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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시간

한국과 독일의 간극


어떤 맑은 날, 우라시마 타로라는 이름의 젊은 어부가 낚시를 하던 중 작은 거북이 한 마리가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걸 발견하고, 구해주고 바다로 돌아가게 하였다. 다음 날, 거대한 거북이가 그에게 나타나 그가 구해준 거북이가 용왕의 딸이며, 용왕이 그에게 감사하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타로는 용궁성에 가서 용왕과 공주를 만나 며칠간 머물렀다. 타로는 다시 그의 마을로 돌아가고 싶었고, 그녀에게 떠나게 해달라고 말했다. 공주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열어보지 말라며 이상한 상자 하나를 주어 떠나보낸다. 그러나 바깥은 이미 300년이 지난 이후였고, 그의 집과 어머니는 모두 사라져 있었다.
- 우라시마 타로, 일본 전래동화 중에서 (출처 : 위키백과)


이 곳 독일에서 락다운의 시간이 5개월을 넘어간다. 변화 없는 환경, 고립, 정적과 함께 시간의 현실감이 희미해져 간다. 타지에서 느끼는 심리적 시간은 한국에서와 다를 것이라 예상을 못했다. 용궁에서의 우라시마 타로처럼 즐기느라 시간이 훌쩍 갔더라면 좋았을 걸, 판데믹으로 인한 물리적인 고립에서 유래한 엇갈리는 시간감의 의미를 찾느라 마음이 분주하다.


병원에서 일하며 시간에 둔감했던 사람이, 지금은 시각마다 또박또박 의식하며 살고 있다. 날씨와 계절의 변화, 공기의 온도, 나무 꽃과 잔디 색의 변화에 민감해지고, 시간에 대한 의식은 촘촘해지고 있다.

한국에서의 하루는 병원에서 일하는 10시간과 그 외의 시간, 병원 건물에 들어가는 시점과 나오는 시점 이렇게 단순하게 나뉘었다. 진료 업무가 마무리될 무렵에서야 시계를 보았고, 이미 저물어가는 하루를 뒤늦게 되짚어 봤다. 몇 평 남짓한 작은 진료실에서 정신없이 일한 걸로 하루가 금방 지워지는 것 같아 억울할 때도 있었다. 오전 10시나 11시, 오후 3시나 4시의 구분은 무의미했다. 가족들과의 시간은 '병원 외 시간'으로 다 몰아넣었야 했다. 

주말조차 시간감은 그러하였다. 해야 할 일을 다 하느냐 못하느냐가 기준이었지, 시간별로 계획을 세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주중에 보지 못한 계절 꽃을 낮에 볼 수 있어 위로가 되었다. 이러한 일상이 반복되니 최근 수년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지 않다. 기록할 여유조차 없었다. 익숙함이 반복되어 거대한 공백으로 채워졌다. 그 공백을 소비로서 외면하려고 했다.


시간에 쫓기며 시간을 의식할 새도 없이 열심히 살았다고, 노력에 대한 보상을 찾아 비이성적인 소비에 매달릴 때가  있었다. 내가 들인 노동의 시간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규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뭉뚱그린 삶을 살았지만, 그에 대한 보상이 필요했다. 브랜드 옷 아울렛을 들어가서 정신줄을 놓치고 집어 들었다. 할인 이 가격이 높을수록 옷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열심히 담았다. 이런 좋은 옷인데 이 가격에 살 수 있다니, 그간 노고에 대해 단단히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두 손에 쥐기도 버거운 양을 집에 싸들고 와서 남편 앞에서 이 옷이 왜 필요한지, 얼마나 합리적으로 산 것인지 변명하느라 바빴다.


시간에 쫓겨 허덕이던 인간적 존재가 조용히 머무는 곳,
시간의 한 복판에 버티고 있는 이 작은 비시간적 공간.
- 한나 아렌트의 <정신의 삶> 중에서


현재는 그때의 내가 어디 갔나 싶을 정도로 소비에서 멀어진 삶이다. 1년간 내가 산 옷은 명백한 독일 스타일의 레인코트가 전부다. 옷, 가방, 신발에 대한 물욕이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 간혹 그릇이 정말 부족하거나 우아한 커피 머그가 그리워 몇 개 산 것이 사치의 전부다. 시간에 쫓겨 허덕이던 한 인간이 타지에 와서 되찾은 것은 심리적 시간이요, 버린 것은 소비적 시간이었다. 남편의 안식년과 함께 없어진 내 월급이 원인일까, 한번 놓치면 직접 찾으러 가게 만드는 독일 택배 문화의 영향일까, 코로나로 인해 갇힌 마음 탓일까. 


숱이 듬성듬성 빠져 검소한 초봄의 독일 숲을 걷다 보면 산책이 물욕 없는 삶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줄어든 물욕이 언젠가는 부활하겠지만, 당분간은 경험과 시간에 대한 사유로 채워나가겠다고 다짐한다. 오랜 기간 고장 나 있던 시간감을 용서하는 소박한 친절을 자신에게 베풀기로 한다. 십 년 넘게 사라져 있던 낮시간의 공백이 다시 채워져 간다.

서울의 여느 누구와 마찬가지로 정신없이 하루를 살았던 생활인. 묻혀버린 시간의 가치를 짚어볼 필요가 없었는데, 덮고 있던 안개를 걷어내니 시간과 적나라하게 마주한다. 순전히 내 힘으로 꾸려나가야 하는 넘치는 시간들. 아무런 족적을 남기지 않고 지워질까 두려워했던 시간을 어떻게 채울까 마음이 분주해진다. 너무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 나갈까 봐 제동을 걸기도 한다.


시간에 대한 은 여전히 헐겁고 미흡하다. 


Inner Peace (C) 2021. 익명의 브레인 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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