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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깜박거리며 충전 중, 뇌에 거슬린다.

빛 공해의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연구들


스마트폰과 스마트와치가 침대 머리맡 60cm 거리에서 충전 중입니다. 화면은 꺼져있어도 무용지물, 깜박거리는 충전 표시등이 오늘따라 더 강렬하게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눈을 감고 있어도 빛이 눈꺼풀을 투과하는 느낌이 들면서 잠을 뒤척입니다. 충전 중이던 기기들을 모두 엎어 버립니다.


빛 공해(Light pollution)라고 들어보셨죠? 빛 공해는 '인간이 필요 이상으로 만들어낸 빛으로 유발된 공해'를 의미합니다. 빛 공해가 별과 은하수만 덮어버린 게 아닙니다. 동물의 번식과 식물의 성장 등에 미치는 악영향이 심각한 수준이죠.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해, 오늘은 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결과만 국한해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2017년에 고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헌정 교수팀은 수면 중 빛의 노출이 낮 시간의 뇌기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습니다. 빛 공해가 '인체'의 '뇌'에 미치는 영향을 밝힌 것이 의미가 있는 연구였습니다. 10럭스(lux) 정도의 약한 빛에 노출되어도 다음날 낮의 전두엽 기능이 저하된 것을 functional MRI로 확인하였습니다. 전두엽은 기억력, 사고력, 판단 및 집행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부위입니다. 보통 침실의 밝기를 50-150 럭스 정도로 조절합니다.


2016년 6월 미국, 독일, 이탈리아, 이스라엘 연구진이 공동 연구한 '세계 빛 공해 지도' 프로젝트가 'Science Advances'에 발표되었습니다. G20 국가들을 대상으로 빛 공해의 영향을 받는 면적을 순위로 매겨봤는데 한국이 89.2%로 2위를 차지했습니다! 국토 면적이 넓을수록 빛 공해의 영향이 적은 것으로 나타나 조금 억울하기도 한데요, 싱가포르는 100%로, 국토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니 충격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싱가포르의 아름답고 깨끗한 야경에 반했었죠.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에 빛 공해 방지법이 만들어졌지만, 환경 영향 평가에 예산도 없고 제대로 추진 실적을 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대대적인 민원이 접수되어야 제지하는 수준이죠. 미세 먼지, 수질 오염 문제가 산적해서인지 빛 공해에 대한 관심은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간판 등 인공조명 개수가 너무 많거니와 영업시간이 끝나도 밝게 빛나고 있고, 가로등 조명의 방향이 길 정면 혹은 위로도 향해있어 건너편 건물까지 사방으로 빛이 퍼져 나갑니다.




독일은 빛 공해의 기준이 우리나라의 10분의 1로 1럭스를 기준치로 두었습니다. 저녁 무렵이 되면 대부분의 가정에서 커튼을 쳐서 빛이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막고, 가로등은 모두 수직 아래를 향해 있습니다. 독일 어린이들은 8시가 되면 잠자리에 들어가 잘 준비를 합니다. 집 내부의 조명은 빛의 세기가 약한 노란색 할로겐전구가 아직 주를 이룹니다. 그리고 양초로 부족한 빛을 보충(?)합니다. 효율도 떨어지는데 왜 이렇게 어두운 조명을 고집하는지, 빛 공해에 대한 염려일까요? 로맨틱한 실내 인테리어 겸사겸사 일거양득을 노린 결정이라고 제 나름 추측해봅니다. 암튼 형광등이 없는 독일에선 동침하는 4살 딸과 같은 속도로 잠이 스르륵 옵니다.

 

(좌) 독일 뮌헨, 가로등이 길 가운데만 수직으로 비추고 있는 모습. (우) 오후 네시경인데도 벌써 어두운 뮌헨 거리. (C) 익명의 브레인 닥터 all right reserved



외국 저널을 살펴볼까요, 실외 인공조명의 빈도가 높은 지역에서 수면제 사용 빈도가 높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고령일수록 수면제 사용 기간과 용량도 늘어났고요. (2018, Journal of Clinical Sleep Medicine)


올해 7월에 저명한 학술지 JAMA Psychiatry에 빛 공해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내용이 실렸습니다. 13세에서 18세 사이의 10,123명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로, 결론적으로 야간 조명에 노출이 심할수록 수면 시간이 적고 우울증, 불안증이 더 두드러진다는 내용입니다. 주중 수면 시각이 대략 29분 뒤로 늦춰지고 그만큼 수면 시간이 11분 짧아졌습니다. 우울증, 불안증 외에도 양극성 장애 혹은 공포증과 같은 정신 질환의 비율도 높아졌습니다. 그동안 실외 야간 조명(인공위성으로 측정한)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연구는 적었습니다.




2014년 10월 영국 맨체스터대 연구팀은 잠자는 동안 침대 옆에 스마트폰을 충전하는 습관을 들이면 비만이나 당뇨병 위험이 높다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2016년 서울대병원 신경과 정기영 교수팀은 야간 조명이 환한 곳에 거주하는 사람의 비만율 55%, 상대적으로 어두운 지역의 비만율은 40%였다고 확인하였습니다.


비만, 당뇨와 같은 대사 질환, 암, 수면 등 빛 공해가 전방위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결과를 대중과 공유하는 것은 환경 의학에서 중요합니다. 더 이상 개인의 개별적인 노력만으로 질병 유발 인자를 조절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거시적인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고, 빛 공해만큼 이를 대표할 수 있는 실례가 없기 때문이지요.

특히 수면 연구자들이 빛 공해에 관해 연구를 지속하는 이유는, 생체 리듬과 수면의 질에 미치는 경 인자 중에 조절 가능한 것을 최대한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좋은 침대와 인체공학적인 경추 베개가 전부가 아닙니다. 조명의 밝기와 빛 스펙트럼에 따른 정신 건강, 뇌 건강의 연결고리를 밝혀내면 지금까지 배타적으로 형광등 LED 등 일색인 주거 환경이 달라지겠죠.

 



인간의 생체 리듬은 24시간을 주기로 돌아가는 주기성 리듬입니다. 뇌 시상하부의 시신경교차상핵(SCN)이 '생체시계'로서 생체 리듬을 조절합니다. 이 생체시계는 신체의 장기와 대사 시스템에 연결돼 수면-각성 주기를 유지합니다. 빛이 눈의 망막을 통해 생체 시계를 자극하여 송과선을 통해 멜라토닌을 분비하게 합니다. 201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세 분의 의과학자에 의해 생체 시계 유전자가 규명되었죠.

해가 긴 여름이나 해가 짧은 겨울, 해외여행으로 시차가 바뀌어도 인체 내 생체시계가 항상성을 유지하며 돌아가지만, 밤의 조명인 빛 공해로 생체시계에 잘못된 신호를 주며 혼란을 겪게 합니다. 빛을 보며 낮이라고 착각하며 멜라토닌의 분비를 감소시키죠.

멜라토닌은 수면을 유도하는 것 외에도 면역 시스템에서 필수적이고, 항산화제 역할을 합니다. 두뇌의 노화 방지에도 중요하고요. 생체시계가 인간의 수면-각성 리듬만 조절하면 간단할 텐데 대사, 면역, 노화 전반에 관여하니 문제가 커지는 커죠.




조명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인테리어 시대입니다. 조명의 디자인과 방향을 잘 조절해 원하지 않는 곳으로 빛이 새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겠습니다. 미적인 부분 외에 수면 의학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는 사회적 홍보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거시적으로는 거리의 네온사인과 가로등의 빛 공해 영향 평가 내용을 도시 계획 수립에 반영하길 바랍니다.


(좌) 휴대폰으로도 야경을 무리 없이 찍을 수 있는 여의도 (우) 별이 잘 보이는 독일 슌베르크 지역 (C) 익명의 브레인 닥터 all rights reserved


실외 조명 빛을 암막커튼으로 꼼꼼히 차단 후에 남아있는 빛이 없는지 확인해보세요. 가장 간과하기 쉬운 것이 충전 중인 스마트 기기에서 나오는 충전 표시등 불빛입니다. 침대 주변의 광원은 어두운 노란색이나 붉은색의 등이 바람직합니다.

저녁 무렵부터는 조금씩 소등을 해주고, 아이들이 늦게까지 LED 등을 켜고 있는 걸 막아주세요. 멜라토닌 분비는 저녁 9시 무렵부터 시작됩니다. 노트북 사용은 그 시각 전까지 마감하는 게 좋겠습니다.


조금 더 덧붙이자면 숙면하는 방법을 밤에만 찾아서는 안됩니다. '수면에 대한 욕구'인 수면 에너지는 '낮'에 쌓입니다. 낮에 최대한 빛을 많이 보고 야외 활동 시간을 유지해줄수록 수면 에너지가 잘 쌓입니다. 각성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겠죠. 기껏 쌓아둔 수면 에너지를 긴 낮잠으로 모두 소진해버리면 밤에 숙면이 불가능합니다. 직장 근무, 재택근무, 프리랜서 등 근무 형태와 무관하게 일정 시간을 정해놓고 야외로 나가주세요. 아이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문제입니다.




대학에 들어간 뒤로 시험 벼락치기 공부의 맛을 알았습니다. 인스턴트 커피를 뽑아 마시며 공부랍시고 모인 친구들과 도서관 뒷마당에서 밤을 새우며 수다를 떠는 게 참 좋았습니다. 인턴과 전공의 시절엔 수년간 건물 밖 햇살 구경을 하지 못했습니다. 당직을 설 때는 24시간을 병원 건물 내에서 보내야 했고요. 밤에서 새벽으로 이어지는 시각에도 병동 스테이션 혹은 응급실의 적나라한 푸른 형광등 아래에서 엎드려 잤던.. 대략 10년의 시간 동안 수면-각성 리듬을 철저히 무시하며 살아왔고, 남은 것은 실제 나이보다 노화된 저의 '뇌'라고 만시지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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