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유독 명품 소비가 호황을 이뤘다는 기사, 샤넬 가격 상승 여부와 상관없이 오픈런에 동참하기 위해 캠핑 의자를 가지고 매장 앞에서 줄 서는 이야기는 이제 식상하다. 누구나 좋은 물건을 소유하며 누리고 싶은 법인데, 자본주의에서 당연한 소비자의 욕망에 그다지 비판도 감흥도 없었다.
그런데 최근 특정 기사에 눈이 돌아갔다. 기사에 낚이기 시작했다. 작년 한 해 백화점에서 1억 수천만 원을 넘게 소비했는데도 VVIP 등급에서 떨어져서 '분노하는' 이야기에 동공이 커졌다. 본인들의 집 인테리어가 더 훌륭할 텐데, 어떤 특별한 라운지에서 주스나 다과를 먹으며(양주를 주는 것도 아닌데) 2시간을 체류하기 위한 등급을 받기 위해 한 해 1억을 쓰는 '노력'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라운지에 들어갈 '자격'을 얻지 못해 화가 났다는 이야기, 코로나로 해외여행을 가지 못한 스트레스에 집 전체 가구를 모조리 바꾸는 사람이 많아 1억 정도의 소비는 VVIP 축에도 끼지 못했다는 거다. 백화점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 수천만 원이라도 더 긁는 경쟁을 하는 사람들, 그렇게 경쟁하는 사람이 많아지니 그 특별한 등급을 '999명'에 한정한다는 이야기,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기사에서 돌려 읽어도 읽을 때마다 신선했다.자극적인 문장이 가득했다.
'언니, 우리나라에 돈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각종 뉴스와 SNS를 통해 타인의 소비 생활을 습득한다. 나의 결핍을 인지하며 소비 욕구를 장착한다. 원하는 걸 구입하고 나면 당장은 기분이 좋아지나 효과는 오래가지 않고 가치는 떨어진다. 새로운 걸 욕망하는 또 다른 사이클에 올라탄다.
소비 욕구와 대등하게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위한 욕구의 덩치도 커졌다. 미니멀리즘은 여전히 사랑을 받는다. 코로나 판데믹처럼 주도성을 빼앗기고 무기력한 시기에 주도적으로 주변을 정리하고 소비를 통제하고 심신의 안정을 위하여 미니멀리즘에 대해 공부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다. 스트레스, 불안감, 공허감에 휘둘릴 때, 불필요하게 쌓여있거나 주인도 모르게 박혀있는 물건들을 쓸어 담아 정리하는 쾌감이 꽤 짜릿하다.
사는 만큼 버리는 것에도 중독성이 있다. 버리면서 소비로 인해 휘둘렸던 수동성, 죄책감을 일시적으로 덜어낸다. 소비 욕구를 완전히 컨트롤할 수 없다면 계속 미니멀리스트에 재도전하며 반복적으로 버려야 할 텐데, 버린 물건들이 지구 어딘가에 쌓여있을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 재활용, 업사이클링, 기부 방식으로 내놓은 것들이 얼마나 가치를 재생산하고 있을지, 내가 살아가는 영역만 깔끔하고 내 소비 생활만 통제하고 나면 끝인 것인지, SNS에 드러난 고급진 미니멀리스트들의 갤러리 같은 세련된 인테리어를 보며 또 다른 욕망을 엿본다.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는 것을 소유하기 위해 선택하고 버리는 과정을구경하며 또 습득한다.
소유보다 경험을 소중하게 여기고, 업사이클링 아이템에 관심을 가지며, 명품 공유 경제가 선순환되는 현상은 바람직하나 경제 주체에 소비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소비의 메시지는 예전보다 더 은밀해졌다.새로 오픈한 모 백화점의 '리테일 테라피'를 들여다봤다. 예쁘게 심어진 진짜 식물, 넓은 정원과 자연 채광, 인공폭포를 경험하며 '쉬면서 소비하라'라고 독려한다. 결국은 거대한 비용 투자에서 이윤을 얻으려는 목적은 변함이 없는데 마치 소비자를 위하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속는 줄 알면서도, 서로의 필요에 의해 적당히 속아주고 넘어간다.
이렇게 거부할 수 없이 멋진 자연친화형 백화점에서 미니멀리스트들은 어떻게 방황하고 있을까. 사람들이 쇼핑을 통해 '힐링'한 결과 하루에 102억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소비자들은 광활한 공간에서 걷다 기다리다 사람 구경에 지쳤다면서도 '블루 보틀'에서 한잔하며 기분전환을 하니, 마법 같다.
기사 속 얘기들은 사람들의 생활을 단면만 잘라 보여준다. 강박적으로 타인을 의식하게 만들도록유도하는, 과하게 일반화된 얘기다.
억눌린 소비를 시행하는 군중들을 동물원 구경하듯 묘사하는 기사들, 그 기사에 낚이는 사람들, 엄격한 자제력을 갖도록 미니멀리즘을 유도하는 기사들, 자신의 부족한 절제력을 탓하게 되는 사람들. '광풍'이라는 단어에 피로함이 더해진다.
타인의 삶을 산지 오래다. SNS를 통해 관계 집단은 느슨하게 확장되었으나, 인생과 인생을 더 촘촘하게 비교하고 있다. 조금도 비슷하게 부합되는 점이 없는 인생들인데, 내 것보다 타인의 인생을 사는 시간이 더 길다.
과한 소비와 엄격한 절제는 뉴노멀이 아니다. 일반화된 새로운 기준이 아니라, 가끔 있는 일상의 단면일 뿐이다. '감염성'을 조장하는 기사에서 좀 자유로와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