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act, Distance-learning의 시대입니다.
Harvard medical school에서 온라인으로 'Cognitive Fitness'를 주제로 강의를 받았는데요, 이 강의를 통해 배웠던 내용을 간결하게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어떤 내용은 언론 매체를 통해서 숱하게 접했던 것도 있고, 새로 알게 되는 내용도 있을 것입니다. 익히 아시는 내용이라도 지금까지 인정받은 수많은 연구 내용을 정리한 강의이니 리마인드 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강의의 전체 제목이 'Cognitive Fitness'입니다. Fitness의 개념을 익히 아시죠? 'Cognition (인지)'의 기능,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알려주는 강의입니다. Cognition이란, 생각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이해하며 기억하는 총체적인 뇌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나이가 사십 대인 저도 Cognitive Fitness에 대해 공부하고 제 실생활에 적용하려고 노력하는 과학적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중년 이후에 뇌의 기능은 감퇴하는 경로만 밟지 않습니다. 여기서 '뇌의 가소성'이란 중요한 개념이 등장합니다. 새로운 경험과 기억을 하게 되면 뇌세포들은 연결 네트워크를 새롭게 재구성하면서 '구조'가 바뀝니다. 또한 뇌질환으로 어떤 부위에 손상이 오더라도 '손상되지 않은 부위'가 그 '기능'을 대신하는 것을 뇌의 가소성이라고 합니다. 뇌의 가소성은 평생 유지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Fitness club에서 몸을 만들 듯 뇌에 좋은 훈련을 해준다면 나이와 관계없이 건강한 뇌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죠. 설사 치매의 병리 과정이 시작되더라도 더 늦출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건강한 뇌를 유지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표현하면, 인지 예비능(Cognitive reserve)을 신장(boost!)시키는 것입니다. Reserve란 어떤 상황에 대비하여 미리 구축해놓는다는 말이죠. 인지 예비능이란 뇌의 노화(aging)에 대비하여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신경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해 교육을 받거나, 외국어 공부 등 자기 계발을 하거나,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략을 짜고 고민하는 이 모든 과정이 인지 예비능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인지 예비능'이란 개념은 1980년대부터 나왔는데요, 치매 증상이 없던 환자들의 부검 과정에서 진행된 치매 병리를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증상이 없었는데 뇌 속에 병이 진행되고 있었다니 당시로서는 신선하고 충격적인 발견이었습니다. 이 분들은 치매로 인해 손상된 뇌 부위의 기능을 다른 부위에서 보완해주는 인지 예비능이 훌륭했던 거였습니다. 또한 인지 예비능이 확장되면 예상치 못했던 인생의 많은 문제, 스트레스 등을 현명하게 겪어낼 수 있는 힘이 됩니다.
후천적인 노력으로 인지 예비능이 확장되고, 그만큼 노화나 치매에 든든히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죠. 치매로 인한 뇌의 손상이 비슷해도, 교육을 더 많이 받고 공부를 더 많이 한 사람이 치매 증상을 덜 느끼는 이유입니다.
이제 분위기를 바꾸어 제 부엌으로 들어오시겠습니다. 저는 그동안 요리에 담을 쌓고 살았던 두 딸의 엄마입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친정 엄마께서 해주시는 반찬과 국(밥 조차도)에 의지하던, '독립의 의지가 전혀 없는' 철없는 딸이었죠. 아이들은 김치볶음밥이나 라면을 먹고 싶으면 아빠를 불렀습니다. 엄마도 주방에 들어가긴 해지만, 역할은 '주방 보조'였습니다. 주변을 정리하거나 잔설거지를 하는 것도 버겁고 헤매기 일쑤였고, 주방에 들어가는 게 약간 공포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하던 요리는 '카레'였습니다. 하지만 매번 하던 레시피를 외우지 못해 포장지의 설명문에서 눈을 떼기가 힘들었습니다. 카레를 할 때 왜 물의 양이 중요한지, 레시피대로 물 550ml를 정확히 맞춰야 하는지, 감자나 당근 등의 재료들의 양이 늘어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해도 못했고요. 그러니 장을 보러 가는 것도 즐겁지 않았습니다. 우리 집에 어떤 게 바닥이 났는지, 어떤 요리를 하고 싶은지, 요리에 뭐가 필요한지 전혀 알 턱이 없었으니까요.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이제 저의 요리 실력은 남편을 제쳤습니다. 딸들은 아빠를 부르지 않고 엄마에게 이것저것 메뉴를 주문합니다. 저는 냉장고를 열어 재료들을 스캐닝하고 어떤 요리를 할지 구상합니다.(Decision making & Planning) '프리타타'를 만들려고 하는데 계란 개수가 부족하고 매번 쓰던 치즈와 햄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대안을 찾아봅니다.(Flexibility & Problem solving) 부족한 계란 대신에 감자채를 보충하여 채소들이 잘 섞여 서로 붙도록 하고, 포만감 문제도 해결합니다. 치즈와 햄 대신에 연어를 사용하여 단백질을 보충하고 연어의 짭짤한 맛이 치즈를 대신하여 간을 맞춰줍니다. 예전엔 레시피를 눈에서 떼지 못했는데 지금은 레시피가 뇌에 저장(memory)되어 있고 언제나 손쉽게 꺼내 씁니다.(memory recall, 기억 회상) 요리를 할 때마다 불안하고 우왕좌왕하던 제 기분은 현재 매우 안정상태(mind control)이며, 애들이 속을 썩여도 요리에 온전히 집중(attention)합니다. 프리타타가 구워지는 30분을 그냥 보내지 않습니다. 디저트로 먹을 당근 케이크를 위해 당근을 채 썰고 오븐 예열을 시작합니다.(multi-tasking) 장을 보러 가는 제 발걸음도 가볍습니다. 마트 내부를 걸어가면서(screening) 우리 집 냉장고 내부를 동시에 떠올리며 필요한 재료가 뭔지 쉽게 찾아내고(sorting) 카트에 쓱쓱 담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일주일간 어떤 요리를 할지 계획이 다 들어있어 쉽게 꺼내 씁니다.
위에서 영문으로 표기한 기능들을 총칭하여 Executive function(집행 능력)이라고 합니다. 이 기능은 앞쪽 뇌(전두엽)의 대표적인 기능이고, 뇌에서 가장 고위의 기능입니다. 인간에게만 있는 특징이고요.
'요리하는 뇌'의 실례 (염치 불구하고 사진 올리기)
이제는 주방에 있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저의 '요리하는 뇌'는 1년 만에 월등히 진화했고, 저는 이 학습 과정과 결과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뇌의 가소성을 증명해 보였다고 자기만족하는 것은, positive feedback으로 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언제 뇌/인지 능력의 이상을 의심하고 신경과 의사에게 진료를 보러 가야 할까요?
하나, 엉뚱한 단어가 자꾸 등장할 때입니다. 대화를 하다가 가끔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에게도 흔히 있는 일이죠. 그런데 '장난감'을 치우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커피'를 치우란 식으로 엉뚱한 단어를 넣는 실수를 반복한다면 한번 고려해보세요.
둘, 해야 될 일을 제대로 시행하는지 봐야 하는데요. 집안 청소를 부엌 청소-거실 청소기-먼지 물걸레질- 화장실 청소 순으로 하던 분이 예전보다 느린 속도로 해야 될 일을 모두 마무리하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부엌을 청소하다가 갑자기 멈추고 화장실 변기를 닦다가 나와서 TV를 보며 해야 될 일들을 까맣게 잊고 내버려 두는 경우가 반복된다면 의심해야 합니다.
셋, 자동차 키를 어디 뒀는지.. 누구나 자주 헤매는 경우이죠. 하지만 갑자기 어떻게 운전해야 할지 몰라 브레이크와 액셀의 위치를 헤매면 얼른 병원으로 와야겠죠.
넷, 그럴 만한 상황에 짜증과 화를 낸다면 괜찮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느닷없이 가족이나 동료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빈번하다면 병원으로 오셔야 합니다.
다섯, 가끔씩 물건 위치를 헤매며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치를 정해놓은 중요한 물건이 매일 엉뚱한 장소에서 발견된다면 이상 징조입니다.
여섯, 어제저녁에 무엇을 먹었는지 반찬까지 세세히 기억이 나시나요? 어제 먹은 식사 메뉴를 기억하지 못할 때 옆에서 힌트를 주세요. 힌트를 통해 기억한다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에둘러 말해줘도 전혀 기억할 수 없다면 의심해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자꾸 넘어지면서 다치는 횟수가 빈번해지면 인지 기능에 문제가 없는지 검토해보셔야 합니다. 뇌의 인지기능-보행-몸의 균형감각은 서로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과 공원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잘 걸으시는지 보세요. 커피를 음미하며 자녀와 대화에 집중하면서 무리 없이 잘 걸으신다면 좋은 sign입니다.
향후에는 인지 능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얘기를 풀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