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정을 인식하고, 마음을 보듬을 수 있는 글쓰기를 함께 하니 참여자분들이 많이 좋아해 주신다.
과연 이 강좌를 열어도 되나 고민을 많이 하다 열었는데, 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이다.
글을 쓴 후에는 다 같이 낭독하는 시간을 갖는데, 그 시간이 참 좋다.
누군가가 스스로 마음을 보듬은 글. 그 글을 들을 때 느껴지는 따스함이, 감동이 좋다.
강사로 함께하기에 수강생 분들이 글을 쓰시는 시간에 함께 글을 쓰기는 하지만 공유는 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 다듬지 않은, 3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쓴 글이지만 이 공간에서라도 공유해볼까 한다.
오늘의 주제, ‘나는 000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를 받아 들고, 내 장례식을 생각해 본다.
내 장례식장은 너무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폭신한 소파가 있는 밝은 분위기면 좋겠다.
너무 슬픈 음악도 말고, 너무 요란한 음악도 말고, 들으면 밝고 즐거워지는 노래를 틀어두면 더 좋겠다.
국화 같은 꽃 말고 초록색 화분들 사이에 손으로 V를 만들고 찍은 셀카가 넣어진 영정사진이 놓여있으면 어떨까?
장례식장에 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소파에 앉아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먼저 물어볼 것은 아마도 “어떻게 돌아가셨어요?”일 것 같다.
사실 장례식장에 가면 가장 궁금하지만 가장 묻기 어려운 질문.
마지막을 지켜본 가족들이 혹여나 아플까 봐, 또다시 기억하면 슬플까 봐 묻지 못하는 질문.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그려볼 때 자는 동안 죽을 것을 기대한다고 어디선가 들었다.
나도 물론 고통 없이 자는 동안 죽었으면 좋겠고, 가족들이 너무 힘들어하지 않게 조용히 세상을 떠났으면 한다. 하지만 또 한편 기억에 남을 죽음을 맞이하고 싶기도 하다.
베트남 어느 마을에서 덜 익은 망고를 고춧가루 소금에 맛나게 찍어먹으며 신나게 깔깔 웃다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올게, 하고 돌아오는 복도에서 혼자 떠나면 어떨까? 그러면 남은 이들이 적당히 아쉽지만 웃기기도 하고 맛난 것 먹고 갔으니 위로가 되는 죽음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나는 남겨진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사람’/‘나의 깊은 아픔을 사랑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마지막 순간에도 즐거움을 주고 갈 수 있다면 너무 좋겠는데, 욕심일지 도 모르겠다.
그저 매일 매 순간 곁에 있는 이들에게 집중하며 필요한 것을 채우는 사람으로 살자.
그러다 보면 즐거움을 주었던 사람도, 깊은 아픔을 사랑했던 사람도 될 수 있겠지.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오늘 하루를 더 밀도 있게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내일 만나는 이들을 생에서 마지막 만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더 깊이 사랑할 수 있기를.
[오늘 작가님이 전달해주신 주옥같은 말들]
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다운 삶을 이어가는 일이다. - 나탈리 골드버그 <구원으로서의 글쓰기>
오래된 것을 새롭게 말하거나 새것을 오래된 방식으로 말하는 것이 좋은 글쓰기의 비결이다. - 리처드 하딩 데이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