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았으면 절대 몰랐을 다섯 가지 #4
아프지 않았으면 절대 몰랐을 다섯 가지 #3
멍울을 발견한 건 작년 4월 중순 즈음이다. 샤워를 하던 중 오른쪽 가슴에서 동그랗고 딱딱한 무언가가 만져졌다. 직감적으로 내 몸에 암덩이가 생긴 걸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엔 아니겠지, 아닐 거야 라며 머리를 흔들었다. 이미 다양한 병을 지니고 살아가는 나로서는 하나의 병을 더 얹는 것, 그게 암인 건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덩어리가 암일 것 같다는 생각은 점점 더 강해졌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7개월 전부터 준비해 온 우간다 프로젝트였다. 멍울이 발견되었던 때는 한창 콘서트를 기획하고 있던 시기였다.
우간다 쿠미대학교 내의 선데이스쿨 아이들을 위해 영어책을 모아 보내려다가 일이 너무 커져서 컨테이너로 책과 물품을 보내게 되고, 그 비용 마련을 위한 콘서트를 준비하게 된 것이다.
당시 나는 기획, 섭외뿐 아니라 연주자로도 참여하고 있었고 콘서트를 마치고는 6월에 우간다에 직접 방문하는 일정이 잡혀있었다.
만약 내가 암에 걸린 거라면, 그래서 바로 검사를 하고 진단이 내려진다면 우간다에 갈 수 없을 것이었다.
나 스스로는 치료 전에 우간다에 다녀오는 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지만 나를 아끼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가지 못하게 말릴 것이고, 그 말들을 무시하고 다녀온다면 관계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었다.
치료 중이나 치료 후에는 오랜 시간 동안 장거리 여행을 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기에 이번에 가지 못한다면 어쩌면 평생 가지 못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오히려 암일 수 있기에 이번에 가는 일정을 더 소화하고 싶었다. 왠지 우간다에서 경험할 일들과 만날 사람들이 치료를 하는데 힘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간다에 다녀오게 되었다.
곁을 지킬 누군가가 필요하다 생각 했다.
실로 우간다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기억, 사바나의 아름다운 풍경, 쿠미 디스트릭트의 커다란 바위 위에 누워 바라보았던 은하수와 쏟아질 것 같은 별들, 매일 일하던 쿠미대학교 도서관에서의 기억이 치료 내내 힘이 되었다. 독성 항암 중 너무 힘이 들어 삶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마다 쿠미의 공기가 떠올랐고, 다시 오겠다 약속하며 포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우간다에서의 기억과 함께, 치료 기간 내내 나에게 가장 힘이 되는 건 나의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이다.
수없이 많은 이들이 꼭 필요한 때 꼭 있어야 할 곳에 있어주고 있다.
독성 항암 시기에는 많은 분들이 반찬을 만들어 집에 가져다주셨고, 내 음식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과 남편이 먹을 것까지 만들어서 가져다주셨다. 신선한 과일과 고기들도 계속 도착했다.
힘이 조금 날 때 찾아온 친구들은 계속 밥을 사주었다. 다 나으면 사라며 절대 내가 계산을 할 수 없게 했다.
무엇보다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게 된 나를 위해 이동할 때마다 라이드를 해주는 친구들, 제자들이 생겼다.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되는 걸까 싶을 만큼 많은 사랑이 매일 쌓이고 있다.
아프기 전에는 내가 누군가를 지키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켜야만 할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꼭 해야 할 것 같은 일들을 위해 하루에도 일정을 세 개 이상 소화했었다.
그렇게 다니면서도 가끔은 외로운 마음이 들었다. 가끔은 나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서도 털어놓고 싶은데,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훨씬 길다 보니 드는 감정이었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곁을 지키는 건 행복한 일이었다. 나를 만난 누군가가 하루를 더 살 소망을 품고, 꾸었던 꿈에 조금 더 닿아가는 걸 볼 수 있는 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 됐다.
돌아보니 내가 그들을 지킨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지키고 있었다.
내가 1을 준 사람들이 내게 10을 받았다고 생각하면서 내게 다시 100을 주는 것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살아오면서 느꼈던 결핍과 외로움이 다 채워지는 것 같은 시간.
나의 곁을 지켜주는 귀한 사람들의 마음들이 잿빛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과 사랑이 그리웠던 시간을 다 덮어가고 있다.
암은 내게 고통과 함께 많은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고통과 선물은 짝이 되어 매일의 일상에 존재한다.
사고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돌아가지 않겠다던 이지선 교수의 말이 드디어 이해가 간다.
나도 암을 만나기 전보다 지금이 더 행복한 시절을 살고 있으니.
아프지 않았다면, 그래서 내 곁의 귀한 이들에게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 되지 않았다면 어쩌면 평생 모르고 지났을지 모를 마음들을 마주한다.
그 마음들이 실망하지 않게 땅에 발을 딛고 잘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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