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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성 어지럼증, 노화성 전정병증

고령화 시대, 달라지는 질환의 범주


'나이 듦'을 신체적으로 각인하는 대표적인 순간은, 본인의 감각 기능이 예전 같지 않을 때입니다. '시력'과 '청력' 이 두 가지 감각 기능에 이상을 느끼면 우리는 습관처럼 '나 나이 들었나 봐', 노화의 시작을 알립니다. 나이에 따른 시력 저하를 presbyopia, 청력 저하를 presbycusis라는 의학 용어로 표현하는데 저의 경우에는 유독 입에도 손에도 잘 붙지 않는 단어라 병원 차트에 잘 쓰지 않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Presby'는 'old age'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 같습니다.

시력과 청력에 버금가는 빈도로 노화와 함께 동반되는 것은 '평형감각', 전정 기능의 이상입니다. 경미하더라도 잠깐의 어지럼증이나 균형 이상이 낙상이나 골절로 이어질 수 있어 신경과의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60세 이상의 거의 50%에서 평형감각의 이상을 호소합니다.

그동안 노화에 따른 경미한 감각 이상은 진료실 진단과 치료권 밖이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원인이 '나이' 때문인데 어찌할 도리가 있느냐, 속 편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사세요 이랬습니다. 하지만 질환의 정의 기준과 중요성은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노안으로 치부했던 것이 때로는 황반 변성으로 진단되어 치료되고 있고, 노인성 난청은 치매와 우울증의 위험도를 높이는 인자로 주목을 받고 관리되고 있습니다.




2045년경엔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35% 정도로 예상됩니다. 현재의 15%에서 35%로 비중이 늘어나면, 더 많은 분들이 이런저런 증상으로 신경과 진료실로 내원하실 텐데요. 그런데 과연 그 환자분들이 기존의 신경과 질환 정의 범주에  잘 맞아떨어질까요?

정상과 비정상 범주 사이의 경계성에 들어가는, 질환으로 규정하기엔 증상이 심하지 않고 기능도 완전히 상실하지 않은 애매한 환자군이 훨씬 많아질 것입니다. 이것을 나이가 들면 모두 다 겪는 문제로 해석할 것인지? 아니면 노화를 수반했지만 별도 관리가 필요한 문제로 진단할 것인지? 일상생활에 불편하지 않도록 개선할 방도는 없을지 고민하기 시작해야 할 시점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2019년에 '노화성 전정병증(Presbyvestibulopathy)'에 대한 개념을 따로 규정하여 정의하고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명확한 정의가 없었습니다. 진단 기준은 역시나 Barany society 전문가 집단에 의해 마련되었습니다.

평형에 중요한 전정, 시각, 체성 감각이 나이에 따라 감소하고 뇌기능 저하, 정신 증상, 만성 질환으로 약 복용, 근골격계 약화, 반사 저하 등이 복합적으로 원인이 됩니다. 노화에 따른 평형감각의 저하에 주목을 하는 이유는, 최근 의학계에서 가장 주목을 하고 있는 '인지 기능'과의 관련성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인지 기능이 떨어지면 공간 지각력도 떨어지겠고, 이는 평형감각의 저하와 함께 잦은 낙상 위험도로 연결되기 때문이지요.


'노화성 전정병증'의 진단기준을 간략히 살펴보면,

60세 이상에서 3개월 이상 전정기능 이상을 시사하는 증상(자세 불안정, 잦은 낙상, 만성 어지럼증, 보행 이상 4가지 중 2가지 이상)이 있어야 하고, 전정 기능 검사의 지표가 경도-중등도 사이의 전정기능 저하를 나타내는 기준에 맞아야 하며, 다른 질환으로 설명되지 않아야 합니다. 흔한 이석증과 같은 질환과 감별이 중요하죠.

삶의 질에 큰 영향을 주지만 심한 안진(안구의 빠른 움직임) 징후가 없고, 각종 전정 검사를 시행해도 경미한 정도로만 이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단기준을 통해 애매한 경계성 범주에 있던 불편함을 진단과 치료의 범주 내로 끌어들여 '상대적으로 방치되었던' 노인성 어지럼증의 재활을 활성화시킬 있는 계기됩니다.

 

얼핏 질환의 개념은 단순해 보이지만 감별 진단이 중요합니다. 기립성 어지럼증은 아닌지, 시력 저하나 발바닥에서 올라오는 감각 손상이 없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파킨슨병이나 치매와 같은 퇴행성 질환의 한 증상이 아닌지도 당연히 봐야겠지요. 이외에도 근골격계, 척추문제 등도 살펴봐야 합니다.

개인의 약 복용력도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으면 큰 도움이 됩니다. 최근 수개월 이내 복용했던 약 이름을 잘 정리해서 진료실로 내원하시면 의사 입장에서 매우 감사합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복용했던 약에도, 늘 중요하게 여기며 복용해왔던 약에도 어지럼증의 비밀이 숨어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고령에서 4가지 이상의 약물을 복용하면 낙상 빈도를 악화시키기 때문에, 어떤 약을 빼줘야 낙상 위험을 줄여줄 수 있을지 항시 고민하나 쉽지 않습니다. 파킨슨 환자의 경우 약에 의한 어지럼증이 있을 수 있지만, 약을 함부로 빼면 파킨슨 증상이 악화될 수 있습니다.

감별 진단의 최종 판단은 의사의 몫이지만, 어지럼증을 겪는 당사자나 가족들이 이런 정보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진단과 치료가 효과적으로 진행됩니다.

 



원인을 찾는 동시에 낙상 예방을 위해 골다공증 검사가 중요합니다. 낙상을 하더라도 골절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근력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골다공증을 진단하고 치료해줍니다. 반사 신경과 근력을 활성화시키면 예상치 못한 낙상의 경우에도 신체를 지켜줍니다. COVID-19에 대한 두려움, 이동 제한령으로 집 밖을 나가지 않으시는 부모님께 근력의 중요성을 수시로 말씀드립니다. 30-40대 연령층도 자택 근무 등으로 1주일에 1번도 나가지 않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본인의 허벅지 근육, 위팔 근육을 살펴보세요. 근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Lockdown으로 텅 빈 광장, 크리스마스 마켓은 옛 이야기 (C) 2020. 익명의 브레인 닥터 All rights reserved.


평형 기능이 손상되고 어지럼증을 느끼면 가장 먼저 '무서움'을 느낍니다. 침대에서 일어서서 나오는 것조차 두렵고, 화장실 가는 것도, 음식을 만들어먹는 것, 장보기 모두가 두려움의 대상이 됩니다. 심리적인 위축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정재활치료는 어지럼증 환자분들을 위한 적극적인 훈련 프로그램으로 안전하고 효과가 입증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에 신의료기술로 고시되었습니다. 목적은 움직이면서도 시야가 안정되고 균형 잡힌 보행을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평형에 대한 자신감을 얻어 일상생활을 지속할 수 있고, 삶의 질을 높이고 낙상을 예방할 수 있좋은 치료입니다. 여느 다른 재활치료와 마찬가지로 개인에 따라 필요한 '맞춤 운동'을 구성합니다. 시각이나 몸의 신체 감각에 너무 의존하지 않고 고유의 전정 기능을 최대한 끌어올리도록 합니다. 맞춤 전정 운동은 재활의학과에서 주도하지 않고, 신경과 혹은 이비인후과에서 어지럼증 평가와 함께 처방하는 프로그램입니다.




80세가 넘는 어르신들이 모두 어지럼증을 겪는 것이 아닙니다. 독일에서는 70세가 넘는 분들이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 도로를 질주합니다. 어지럼증이나 평형감각 이상은 노화가 원인이 되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면 나타날 수 있는 생리학적 혹은 병리적 증상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노인성 어지럼증이 불치가 아니고 맞춤 운동 프로그램으로 적극적으로 다룰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것은, 100세 시대의 건강한 노후를 위한 든든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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