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았으면 절대 몰랐을 다섯 가지 #1
2024년 8월 암진단을 받고 벌써 8개월이 흘렀다.
암환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기 시작하면서 인생이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현재의 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고, 예상이 맞지도 않다. 암 없이 살았을 때 보다 자주 위험하고, 아프고, 눈물이 나고, 하지 못하는 것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 삶 안에도 경이가, 기쁨이, 자유함이, 안전함이, 사랑이 있다. 지금보다 건강할 때는 누리지 못했던 결핍 속에서의 풍성이 가득하다.
아프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수 있겠지만, 아프기 때문에 알게 된 많은 것들이 있다.
앞으로 다섯 번에 걸쳐 아프지 않았으면 절대 알지 못했을 이야기들을 나눠보려 한다.
암을 만나기 전에도 당뇨로 인해 식단에 제한이 많았다. 하지만 맛 자체를 느끼지 못한 적은 없었다. 아이들을 가졌을 때도 심한 입덧으로 밥을 거의 먹지 못했지만 냄새가 역해서 그랬지 맛은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암 아형은 임파선에 전이된 삼중양성 유방암 3기 초반. 종양이 크고 공격적으로 자라는 경우라 진단을 받은 후 수술 전 선제적 항암을 해야 했다. 세포 독성 항암제 두 가지와 표적항암제 두 가지를 섞어서 쓰는 방식의 치료가 결정됐다.
독성 항암제는 말 그대로 독으로 암세포를 죽이는 것이어서 여러 가지 후유증이 동반된다.
항암을 하는 환자들 대부분이 경험하는 가장 대표적인 후유증은 머리가 빠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입맛이 사라지고 오심, 구토가 생기는 것이다.
맛을 느끼지 못하는 고통은 생각보다 컸다. 전에 한 번 브런치에서 썼듯이 심할 때는 달고 신 패션후르츠에서도 맛을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즐겨 가는 브런치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인 후무스 샐러드에서도, 토마토 수프에서도 역한 고무 씹는 느낌과 쓴 맛이 났다.
먹고 마시는 것은 너무 당연해서 기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 ‘맛있다’ 정도의 감각을 느낄 뿐 다른 감정을 느끼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독성 항암 6차를 마치고 한 달 넘게 지난 후 드디어 음식에서 맛이 날 때는 경이로움을 느꼈다.
식욕이 느껴진다는 것, 먹었을 때 입안에 들어온 음식과 디저트의 식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시고, 짜고, 달고, 쓴 맛을 구분하거나 그 맛의 조화를 누린다는 것은 너무나 경이로운 것이었다.
항암을 하기 전과 후 달라진 것 중 하나는 먹을 때마다 감탄하고 감동하는 입을 갖게 된 것이다.
어린이날인 오늘, 아이들과 하루 종일 집을 뒹굴며 이것저것을 해 먹고 있다.
삶은 달걀, 볶음밥, 김치찌개, 두부부침.
별다를 것 없는 요리지만 만들고 먹으며 함께 감탄하고 감동한다.
다시 요리를 할 수 있는 체력이 된 것도 감사하다.
암이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것들. 감사한 하루가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