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대는 소리가 첼로 등판에서 들린다(2)
새롭게 가게 된 신학교에서는 내가 직전까지 첼로 전공을 했었다는 것을 무척이나 기뻐했고, 흥미로워 했다. 음악이 일상화가 된 독일에서도 첼로가 희귀하게 여겨지는 것이 놀라웠다. 지금도 어딜 가나 학부 전공이 첼로였다는 것을 들으면 많은 사람이 참 좋아하고 신기해한다. “첼로 소리 너무 좋아해요.”라는 말과 함께.
그러고 보니 과거 한 때 첼로를 전공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도 첼로를 할 줄 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열어주는 분들을 만나기도 한다.
음대를 완전히 나온 뒤에도 다행히 아예 몇 년 동안 악기를 놓는 일은 없었다. 결혼식이나 행사에서 한두 곡 정도의 축주를 할 기회들이 생겼고, 누군가의 음반에서 첼로 라인 세션으로 녹음할 일들이 생겼다. 너무 우습게도 전공 시절엔 그렇게 싫어해 놓고 “첼로를 할 사람이 없어요!”하면 어디든 달려갔다. 10분 이상 연주를 하면 바로 심한 통증과 함께 부어오르는 오른손을 조금씩 달래가며 여기저기서 연주를 한 덕분에 손이 완전히 굳는 상황은 모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친 이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전공시절 연주했던 클래식 악보는 펼 수도, 연주를 할 수도 없었다. 왠지 악보를 펴면 그 시절의 아픔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고, 레슨 받던 시간의 눈초리가 다시 나를 내려다볼 것만 같았다.
“여기 이 부분은 그 파샵(#)이 아니잖아!”
파샾 하나로 한 시간 레슨 시간을 꽉 채우셨던 우리 교수님은 왼손 약지에 늘 큰 반지를 끼고 계셨다. 커다란 낮은음자리표가 그려져 있는 반지가 궁금해서 여쭤보니 자신은 음악이랑 결혼을 하셨다고 했다. ‘음악이랑 결혼을 하면 파샵을 너무 사랑해서 그 노래에 딱 맞는 음색을 내지 못하면 학생의 혼을 그렇게 쏙 빼도 되는 건가?’ 생각했다.
우리 교수님은 연습 벌레셨다. 학생들 레슨 하는 시간 중간중간에도 늘 연습을 하고 있었던 분. 너무 많은 연습으로 왼손가락 끝마디는 하나하나가 다 개구리처럼 변형되어 있었다. 저 정도 연습을 해야만 첼리스트가 될 수 있다면 더는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손을 다치는 바람에 첼로를 안 하게 되었다고 시원섭섭하게 좋아했는데, 우습게도 새롭게 들어간 학교에서 결국엔 밴드에 들어가 연주를 하게 되었다. 첼로를 하는 게 무조건 괴로운 건 아니라는 사실을 전공을 완전히 포기하고 들어간 새 학교에서 알게 되었다.평생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해온 레슨을 더는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누군가 나의 연주를 보고 평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척 생경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나의 첼로 실력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음을 연주해도 박수쳐주고 기뻐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너무 독특한 경험이기도 했다. 무대에 서서 박수를 받기 위해 연주를 하고 앙코르를 위해 박수가 끊이지 않는 연주를 하려 애썼을 때는 전혀 느끼지 못한, 전공을 하지 않고 힘을 뺀 채 어떤 박수도 기대하지 않고 연주를 하니 오히려 갈채를 받는 희한한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