한 '명확'한 확인을 위하여 MR 촬영을 원하시는 환자분들이 많은데요, 어디까지나 신경과 의사가 신경학적 검진을 해보고 뇌질환이 '강력하게' 의심되는 경우에만 MRI를 '보험'수가로 촬영 가능합니다.



 

뇌질환이 강력하게 의심되는 두통은 어떤 증상일까요?

여타 다른 신경학적 증상이 동반되는 두통입니다. 편측 마비, 복시, 시야 이상, 구음 장애, 구역과 구토 증상, 의식 변화, 심한 균형 장애를 동반한 어지럼증 등이 동반되면 뇌질환으로 인한 두통일 가능성을 가정하고 검사가 필요합니다. 신경과 의사는 상기 증상들을 신경학적 검진을 통해서도 확인을 하게 되죠.

그 외, 갑자기 벼락을 맞는 것처럼 극심하게 두통이 시작되어 지속되는 경우나 기침, 힘주기, 성행위 등을 통해 두통이 악화될 때도 뇌질환 여부에 대해 검사가 필요합니다. 이런 종류의 두통으로 내원한 환자분들에게 혈관 MR을 꼭 시행하는데요, 혈관이 찢어져있거나 부풀어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응급 치료가 필요한지 여부를 순차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중년 이후에 새롭게 발생하여 지속되거나, 두통이 점차 악화되거나 양상이 변화하는 경우에도 꼭 내원하여 평가를 받으세요.


신경과 클리닉에 내원한 두통 환자분들 상당수가 자가 치료 후에도 호전이 없어 MRI 촬영을 원하는 경우가 많으나, 병력 청취와 신경학적 검진을 시행해보면 대부분은 뇌 질환이 아닌 편두통이나 약물 과용 두통인 경우가 많습니다. 두통으로 고통스럽지만 뇌염, 뇌종양, 뇌혈관 질환이 그렇게 흔한 질환은 아니라는 걸 염두하세요. 너무 불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만성 부비동염, 녹내장, 턱관절 질환 등에 대해서도 배제가 필요합니다.


두통 증상이 심하다고 해서 심각한 뇌질환을 시사하는 것이 아니고, 두통 증상이 경미하여 진통제에 잘 듣는다고 해서 별 거 아닌 두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두통을 자가 치료하지 말고, 신경과 의사에게 진료 보시길 권유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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