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대는 심장소리가 첼로 등판에서 들린다(완결)
첼로는 나에게 애증의 상대였기에 하면서도 힘들었고, 그만두고서도 힘들었다. 아름다운 첼로 선율이 들릴 때면 다시 연주하고 싶은 마음과 시작조차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충돌했다. ‘첼로를 다시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던 건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영화에서 한 사람이 홀로 노천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아오이와 쥰세이가 바라보는 장면을 새로운 시각에서 만났을 때였다. 전공할 때엔 그저 넘겨버렸던 장면이었다. 그 자리에 앉아있는 나를 떠올려보고 싶어서 그 영화와 책을 보고 또 보았다.
전공자와 비전공자의 경계에서 나는 부유하게 되었다. 경계선에조차 뿌리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은 조금은 불안하고, 아웃사이더와 같은 느낌이다. 이쪽과 저쪽 어디에도 속할 수 없기에 이쪽에 서면 저쪽이 그립고 저쪽에 서면 이쪽이 그립다. 어쩌면 늘 그리운 삶이 경계인의 삶이 아닐까.
그립다는 것은 그만큼의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 이쪽과 저쪽에 애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괜찮은 삶인지 모르겠다. 조금은 불안하고, 조금은 외롭지만.
작년 딱 이맘때부터 다시 조심스레 첼로 연주자로 살고 있다. 딱 한 번, 지원사업을 위해서만 서게 될 줄 알았던 무대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공을 하면서는 단 한 번도 음악에 몸을 온전히 맡기고 흠뻑 젖어본 적이 없었다. 전공자라고 말은 하지만 온 몸에 힘이 들어가서 첼로와 사투를 벌이던 과거의 시간들. 다시 하나하나의 무대가 쌓이면서 갑자기 울컥하는 것이 솟아올랐다. 다시 연주자로 살고 싶은 마음. 무대가 그리운 마음. 첼로가 힘들었던 전공 시절에도 최선을 다해 준비한 무대를 마친 후 마음속 깊이 차올랐던 환희가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요즘 나를 가장 짜릿하게 하는 순간은 무대에 올라 활을 긋기 전 두근대는 심장소리가 첼로 등판에서 느껴질 때이다. 고요하게 집중된 순간에 첫 음을 그을 때, 그 소리가 청중에게 가 닿는 것을 느낄 때, 몇 초가 지나 심장소리가 잦아들고 호흡이 안정될 때. 그때 느끼는 환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는 어떻게 이십여 년을 무대에 서지 않고 살고 있었던 걸까. 외로움과 슬픔, 자책과 괴로움으로 회색빛이었던 나의 과거. 다시 무대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없었던 과거를 지나 비로소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들이 쌓인다.
몇 달 전 강의를 준비하다 눈이 너무 아파서 첼로를 잡아보았다. 연습곡을 하나둘 해보다 손 다친 날 무대에서 연주했던 곡의 악보를 꺼냈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에 애써 눈을 거두던 악보. 그 당시엔 얼마나 하기 싫었던지, 교수님이 레슨 중 메모를 하라고 한 내용들이 마구 갈겨 쓰여 있었다. 2000년에 멈추어버린 악보를 다시 조심스레 읽어 보았다. 여전히 손과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그 마지막 여덟 마디. 첼리스트 지망생이자음대생으로 마지막 연주했던 곡을 드디어 마주했다. 마음은 생각보다 괜찮았고,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손과 몸에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공연에서는 처음으로 사인이라는 걸 해보았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분의 이름을 적고, 꾹꾹 눌러 감사를 전했다. 나의 연주에, 노래에, 소리에 반응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하다. 위로가 되었다고, 너무 아파 눈물을 잃었었는데 첼로가 대신 울어주는 것 같았다고, 슬픔도 장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인생의 답을 찾았다고 해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 그 분들로 인해 오히려 내가 조금씩 답을 찾아가는 것 같다.
언젠가 손이 나으면 다시 마지막 무대에서의 곡을 연주해보고 싶다. 아주 작은 무대에서라도, 아주 아주 늙어서라도. 이제라도 다시 첼로를 할 수 있어 기쁘다. 환희의 순간들을 쌓아가는 시간이 소중하다. 어쩌면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첼로를 사랑했던 것 같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