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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스트레스 (feat. 뮌헨 청소년 과학교실)

강의를 준비하며


작년 말에 '뮌헨 청소년 과학교실'을 주최하는 지인분께 강의 의뢰를 받았다. 뮌헨 청소년 과학교실은 재독 과학자 협회 후원하에 2018년 과학캠프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4년째 이어지는 프로그램이다. 2주에 한 번씩 과학 분야의 전문가들을 섭외하여 그들의 재능 기부를 통해 행해져 왔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생 연령까지 독일 교민 자녀를 대상으로 했지만, 참여하는 국가는 독일 이외에도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 콩고 등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독일에 거주한 이후로 몇몇 강의를 온라인을 통해 접해보았다. 과학에 대한 교과서적이고 기술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목표라기보다, 미래에 역량을 발휘할 학생들이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어릴 때부터 생각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목표인 것 같다.


이 과학교실은 두 가지가 인상적이었다.

하나, 이제까지 끊기지 않고 이어져온 재능 기부의 행렬. 이전까지 진행된 강의자 이력을 훑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기 시간과 에너지를 기꺼이 내놓았다는 것, 끊이지 않게 섭외해온 주최 측의 성실함이 놀라웠다. 강의료도 없고, 주최 측 또한 수고에 대해 정신적 보상만 받는다.

또 하나, 외부의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들으러 온 아이들이 총명한 눈빛으로 질문을 던지는 광경. 학원같이 친절하게 떠먹여 주는 사교육 시스템이 있지 않으니 스스로 구해서 나선다. 산해진미로 진수성찬을 차려줘도 이내 배가 불러 소화를 시키지 못하고 꾸역꾸역 먹거나 버려야 하는데, 소박하지만 알찬 밥상을 감사히 받아 맛있게 꼭꼭 씹어 먹으며 제대로 소화시킨다. 누가 억지로 시키지 않아야 자발적인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긴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아무튼 강의는 무사히 끝났다. 강의를 위해 슬라이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 만들어야 했다. 이전까지는 주로 의료진이나 동료 의사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기에, 슬라이드에 성의 없이 의학 용어가 난무해도 용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 청중들은 훨씬 어린 비전문가였고 쉬운 한글로 강의를 해야 해서 이전에 가진 자료들이 도움이 안 됐다. '뇌'라는 주제가 실체를 잡기에 너무 광범위하여 개요를 여러 번 수정했다. 첫째 딸에게 눈높이에 맞는 조언을 했지만 그것도 말이 되지 않아 전면으로 엎어버렸다. 이미 체화해서 아는 지식들인데도 특별히 귀한 청중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옆방에서 내 강의를 듣기 시작했던 딸내미는 강의 두 번째 슬라이드부터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며 눈도 귀도 닫아버렸다.


남이 준비한 강의를 듣고, 남이 쓴 글을 읽기는 쉬워도 내가 발표하고 글을 쓰기는 어렵다. 창작 스트레스가 기분 좋을 때도 있지만 턱없이 막혀 부정적으로 흐를 때도 있다. 수동성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갑자기 창의적인 능동성을 발휘하며 아웃풋내놓기란 어렵다. 두꺼운 책을 술술 읽어대는 지인들에게 글을 써보라고 권유를 해도 고개를 흔드는 건, 그만큼 좋은 결실의 기준을 높이 설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려운 학회 발표를 대본 없이 유창하게 진행하고, 복잡한 논문 작업을 끝내 완성하는 선후배들을 보며 매번 그들의 생산성에 감탄을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 소설가의 살인사건>는 이야기 속에 또 이야기가 들어있는 구조로 오래간만에 낄낄 거리며 읽은 소설이다. 작가도 사람이라 경제적인 문제를 걱정해야 하고, 잘 나가는 작가는 오만해지기 마련이고, 작가 역시 나이가 들면서 치매의 위험이 높아지며, 인공 지능의 시대에서 자유롭지 않은 직업이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성공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감수하고 싶은 그 절절함, 원고를 수천 페이지 이상으로 분량을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세태를 추리 소설 형식에 블랙 코미디를 곁들인 소설이다. 느긋하게 책을 읽을 여유가 사라져 가고 책이라는 실체를 위협하는 매체는 점점 늘어나는 반면에, 여전히 책을 쓰고자 하는 사람으로 요란하다. 글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글로 주목을 받고 돈도 벌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웃픈 심정으로 공감할 수 있는 흡입력이 있다.


창작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결국 독자나 청자를 계속 의식하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작가의 머리말 부분을 다시 한번 읽는다. 맺음말과 함께 읽어보며 작가의 생각이 나에게 잘 전달되었는지 확인하고, 창작과 관련한 뒷이야기를 곱씹어본다. 독자 마음대로 읽어도 되고 평론가들의 친절한 핵심 써머리에 의지해도 된다. 하지만 작가들이 직접 남긴 '글쓰기 현장'에 대한 생생한 보고야말로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든든한 동기부여가 된다.

독자에게 기적을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소설 <종이 동물원>의 머리말처럼 잘 표현된 걸 본 적이 없다.


당신이 이 글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떠올리는 생각이 내가 이 글을 쓰면서 머릿속에 떠올렸던 생각과 똑같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당신과 나, 우리는 서로 다르고, 우리가 지닌 의식의 특질도 우주 양 끝의 두 별만큼이나 서로 다르다.
그럼에도 내 사유가 문명의 미로를 지나 당신의 정신에 닿는 기나긴 여정에서 번역을 거치며 아무리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해도, 나는 당신이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리라 믿고, 당신은 당신이 나를 진정으로 이해한다고 믿는다. 우리 정신은 어떻게든 서로에게 닿는다. 비록 짧고 불완전할지라도.

켄 리우 <종이 동물원>의 머리말 중에서


 사색하는 시간 (C) 2021. 익명의 브레인 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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