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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함을 지루해하지 않기.

슬기로운 Lockdown Life.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필력이 둔해지는 슬럼프가 찾아왔습니다.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떻게 글을 풀어나갈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는데, 브런치 작가로 공개적인 발행을 지속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더 의식을 하는 모양입니다. 브런치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비공개 블로그를 했었는데, 쓰고 싶을 땐 내 마음대로 끄적이다가 쓰고 싶지 않을 땐 내 마음대로 방치했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상황인 거죠. 사실 한 문단만 완성하면 그 이후엔 손이 가는 대로 써질 법한데, 불현듯 그 한 문단을 시작하는 것이 두렵고 별별 고민이 다 떠오릅니다.


지난 주부터 독일은 Light Lockdown에서 Hard Lockdown으로 넘어갔습니다. 아이들이 유치원과 학교에 가던 그 시간을 잘 붙잡으면 집중하면서 생각의 고리를 이어가곤 했는데,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사라졌습니다. 몸과 마음을 완전히 '엄마 모드'로 장착하여 엄마로서 마땅히 해줘야 하는 일로 깨어있는 16시간이 채워집니다. 몸은 바쁘고 시간은 금방 흘러가는데, 마음은 약간 불편합니다. 응당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고 있는 느낌 같은 것이죠. 좁은 집안에서 끊임없이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차라리 좀 지루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루함'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지루함'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 성격이 달라집니다. 오랜 시간 지루함을 심각하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불안과 우울감에 취약합니다. 반면에 현명하게 지루함을 수용할 줄 아는, 창의적인 사람들도 많습니다.

사실 '크리에이티브'란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직장 상사가 창의적이고 쌈박한 아이디어를 제출하라고 하는 것만큼 스트레스를 주는 것도 없습니다. 내가 가진 생각은 항상 지척에 있는 그 누군가의 머리를 거쳐갔을 것이고, 블루오션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기에 '크리에이티브'라는 단어는 항시 부담스럽습니다.

부정적인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달리 생각해보면 '지루한' 상태에서 결실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만사 귀찮고 다 하기 싫은 공허한 마음과는 다릅니다.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기 때문에 '지루함'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온라인 수업, 재택근무, 약간의 산책, TV, 인터넷이 전부인 COVID-19 일상에서, 지루하지 않을 방안을 생각해내는 게 모두의 숙제인 시기입니다.




저는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붙들고 있으면서 Lockdown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손이 노트북 자판 위를 가볍게 이리저리 횡단하는 기쁨을 맛보고 있지는 못하지만, 막연하게 걱정만 하기보다 구체적으로 글감을 이어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설거지를 하는 순간, 양치질을 하는 순간, 마른빨래를 개는 순간에도 문득문득 떠올리며 썼다 지웠다 썼다 뜸을 들였다 합니다.

지독하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으면 과감히 동선을 바꾸거나 덮어버리고 다른 것에 몰두를 합니다. 세부 전문 과목에 대한 온라인 학회를 밤새 듣거나, 소설을 내리읽어냅니다. 익숙하게 해왔던 닭가슴살 요리를 변형시켜 보기도 하고, 당근 케이크를 열심히 만들어 주변 이웃들에게 뿌립니다. 공원에서 파워 워킹을 하거나 푸른 하늘을 보며 달리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다 어떤 생각에 도달하면 홀연히 사라지지 않게 붙잡아 둡니다.

글을 쓰지 못해 쌓인 괴로움이 졸작 한 덩어리를 마주하는 괴로움보다 크면, 만사 제치고 일단 노트북을 들고 와서 펼치고 한 줄이라도 적습니다. 다음을 위한 연결 고리라도 마련해놓고 노트북을 덮습니다. 괴로움은 순간적으로 누그러지고, 나와 가족들에게 너그러워집니다.


글쓰기에 대한 슬럼프를 겪으면서 명확히 깨달은 점은, 글을 쓰는 장소와 시간대를 꼭 확보해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일들을 모두 마무리하고 남는 시간에 앉아서 글을 쓴다면 '습관'이 되기 어렵고 우선순위에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남는 시간은 없습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특별히 표시를 해놓고 애정을 갖고 시간을 마련해놓은 일이야말로 진척이 가능하고, 그게 지루함을 이겨내고 Lockdown을 슬기롭게 보내는 방법입니다.  




나의 지루함만이 관리 대상이 아닙니다. 16시간 관찰 중인 아이들의 지루함도 부모의 관리 대상입니다. 따분함을 느끼면 아이들의 뇌가 퇴행이라도 할 것처럼 나서서 관리해주는 부지런한 부모들이 많습니다.

뇌는 지루함을 느껴야 새로운 영역을 발굴해냅니다. 꽉 짜인 루틴 덕분에 뇌가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의 스케줄이 빈틈없이 완벽할 필요 없습니다. 알아서 찾아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아이들의 뇌 발달에 좋다고 생각하면, Lockdown을 맞이한 어린 자녀들의 부모 마음은 좀 더 편해집니다.

아이들이 지루하다고 감정을 표현하면, 색다른 아이디어를 찾아내지 못해서 그런지 아니면 평소보다 더 많은 자극을 필요해서 그러는지 구별해보세요. 즐길 것들이 넘치는 세상에 익숙했던 우리는 '자극'에 대한 역치가 많이 높아져 있습니다. 욕망에 충실하고 외양이 화려한 것들에 치여 천대받았던 일상에서 '새로움'같이 찾아보세요.


평범하고 별 것 없는 일상을 파헤쳐서 지루함을 긍정하고, 글쓰기의 슬럼프도 극복하고, Covid-19를 슬기롭게 살아내는 지혜를 얻길 바라봅니다.


Hard Lockdown 직전의 뮌헨 시내의 저녁 풍경 (C) 2020. 익명의 브레인 닥터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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