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과 의사 올리버 색스, <On the Move>
나는 지난 10년간 나와 동시대에 살던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봐 왔다. 나의 세대는 저물어가고 있고, 매 죽음마다 나 자신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든다. (중략) 그 사람의 죽음이 남겨놓은 부재는 다른 이에 의해 채워질 수 없다. 모든 인간은 각각 고유의 의미가 있고, 자기 자신만의 삶을 살다가 자신만의 죽음을 맞이한다.
두렵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지는 않겠다. 현재 나를 가장 압도하는 마음은 '고마움'이다. 나는 사랑했고 또 사랑받아왔다. 많은 것을 받았고 일부는 되돌려 주었다. (중략) 나는 작가로서 그리고 독자로서 이 세계와 특별한 교감을 해왔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의식 있는 존재, 생각하는 동물로서 살아왔고 그 자체가 내게는 크나큰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2015년 2월 19일 뉴욕 타임스, 올리버 색스 기고문 중에서.
(제가 원문을 직접 번역한 거라 엉성합니다.)
쾌감은 어떤 것도 누구도 필요 없는 근본적인 완전함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철저한 공허였다.(중략) 이것이 내 몸에, 어쩌면 내 뇌에 무슨 짓을 하는지 거의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중략) 목숨 갖고 불장난을 하면서도 나는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다. 월요일 오전이면 직장에 돌아왔다. 내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아무도 내가 주말 동안 성층권에 들어갔다 왔음을, 아니 감전된 한 마리 쥐로 전락했었다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했다.
실질적인 가르침은 환자의 머리맡에서 이루어졌고, 실질적인 공부는 환자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그로부터 '현재 질환의 역사'를 알아내고 세부 사항을 채울 정확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I had always liked to see myself as a naturalist or explorer.”
“I had explored many strange, neuropsychological lands — the furthest Arctics and Tropics of neurological disorder.”
형은 이 파킨슨증 증상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형은 걷기를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그냥 걷는 것도 아니고 성큼성큼 활보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형은 이 약물의 향정신효과가 훨씬 더 기분 나쁘다고 했다. (중략) 세계를 꿰뚫어 보던 명징하고 예리한 눈도 사라졌다. "안락사당하는 기분이야"라고 말을 맺었다. (중략) 형하고 외출해 맛난 것도 사 먹고 영화도 보고 연극도 보고 음악회도 가고 (형 혼자서는 절대로 하지 못한 그런 일들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하지 않았다.
두 사람 다 매우 다른 방식으로 내게 좋은 영향을 미친 스승이었다. 크레머는 더 주의 깊게 관찰하며 직관을 신뢰할 것을 가르쳤고, 질리어트는 어떤 현상을 보건 반드시 그 기반이 되는 생리학적 메커니즘을 생각할 것을 가르쳤다. 50년이 넘게 지난 지금,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두 사람을 추억한다.
- 미들 색스 병원에서 수련받았던 스승 '크레머'와 '질리어트'에 대해서
환자들은 진짜 문제를 아주 고통스럽게 겪는 저마다 절절한 사정을 지닌 진짜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의료 행위는 단순히 진단과 치료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며, 훨씬 더 중대한 문제에 직면하기도 한다. 삶의 질 문제를 물어야 하는 상황이 있고, 심지어는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를 물어야 하는 상황도 있다.
무의식적 동기가 때로는 생리적 경향과 동맹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증이자 어떤 사람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패턴과 맥락, 그 인생의 유기적 질서에서 하나의 질환 또는 그 치료법만 따로 떼어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증이었다. (중략) 편두통은 백인백색이며,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이례적이다. 그들과 함께하는 임상이 내게는 의사로서 진짜 수련 과정이었다.
사람이 살아 있는 풍부한 병례사들이 자신의 탁월한 신경심리학 논문들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믿었다. 고전적 접근법과 소설적 접근법, 과학과 이야기를 결합시키고자 했던 루리야의 노력은 곧 나의 노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