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의 롤 모델, 그분의 자서전

신경과 의사 올리버 색스, <On the Move>


나는 지난 10년간 나와 동시대에 살던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봐 왔다. 나의 세대는 저물어가고 있고, 매 죽음마다 나 자신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든다. (중략) 그 사람의 죽음이 남겨놓은 부재는 다른 이에 의해 채워질 수 없다. 모든 인간은 각각 고유의 의미가 있고, 자기 자신만의 삶을 살다가 자신만의 죽음을 맞이한다.

두렵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지는 않겠다. 현재 나를 가장 압도하는 마음은 '고마움'이다. 나는 사랑했고 또 사랑받아왔다. 많은 것을 받았고 일부는 되돌려 주었다. (중략) 나는 작가로서 그리고 독자로서 이 세계와 특별한 교감을 해왔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의식 있는 존재, 생각하는 동물로서 살아왔고 그 자체가 내게는 크나큰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2015년 2월 19일 뉴욕 타임스, 올리버 색스 기고문 중에서.
(제가 원문을 직접 번역한 거라 엉성합니다.)


2015년 8월 30일

2015년 8월 30일, 신경과 의사 '올리버 색스(Oliver Sacks)'는 향년 82세의 일기로 영면에 들었습니다. 사망 9년 전에 희귀성 암인 안구 흑색종(ocular melanoma)을 진단받았고 말기에는 간 전이로 고생하였는데, 그 시기에도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셨던 부분에 참으로 숙연해집니다.

5년 전 신경과 진료실에서 그분의 사망 소식을 뉴스로 접하고 무척 소름이 돋고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진료 업무가 과다하고 슬럼프로 힘들어 제대로 추모해드리지 못하고 잊고 지내다, 최근 <온 더 무브>라는 자서전을 통해 옛 기억을 다시 들춰내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의 자서전 전문은 그 자체로 완벽하여 초라한 감상문 대신 온전한 인용만이 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Mentor, <An Anthropologist on Mars (화성의 인류학자)>

그분의 책을 통해 '신경과'로 전공 파트를 정했으니 저의 멘토이자 롤모델이었습니다. 당시 바다출판사에서 펴낸 '화성의 인류학자'라는 책을 접하고 개안을 한 듯한 신선한 충격에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신경과' 지원에만 매달렸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네요.


올리버 색스는 신경과 의사이지만 '의학 논문'이나 '연구 업적'으로 학계를 통해 유명세를 타신 분이 아닙니다. 임상 현장에서 환자를 보면서 쌓아온 진료 기록과 일기를 통해 다양한 병례사(case histories)를 소설 혹은 에세이 형식을 빌어 책을 냈는데, 그 책의 필체와 내용들이 웬만한 소설가나 시인 버금가는 감동을 불러일으키면서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는 지금의 명성을 쌓아온 분입니다.

그의 병례사 책을 번역본도 사보고 (신경과 의사이니 더 쉽게 읽히겠지-오만함에) 원서도 사보면서 조금이라도 그의 흉내를 내보고 싶었지만 전공의 저년차때는 툭하면 응급실에서 엎드려 자야 하는 일정에, 고년차에는 전공 서적 공부를 핑계로 개인 블로그에 제대로 된 진료 일기를 남기지 못한 것이 지금도 후회가 됩니다.


내가 구입한 올리버 색스의 저서들, 이것밖에 읽지 않아 죄송한 마음이다.


올리버 색스의 다른 모든 책을 읽기 전에 <온 더 무브>를 먼저 읽었더라면 그의 다른 책들에 대한 이해가 더 깊었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온 더 무브>에는 그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있습니다. 특히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를 완성하기까지 거의 10년의 고통을 겪었다고 고백하는 부분은, 천재로만 보였던 그가 그렇게 인간적으로 보일 수 없었습니다. 한편으론 10년의 지독한 끈기가 소름 돋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해양 생물학, 화학, 역사, 식물학 분야에 꽂혀 다독을 했으며, 광적으로 에세이를 즐겨 썼습니다. 단순히 화학 실험에 빠지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화학자들의 생애, 새로운 발견 뒤에 있었던 논쟁의 '역사'까지 파고드는 집요했던 초년 시절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 큰 딸은 도대체 무얼 파고 있나.. 옆에 나란히 놓고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올리버 색스가 의대에서 학생 교육을 담당했을 때 19세기의 저술을 같이 토론하도록 했다는 것은 누구나 경악할만한 일이었습니다. 의사들은 최신 논문을 업데이트하기에도 벅찬 일정인데 한 세기 전까지 거슬러 마스터하라는 얘기가 곱게 들릴 리 없었겠지요.


스테디셀러 작가인 올리버 색스는 1년에 만 통 가까이 팬레터를 받았고 교도소 수감자에게도 성실하게 답신을 주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팬심을 이메일로라도 전달하지 않은 저의 무신경한 게으름을 탓해봅니다.


솔직함

<온 더 무브>엔 이전 저서들에서 짐작하지 못했던 그의 성적 취향까지 솔직하게 담겨있습니다. 그는 남성들과 열정적인 사랑을 나눈 퀴어였고 모터 사이클을 주말마다 즐겼습니다. 향정신성 약물이 자신의 뇌에 미치는 영향을 직접 경험을 통해 이해하고 싶어 마약을 시작했는데, 중독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어했던 부분은 충격이었습니다. 만족스럽고 의미 있는 일을 찾고자 기초 연구에서 임상 의학으로 넘어가면서 올리버 색스는 상태가 호전되었습니다. 환자들에게 진심을 다하면서 책임감 있고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정신과 주치의에게 '주의 기울이는 법', '말로 표현된 것, 의식에 드러난 것 너머의 무언가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웁니다.


쾌감은 어떤 것도 누구도 필요 없는 근본적인 완전함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철저한 공허였다.(중략) 이것이 내 몸에, 어쩌면 내 뇌에 무슨 짓을 하는지 거의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중략) 목숨 갖고 불장난을 하면서도 나는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다. 월요일 오전이면 직장에 돌아왔다. 내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아무도 내가 주말 동안 성층권에 들어갔다 왔음을, 아니 감전된 한 마리 쥐로 전락했었다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했다.


명예나 논문보다 환자 욕심

여느 신경과 교수들처럼 '대학 교수'라는 번듯한 직함을 갖고 '모범적으로' 살면서, 넘치는 재능을 기부하듯 '일반인들을 위해 알기 쉬운' 신경과 이야기를 썼을 거라고 마냥 생각해왔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올리버 색스는 오십 대가 되기까지 번듯한 명함이나 고정된 직장이 없었습니다. 그는 2007년 74세에 컬럼비아 대학에서 교수직을 수락했는데, 그때조차도 본인에게 영감을 주는 환자들을 진료하는 걸 멈출 수 없었습니다. 아흔이 넘도록 왕진을 다녔던 그의 아버지와 겹쳐집니다.

그에게 황금기를 선사한 <깨어남>이란 저서는 요양병원에서 봤던 환자들의 진료 기록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닌 사람을 치유하는 것이 의료의 가치라고 생각했던 그에게, 정규직으로 고용된 이름난 병원보다 환자들과의 직접 대면이 더 중요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처럼 분과 전문의 중심으로 돌아가는 미국 의료계를 비판하고, 일차 의료가 근간을 단단히 받쳐줘야 한다는 점도 역설하였습니다.

 

실질적인 가르침은 환자의 머리맡에서 이루어졌고, 실질적인 공부는 환자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그로부터 '현재 질환의 역사'를 알아내고 세부 사항을 채울 정확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화성의 인류학자'는 올리버 색스 본인

“I had always liked to see myself as a naturalist or explorer.”
“I had explored many strange, neuropsychological lands — the furthest Arctics and Tropics of neurological disorder.”


그는 주로 대중을 대상으로 책을 썼기에, 학계에 출판한 논문은 저명한 다른 대학 교수들에 비해 많지 않습니다. Pubmed 에서 검색해보니 23편이었습니다. 하지만 Lancet, Neurology, Brain, Annals of Neurology 등 인용 지수가 최고로 높은 학술지에 주로 논문이 등재되었습니다. 전문성의 섬에 갇히지 않으려 노력했고, 환자에 대해 고민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이길 원했던 분입니다.


정신분열증(조현병)을 앓았던 마이클 형에 대한 묘사를 보면 다른 환자들을 향한 그의 태도를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정신과 질환이든 신경과 질환이든 진단과 치료 약물에 의존할 문제가 아니라 환자에게 의미 있는 인생을 누리도록 공동체 환경과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그의 가르침은, 가장 사랑하는 가족 마이클 형에 대한 안타까움과 죄스러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형은 이 파킨슨증 증상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형은 걷기를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그냥 걷는 것도 아니고 성큼성큼 활보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형은 이 약물의 향정신효과가 훨씬 더 기분 나쁘다고 했다. (중략) 세계를 꿰뚫어 보던 명징하고 예리한 눈도 사라졌다. "안락사당하는 기분이야"라고 말을 맺었다. (중략) 형하고 외출해 맛난 것도 사 먹고 영화도 보고 연극도 보고 음악회도 가고 (형 혼자서는 절대로 하지 못한 그런 일들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하지 않았다.


인연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자세히 관찰하는, 마음의 눈이 항상 외부로 향했습니다. 책을 집필하다 만나건 여행길에서 마주한 어떤 사람이건 상대방의 모든 측면을 진지하고 깊게 천착하는 분이었습니다. 올리버 색스는 본인을 '자꾸만 본질에서 이탈하고 과장하고 늘어지는' 사람이라 했지만 다정한 인간미와 정직함으로 사람과 소통하는데 정성을 다했습니다.


두 사람 다 매우 다른 방식으로 내게 좋은 영향을 미친 스승이었다. 크레머는 더 주의 깊게 관찰하며 직관을 신뢰할 것을 가르쳤고, 질리어트는 어떤 현상을 보건 반드시 그 기반이 되는 생리학적 메커니즘을 생각할 것을 가르쳤다. 50년이 넘게 지난 지금,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두 사람을 추억한다.
- 미들 색스 병원에서 수련받았던 스승 '크레머'와 '질리어트'에 대해서


저명한 논문을 읽고 연구하고 학회 활동을 하며, 조금이라도 인용 지수가 높은 논문을 쓰는 것에 여념이 없는 현재의 풍토를 계속 떠올립니다. 저같이 게으른 자가 그분들의 업을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지만요.

빅데이터 시대에 근거 중심 의학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위해 환자 몇 천명 몇 만 명을 등록하여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당연 가치 있는 일입니다. 많은 수를 다룰수록 통계의 오류도 줄어들고 종합적인 개괄이 가능하니까요. 하지만 신경질환처럼 증상이 복잡 다단할 때는 환자 개인에게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다가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신경과와 정신과의 협업

올리버 색스는 엄밀히 말하면 '신경과' 의사이지만 '정신과'(현재는 '정신건강의학과'가 정식 명칭입니다.'신경정신과'는 잘못된 명칭입니다.)와 협업을 무엇보다 강조한 분입니다. 신경과 의사는 정신과적 증상을 항상 마주합니다. 뇌졸중 환자들도 육체적인 마비 증상만 호소하지 않습니다. 파킨슨 질환 환자분들은 파킨슨 '운동 증상' 외에도 '비운동성 증상'을 겪습니다. 병 자체에서 오는 증상도 있지만 약물 치료와 관련되어 우울증, 불안증, 이상한 충동감, 강박증 등을 겪는데요, 두 전문과를 분리해서 접근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겠지요.


내 탓이 아니고 의료 시스템 탓

우리나라 병원 환경은 너무 바쁘고 급박하게 돌아갑니다. 5분 진료 시간에 환자들의 질문이 대부분 끊기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성실하게 답변을 하시는 경우도 많지만, 그럼 환자들의 예상 대기 시간은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갑니다. 개별 환자에 대한 각개 다른 정성이 거세되고 기계처럼 돌아가는 한국의 신경과 진료실, 왜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에선 하루에 100명의 환자를 봐야 하는지, 올리버 색스같은 신경과 의사 옆에서 몇 달 수학하고 한 환자당 30분 진료가 가능한 시스템이라면 제가 더 괜찮은 의사가 되었을지 모른다는 상상도 해봅니다.


환자들은 진짜 문제를 아주 고통스럽게 겪는 저마다 절절한 사정을 지닌 진짜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의료 행위는 단순히 진단과 치료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며, 훨씬 더 중대한 문제에 직면하기도 한다. 삶의 질 문제를 물어야 하는 상황이 있고, 심지어는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를 물어야 하는 상황도 있다.


1990년 <사랑의 기적>으로 개봉된 영화. 저서 <Awakenings>가 원작으로 로빈 윌리엄스가 올리버 색스를 분했다. 두 사람은 20년 지기 친구가 되었다.


그는 <편두통>이라는 책을 집필하기 전에 편두통 클리닉에서 일을 했습니다. 편두통을 앓는 환자들은 정말 다양한 증상을 겪습니다. 색스 박사의 표현에 의하면 편두통은 '신경학의 백과사전'입니다. 두통은 기본이고 어지럼증, 시야 증상, 두근거림이나 흉통과 같은 심장 증상, 메스꺼움이나 복통 같은 복부 증상 등 워낙 많은 증상을 포괄하고 있는 질환입니다. 그는 편두통 환자를 진료하면서, 증상 이면의 심리 욕구까지 파악하려고 애썼습니다.


무의식적 동기가 때로는 생리적 경향과 동맹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증이자 어떤 사람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패턴과 맥락, 그 인생의 유기적 질서에서 하나의 질환 또는 그 치료법만 따로 떼어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증이었다. (중략) 편두통은 백인백색이며,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이례적이다. 그들과 함께하는 임상이 내게는 의사로서 진짜 수련 과정이었다.


좋은 집안, 인복, 하지만 결국은 노력파

올리버 색스는 영국과 미국 모두에서 베스트셀러 에세이스트였습니다. 부모님과 형제들이 모두 학식 있고 책을 많이 읽는 의사 집안이었고, 이모들도 유명한 학교 재단을 설립하는 등 명망 있는 친척들에 둘러싸여 어린 시절을 보낸 행운아였습니다. 인복도 대단했습니다. 그의 천재성이 묻히지 않게 건설적인 도움을 주는 지인들, 엄한 부모님을 대신하여 속 깊은 대화를 편지로 주고받았던 레니 이모까지. 하지만 다양한 영역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 A에서 파생하여 B와 C까지 연결 지어 생각하는 통찰력, 영감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구체화시키려는 집요함,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을 잡기 위해 부지런히 펜을 놀렸던 성실함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올리버 색스는 수십 년을 보장된 미래 속에서 산 사람이 아닙니다. 기초 연구를 할 때는 샘플을 분실하고 기계를 망가뜨렸다고 동료들로부터 쫓겨났고, 진심을 다해 일했던 클리닉에선 소신을 밝히다 수장과의 트러블로 쫓겨났습니다. 그나마 정규직으로 일하던 요양병원에선 제공받은 숙소를 뺏기며 나와야 했고요. 그럴 때마다 그는 현재에 충실하며 마음이 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가 적어온 노트가 1000권이 넘는다 하니, 그 많은 책들을 모두 읽는다 하더라도 부족할 듯 싶습니다. 현재에 충실한 사람의 나날을 이렇게도 상세히 들여다본 적이 있을까요.


과학적 객관성을 기술하는 것도 중요하고, 환자들을 보면서 겪은 경험의 다양한 진폭을 성실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올리버 색스의 책임감과 자의식은 소중한 귀감이 됩니다. 의료 행위와 환자들의 서사를 종합하고자 했던 그의 신념은 자서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메모와 펜을 항시 휴대하며 걸어가다가도 수영을 하다가도 멈춰서 갑자기 떠오른 생각들을 다잡고자 했던 성실함, 넘쳐나는 생각들 중에서 관통하는 주제를 찾고 명료하게 전달하기 위해 고심했던 그를 존경합니다.


사람이 살아 있는 풍부한 병례사들이 자신의 탁월한 신경심리학 논문들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믿었다. 고전적 접근법과 소설적 접근법, 과학과 이야기를 결합시키고자 했던 루리야의 노력은 곧 나의 노력이 되었다.


쓰기 중독자 올리버 색스 (사진 출처 : oliversacksfdn instagram)


그는 신경과 임상기록으로만 지면을 채우지 않았습니다. 화학의 주기율표와 해양 생물계의 신경계, 원주민들의 풍토병, 양치식물까지 그의 지적 관심사의 영역은 끝이 없었습니다. 범위가 넓다고 그 깊이가 얕지도 않았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편지로 교신하며 관심사의 외연을 지속적으로 다듬었기 때문이지요. 비 신경학 인문계에서 신경학을 넘어 원소와 같은 과학계 너머까지 광대한 지식 스펙트럼과 지적 욕구를 읽으며, 대중들은 대리 만족하고 열광합니다. 점점 더 전문화되고 경쟁이 심하여 블루오션을 찾기가 지극히 어려운 현재, 그의 삶은 너무나 충만하고 아날로그적이고 행복해 보입니다.


색스 박사가 책을 출간한 시점과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시점은 거의 20년 이상 간극이 있습니다. 그가 기술한 임상 사례 중에서는 발전된 신경과학으로 설명하고 규명된 것이 많습니다. 20세기에는 임상 관찰로 그쳤던 증상을 뇌파, Brain mapping, functional MRI, PET scan 등으로 기술하여 연구하는 시대로 넘어왔습니다.

올리버 색스는 말년까지도 임상 현장을 지키며 일하는 신경과 의사로서, 이론가들인 신경 생리학자, 유전학자, 신경 생물학자들과 교신을 통해 영감을 주고받습니다. 인생의 후반기에 급격히 쌓여가는 과학계의 지식을 소화하여 타인과 소통하고 싶은 욕구가 절실하여, 극심한 좌골 신경통에도 서서 집필하며 고통을 이겨냅니다.

글쓰기에 집중하는 것이 마약성 진통제만큼 효과가 좋았다는 <온 더 무브>의 마무리 부분을 읽으니, 책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의 또 다른 책들이 기다려집니다. 좋은 책은 새로운 뇌를 만듭니다. 올리버 색스는 쓰기 중독자의 바람직한 본보기를 보여준 분입니다.


책을 읽는 속도보다 구입하는 속도가 빠르지만, 이것도 지적 욕구라며 합리화시킨다. (사진 출처 : oliversacksfdn instagram)









매거진의 이전글 자존감 공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