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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의 숨겨진 명소 #1

여행 책자에서 소외된, 그러나 사랑받는 곳


뮌헨은 베를린, 함부르크에 이어 독일에서 세 번째로 뽑히는 대도시이고 규모 이상으로 쾌적하게 살기 좋은 안전한 도시로, 정착하고자 하는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주거지를 구하기 힘들고 렌트비도 비싸다. 그래서 정착 직후엔 정을 붙이기 쉽지 않았다.

뮌헨 라이프는 코로나 이동제한령과 함께 시작되었고, 현재 3개월 이상 이어지는 이동제한령으로 뮌헨을 벗어날 수 없다. 덕분에(?) 의도치 않은 소득인 건가. 구글맵을 쳐다보며 사이즈가 큰 초록색과 파란색 영역이라면 가리지 않고 찾아가니, 수년 이상 거주했던 사람들도 가보지 않은 숨겨진 명소를 알게 되었다. 물론 모두 야외에 위치하는 곳이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웬만한 곳은 모두 뚜벅이로 이동하여 꼭꼭 씹어먹 듯 천천히 오래 들여다봤다.


이 글은 뮌헨에서 적어도 3일 이상 머무를 예정인 분들을 위한 글이다. 하루 이틀 방문할 분이라면 여행 책자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곳으로도 일정이 촉박할 것이다. 관광객 입장에서는 옥토버페스트, 마리엔 광장, 신 시청사 건물, 뮌헨 레지덴츠 등뮌헨을 방문하는 이유다. 뮌헨을 걸어서 오간다면 도시의 가운데를 북에서 남으로 길게 가로지르는 거대한 영국 정원(Englischer Garten)을 거치지 않기가 오히려 힘들기 때문에, 혹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도심 공원이라는 유명세로 방문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아름답고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영국 정원도 너무 넓어서 일정과 마음이 바쁜 관광객에겐 인기 있는(가성비 좋은) 관광 명소는 아니다. 영국 정원은 '관광지'가 아니고 '생활공간'이다. 돗자리를 깔고 따사로운 해를 즐기거나 비어 가르텐에서 맥주를 마시거나, 숲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거나 하염없이 걸어봐야 한다. 공원을 가로지르는 냇가 Bach에서 수영,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까지, 공원을 다양하게 즐기는 매력을 느끼며 뮌헨을 좋아하도록 만드는 곳이다. 자주 가면 지겹다가도 또 며칠 안 가면 그립고, 날씨마다 계절마다 가보아야 한다.


영국 정원은 날씨마다 철마다 가봐야 한다. (C) 2020. 익명의 브레인 닥터 All rights reserved.


영국 정원에 인접하여 흐르는 이자르 강(Isar)의 길이도 엄청나다. 도나우 강의 지류로 오스트리아 티롤 주에서 발원하여 뮌헨의 북에서 북서쪽으로 관통하며 길게 흐른다. 유속은 빨라 보이지만 물이 맑고 깊지 않아 강바닥이 투명하게 보인다. 중간에 자갈 섬이 군데군데 보이는데, 강을 단조롭지 않게 하는데 일조하는 것 같다. 일정 거리마다 놓여 있는 오래된 돌다리가 고풍스럽다. 서울의 한강에 비해 폭이 넓지 않아서 강의 양쪽을 따라 위로 아래로 산책하기 좋다. 산책로가 단조롭지 않고 굽이지며 주변의 박물관 섬, 돌다리의 동상 들과 어우러져 이자르 강의 전경을 풍성하게 한다.


이자르 강 주변 전경 (C) 2021. 익명의 브레인 닥터 All right reserved.


동서남북에 놓인 묘지공원(Friedhof)도 외국인에겐 이색적이고 매력적인 산책로이다. 진지하고 호기심 많은 현지인들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고인의 묘지를 찾으러 나서기도 한다. Alt bogenhausen의 St.Georg 묘지같이 교회 뒷마당에 놓인 아담한 묘지에서 독일의 유명한 아동작가 에리히 케스트너의 무덤을 발견하기도 하고, 우연히 눈에 띄는 커다란 비석의 주인공을 구글링 해보니 유명한 정치 철학가 Oswald Spengler 이기도 하다. 묘지에서 산책만 하는 것이 아니다. 조깅을 하는 사람도 있고, 눈이 쌓이면 아이들이 묘비 사잇길로 썰매를 타거나 비석 옆에서 이글루나 눈사람을 만든다. 강아지와 자전거의 출입은 금지된다.


동서남북 각각의 매력이 있다. 북쪽 묘지공원(Nordfriedhof)은 뮌헨에서 가장 큰 묘지공원 중 하나로, 상대적으로 새 것이다. 대부분 고인의 연령이 1900년대 이후이고, 비석도 투박한 돌이 아니고 최근의 기술로 잘 다듬은 정돈된 곳이다. 잡초도 찾아보기 힘들었고, 키 큰 나무가 비석을 가리지 않아 해가 잘 드는 곳이다. 공원 가운데에 중후한 예배당이 자리하여 시선을 끄는데 나이가 백 년이 넘었다. 위키피디아를 검색해 보면 이 곳에 자리한 유명한 고인들의 리스트가 있어 찾아보면서 걸으면 서너 시간은 훌쩍 간다. 묘지 자리의 크기나 위치, 비석의 생김새나 정돈된 정도가 고인의 사회적 위치나 부를 분명히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고, 현세의 빈부 격차가 죽어서 뻗은 자리의 품까지 이어지는 게 씁쓸하기도 했다.

 

북쪽 묘지공원 (C) 2021. 익명의 브레인 닥터 All rights reserved.


남쪽 묘지공원 (Alter Sudfriedhof)은 말 그대로 Alter, 오래되었다. 1563년에 페스트 병으로 숨진 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묘지로 1705년에 있었던 반란의 희생자들도 대거 묻힌 곳이다. 역사를 보니 더 으스스하다. 볕이 잘 들지 않고 어둡고 습하다. 입구부터 잡초가 무성하고 이끼가 끼거나 깨진 비석이 수두룩하여 궂은 날씨에 방문하니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았다. 어떤 비석은 웃자란 나무뿌리에 밀려 기울어지기도 했다. 1700년대에서 1800년대 살다 죽은 유명한 고인들이 많았다. 묘지공원 전체를 둘러싸는 돌담은 상대적으로 비바람에 자유롭고 넓은데, 이 곳이 당시에 부귀영화나 명예를 누렸을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 종교 박물관을 능가하는 커다란 동상과 함께 자리하여 현지인들의 시선을 끈다. 어둡고 습하지만 날씨가 좋은 날 방문하면 또 어떨까, 오래된 역사를 담고 세월에 닳은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한 남쪽 묘지공원이 개인적으론 더 마음에 들었다.


남쪽 묘지공원 (C) 2021. 익명의 브레인 닥터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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