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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기구 타는 것처럼 빙빙 돌아요.

어지럼증은 다 같은 병이 아니다.

오늘은 어지럼증의 정체에 관해 말씀드릴까 합니다.


도대체 어지럼증이 뭘까요? 신경과 클리닉에 내원한 환자분들은 자기가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게 맞는지, 자기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어지럼증이 많아집니다. 인구의 고령화로 어지럼증 환자의 증가는 과히 폭발적입니다. 4명에서 1명 꼴로 1년 내 어지럼증을 경험합니다. 신경과 의사인 저도 경험하였고, 제 친한 동료도 경험하였습니다. 정말 흔하지만, 쉽지 않은 아이입니다.


어지럼증은 병의 이름이 아닙니다. 신경과의 여러 질환에서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신경과 의사는 '환자가 표현하는' 어지럼증의 양상을 바탕으로 '원인 질환'을 찾아내야 합니다. 문제는 환자분들이 '어지럽다'는 표현 한 가지만 쓰는 게 아닌 데서 옵니다. 역으로, 환자분이 '어지럽다'는 표현 한 가지로만 증상을 얘기해도 진단 과정이 지난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어지럽다'는 표현은 빼고 말씀해보시라고 권유합니다.


'놀이 기구 탈 때처럼 빙빙 돌아요.'

'아뜩하게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아요.'

'멍하고 정신이 없어요.'

'머리가 아프면서 멍해지는 느낌이에요.'

'빈혈기가 있는 거 같아요.'


보통 이렇게 표현합니다. 종합적으로 얘기하면, '평형감의 이상'을 어지럼으로 표현하며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다 다릅니다. 증상과 원인 질환이 다양하여 '어지럼증 검사'로 명명될 수 있는 하나의 검사는 없습니다. 어지럼증으로 내원하신 분들은 검사가 왜 이렇게 많냐? 며 반문하실 텐데, 검사 수가 많은 이유를 이 글을 통해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다.


환자 분들의 어지럼증 증상을 들으면서 신경과 의사들은 다음 카테고리들을 머릿속에서 그립니다.

대표적으로,


현훈 (자신이나 주변이 도는 느낌, vertigo)

머리가 텅 빈 것 같은 느낌 (lightheadedness)

실신감 (faintness, syncope)

보행이나 자세의 불안정감 (unsteadiness)


출처 freepik


어지럼증의 30-50%는 귀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예전에는 이비인후과에 내원하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최근에는 어지럼증의 원인 중 10-30% 비율에서 편두통, 뇌혈류 부전증(혈류 부족), 뇌졸중, 자율신경계 질환, 뇌종양 등이 있다는 정보가 널리 알려져 신경과에 내원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습니다. '중추성' 원인을 놓치면 그 결과가 더 참담하다는 사회적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죠.

어지럼증 클리닉의 의사들의 목표도 빠르게 중추성('뇌') 원인을 배제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말초성 원인에는 이석증, 전정신경염, 메니에르병 등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어지럼증 증상을 분석할 때 가장 먼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요인입니다. 

머리의 움직임에 따라 증상이 변하는가?

가만히 서 있을 때 혹은 걸을 때 증상이 악화되는가?

스트레스에 의해 악화되는가? 어떻게 하면 증상이 좋아지는가?

어지럼증이 처음 시작될 때의 상황에 대해 정확히 말씀해주셔야 도움이 됩니다.

다른 약을 복용하고 있었는지, 다른 심장 질환의 가능성은 없는지, 우울감이나 여타 공황 증상과 동반되었는지, 두통이 함께 동반되는지 등도 확인합니다.

어지럼증이 있다 없다 있다 없다 식으로 삽화적으로 반복되는지, 일정한 수준으로 지속되는지 여부도 중요하게 보는 성격입니다.


'어지럼증이 머리의 움직임이나 자세 변화에 따라 유발되는지' 왜 중요시할까요?


균형감이 잘 유지되고 있어 어지럽지 않다고 느끼려면 시각계(눈), 전정계(귀), 체성 감각계(발바닥에서부터 느끼는 감각)에서 들어오는 신호를 뇌에서 통합 처리하는데 문제가 없어야 합니다. 눈을 감아도 안정적으로 자세를 유지하고 보행할 수 있는 까닭은 전정계, 체성 감각계, 뇌가 정상이라 상호 보완하기 때문이지요.

도대체 귀의 전정계는 어떤 기능을 할까요? 머리가 움직이면 가속도와 중력 신호를 종합하여 신경 반사를 통해 근육의 긴장과 안구 운동을 조절합니다. 전정계에 문제가 생기면, 머리가 움직일 때마다 자세 균형을 유지할 수 없고, 시야가 안정화되지 않고 주변이 도는 느낌이 오는 것이죠.  


이석증은 눕거나 고개를 돌릴 때 눈 앞이 빙빙 도는 증상을 보입니다. 이석이 움직이면서 전정계의 신호에 불균형이 유발되어 발생하는 것이죠. 저도 이석증을 두 차례 경험하였습니다. 스트레스가 많은 시기였고 소파에서 불편하게 잠든 후 아침에 눈을 뜨며 고개를 돌리자마자 눈 앞이 돌기 시작하였죠. 저는 자가 진단과 치료를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경험하니 매우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론적으로는 이석증, 메니에르, 기립성 어지럼증, 뇌혈류 부전 등의 원인 질환들은 일시적이라 오래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그에 반해 전정 신경염이나 뇌졸중은 수주에서 수개월 이상 증상이 지속되어 전정 재활 운동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론과 실제가 다른 경우는 임상에서 허다합니다.


이석증이라도 자주 반복되고 망가진 정도가 심하면 증상이 하루 종일 지속된다고 느끼고, 우울 불안감과 함께 심인성 어지럼증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 경우 두 가지 원인이 복합되었다고 판단해야죠. 급성기에 빠르고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만성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만성 어지럼증 환자분들이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초기에 빠른 치료와 적절한 설명 및 케어가 절실한 이유입니다.


갑자기 심하게 발생한 어지럼증으로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의 2.5%에서 급성 뇌 병변이 발견되는데, 꽤 높은 비율입니다. 특히 고령 환자분들이 고혈압, 심장 질환 등의 혈관 위험 인자를 가지고 있다면, 빠른 신경학적 검진을 통해 뇌졸중을 배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무리 MRI를 빠르게 진행하더라도 초기에 병변이 보이지 않는 (위음성, false negative) 경우도 있기 때문에 신경과 의사의 검진은 필수적인 단계입니다.


소뇌 기능 검사 (Medistudents.com 발췌)


보행 평가, 소뇌 기능 검사, 안구 운동 검사를 통해 뇌와 뇌간의 평형 기능, 보행 기능, 전정 기능이 괜찮은지 응급실 침대에서 빠르게 확인하는 것이죠.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막 시작된 급성 어지럼증은 오히려 진단과 치료가 쉽습니다. 향후에 만성화된 어지럼증, 보상이 안되어 지지부진하게 오래 지속되는 어지럼증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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