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당황스러운 날씨가 이어진다. 눈이 오면 신나게 놀려고 스키 바지를 사놨는데 비만 연신 내린다. 겨울이 맞나, 뛰다 보면 패딩이 성가시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다시 오들오들 떨게 된다. 해가 떠서 나가려고 양지바른 곳을 기대하며 주섬주섬 챙기다 보면 구름이 어느새 하늘을 뒤덮고 거실은 어둑해진다.
날씨만큼 아이의 마음이 변덕스럽다. 자기 뜻대로 일이 흘러가면 시종일관 활기차다가, 성에 차지 않으면 갑작스레 짜증을 내며 눈물을 짓는다. 아이의 감정은 엄마의 마음 위로 프린트된다. 비가 오면 같이 오고, 해가 뜨면 같이 뜬다.
엄마와 아이 사이엔 긴장이 있다. 절대 불편하면 안 되는 사이인가. 마음껏 웃어주지 못하고 칭찬 리액션도 제한적으로, 최소한으로 입꼬리만 올린다. 좀 전까지 우린 이랬어, 어찌 그리 쿨한 것이냐. 아직 엄마는 굳어있는데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눈치를 본다. 눈치를 보는 입장이 불편할 것을 생각하니, 눈치를 보게 만든 엄마는 속이 더 타들어간다. 언제나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품이 부족한 엄마라서 불편하다.
스테디셀러 육아서가 많다. 스테디셀러를 다수 보유하며 언제나 옳은 소리를 하시던 선생님을 존경하곤 했다. 선생님의 육아 칼럼을 즐겨 보며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언제부턴가 엄마는 자신을 채찍질하는 게 불편해서 그 선생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멈췄다. 왜 모두 부모 잘못이지? 왜 엄마 잘못이지? 아이가 'difficult child'가 되는 것이 모두 엄마탓은 아니지만, 결국은 엄마가 잘해야 한다는 소리로 결론이 났다.
<엄마 학교>도 있고 <엄마 수업>도 있다. '엄마의 자격'을 공부하라는 거다. 정해진 기준과 정답을 공부해야 하고, 공부의 길에는 우등생도 열등생도 있다. 물론 수업을 받지 않아도 스스로 터득하고 알아서 잘하는 학생이 있다. 가장 위에는 선천적으로 모성애가 넘치고 엄마 역할을 잘하는 육아 고수가 위치하여 주변인의 부러움을 산다. 노력의 여하를 떠나 육아고수들의 침착함과 인내심을 존경한다.
아이의 첫 3년이 결정적이라고 한다. 그 3년간 다른 것에 신경을 쏟으면 아이는 자기가 아닌 다른 것에 정신이 팔린 엄마를 보면서 자존감이 떨어진다 한다. '엄마에겐 나보다 더 중요하고 급한 게 있구나.' 그 3년간 일에 매달린 엄마의 죄의식은 누가 심어준 걸까. 아이와 트러블이 있을 때마다 그 3년을 떠올린다.
린 램지 감독의 <케빈에 대하여> 영화를 만삭일 때 봤다. 태교에 좋지 않을 충격적인 시나리오였는데, 사전 정보 없이 상영관에서 남편과 나란히 앉아서 봤다. 모성애가 선천적인 것인가 후천적인 것인가? 엄마의 사랑은 무조건적이어야 하는가? 엇나가는 아이를 보고 엇나가는 엄마가 잘못인 건가? 혼란스러웠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으면서 아이의 심연을 미리 읽어내지 못한 평범한 가족의 엄마 입장이 되어봤다. 여느 가족들처럼 부족하지 않은 사랑으로 키워낸 자식인데 엇나간다면, 엄마의 잘못인가? 결국 엄마는 '가해자의 엄마'로 평생 짊어지고 산다. 아이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고 유독 자신이 없어질 땐, 엄마 자질과 역할의 한계에 대해 생각한다.
아이가 학교 상담실에 상담 신청을 했다. '엄마의 화를 풀어주는 방법을 몰라서? 도대체 엄마 분노가 풀리지 않아서'가 이유였다. 아이도 엄마의 화를 풀어주고 싶어 했고, 엄마도 자신의 화를 풀고 싶었다. 결국 엄마만 좀 더 인내하면 되는 거였나. 아이는 '인내할 것을 연습하는 방법'에 대해 배워왔다. 다행히도 엄마의 짐을 나눠 짊었다. 상담 선생님이 '어른들은 잘 참을 줄 안다'고 하셨단다. 그 말은 인내심이 일도 없는 엄마에게 꽂혔다.
엄마도 마음껏 화를 낼 수 있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엄마의 감정을 합리화시켜주는 육아 선생님은 없다. 바른 엄마 기준에는 한참 미달이지만, 적성이 잘 맞는 역할이 아닐 수도 있다고 인정하면 마음이 좀 편해질까. 아이의 미래가 엄마의 자질에 좌우된다면 심히 걱정되고 부담스럽지만, 아이가 엄마와의 동행 자체로 충분하다고 느끼면 마음이 좀 편해지겠다.
말 잘 들을 땐 꽃같은 아이들. 엄마의 사랑은 조건적인가. (C) 2021. 익명의 브레인 닥터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