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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ia Mar 09. 2023

루꼴라를 너무나 사랑해

페이지터너 시절 만난 샐러드

루꼴라를 처음 만난 건 1999년 여름밤이었다.

학교 교수님들 연주회에 페이지터너(일명 넘순이)로 열일하고 난 후 뒤풀이로 간 레스토랑에서였다.

연주를 잘 마치실 수 있도록 곁에서 악보를 한 장 한 장 조심스레 넘겼고, 다행히 그 누구의 실수도 없이 공연이 끝난 뒤였다.

선선한 초여름의 바람이 노천에 준비된 테이블 앞에 앉은 우리를 청량하게 했다.

현대음악으로 이름이 알려진 학교에 걸맞게 교수님들은 그날 초연되는 현대음악곡을 연주하셨다. 그 곡은 3중주 트리오였는데도 혼자 넘길 수가 없었다. 첼리스트 옆에 앉은 페이지터너가 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 곡은 너무나 빨라서 정신을 정말로 바짝 차리고 있어야만 했다. 실수 없이 악보를 넘기기 위해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교수님과 나는 사실 그날까지 그다지 관계가 좋지 않았다. 당시 나는 나 자신과 싸우고, 첼로와 싸우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싸우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레슨 내내 한 번도 웃지 않는 작은 단발머리 동양 여자 아이가 아마도 많이 불편하지 않으셨을까. 하지만 희한하게도 교수님은 페이지터너가 필요한 순간마다 나를 부르셨다. 덕분에 교수님들이 하시는 좋은 공연에 함께할 수 있었다.

내가 직접 첼로를 연주한 것이 아니었지만 공연 내내 함께 긴장하며 악보를 읽고, 넘겼기에 꼭 내가 연주한 것 같은 정도의 노곤함이 밀려왔다.


푸른빛을 내는 여름밤의 하늘과 달콤한 독일 시골의  시원한 공기에 기분이 한껏 좋아질 때쯤, 메뉴판이 내 앞으로 왔다.

"쏘냐, 혹시 루콜라를 아니?" 무엇을 먹어야 할까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단어, 루콜라(독일어 발음으로는 루꼴라를 루콜라라고 부른다). 그때만 해도 내가 앞으로 이 단어를 얼마나 많이 그리워할지 몰랐었다.

교수님은 내게 루꼴라 샐러드를 강추하셨다. 그렇게 자신감 넘치는 눈빛은 첼로 레슨 때도 보지 못한 것이었다. 선생님의 눈빛에 끌려 루꼴라 샐러드를 주문했다.

조금 후 내 앞에 놓인 흰 접시에는 그 어떤 것도 섞이지 않은, 온전한 한 가지 종류의 초록이 가득했다. 아무런 소스도 뿌려져 있지 않은 순수한 와일드 루꼴라였다.

한 입 먹어보니 당최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었다. 씁쓸하고 처음 접해보는 희한한 향기를 내는 풀. 이걸 밥으로 먹으라니! 당황한 표정으로 접시를 내려다보는 나를 보며 교수님은 웃으셨다.

"올리브유랑 소금, 후추를 뿌려봐!" 교수님의 이야기에 그래봤자 뭐가 얼마나 더 달라질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접시 위 루꼴라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소금 후추를 뿌렸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특이한 맛을 내는 샐러드가 존재할 수 있는지!


첫날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맛이 이상하게도 매일 생각이 났다. 마트에 가보니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던 루꼴라가 보였다. 큰 통에 3천 원쯤 하는 루꼴라를 사 와서 매일매일 먹었다. 양이 너무나도 많았다. 처음 먹었던 것처럼 먹고 먹어도 남아서 파스타에도 올려보고 빵에도 끼워 넣어 먹었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2002년 귀국한 후에는 그렇게 매일 먹던 루꼴라를 먹을 수가 없었다. 요즘에야 쿠*에서도 주문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루꼴라는 아주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나 아주 조금 곁들여 나오는 식재료였다.

루꼴라가 나오는 레스토랑에 가게 되면 자연스레 그날의 청량한 바람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행복하기도, 쓸쓸하기도, 알 수 없는 감정이 섞여 들기도 했다. 한창 첼로를 손에 잡을 수 없을 때는 심장이 아픈 느낌이 들기도 했다.


몇 주간 쉽지 않은 일을 해결해 가는 중이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혼자 책임지며 진행 중이다. 청량한 바람과 푸른빛의 밤이 필요한 순간이다. 이제는 온라인으로도 살 수 있는 루꼴라를 잔뜩 주문했다. 독일에 가면 3천 원 한 박스에 루꼴라가 가득일 텐데, 한국에서는 한 줌 정도가 온다. 처음 먹었던 것처럼 올리브유를 두르고, 소금과 후추를 뿌렸다.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았음에도 나에게 악보를 맡겨주셨던 교수님을 떠올린다. 한 걸음 뒤에 앉아 교수님이 읽는 곳의 음을 함께 읽고, 교수님이 원하는 포인트에서 악보를 넘기던 순간의 긴장과, 모든 공연을 마친 후 박수갈채를 받는 교수님을 뒤에서 지켜보던 순간의 따스함을 생각한다. 아무도 그 자리에 있던 나를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교수님과 나는 적어도 그 순간을 함께 지났고, 어떤 순간의 공감을 나누었다.

이번 일 역시 해결되어도 나는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책임은 있지만 권리는 없는 자리에서 한 장씩 악보를 넘기는 중이다. 초여름 밤이 오기 전에 모든 일들이 잘 지나갔으면 좋겠다. 독일 시골 마을 흰 테이블 앞에 앉아 마음 편히 루꼴라 샐러드를 먹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원한다.

루꼴라를 너무 사랑하게 된 그날 밤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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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816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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