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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알게 된 나의 소중함

아프지 않았으면 절대 몰랐을 다섯 가지 #5

by Sonia

암진단을 받기 전까지 참 바쁘게 살았다.

다이어리를 보니 2019년 정도부터 거의 하루도 쉬지 못하고 여러 가지 일정을 소화하며 살았다.

몸살에 걸려야만, 코로나에 걸려야만 며칠 잠깐 쉬었다.

하루에 한 개의 일정만 있던 날은 휴가를 받은 것 같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대학원 박사 과정을 밟으며 모교 대학원과 학부에서 강의를 했고, 틈틈이 기업 강의와 가족센터 강의들을 했다. 사업자를 내게 된 기획사와 연구소 일도 열심히 했다.

뮤지컬 기획, 공연 기획, 연주, 출판일까지 쉴 틈 없이 살았다.


일과 공부보다 더 마음이 쓰였던 건 보육원, 지역아동센터 등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었고, 모교에서 만난 후배이자 제자들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 달려가 만나는 것이었다.

죽겠다고 했던 아이들이 몇 번의 대화로 이제는 살아보겠다고 해주는 게 고마웠고, 내가 조금 덜 자고 뛰어가면 안 되던 일이 해결되는 것이 감사했다.


어릴 적 엄마는 칭찬을 하지 않았다.

후에 왜 그랬는지 여쭤보니 자만할까 봐 일부러 그랬다고 하셨다.

내가 잘하는 게 뭔지 알아야 자만이라는 걸 할 수 있을 텐데, 기준도 모르는 내게 자만하지 않기 위해 어릴 적부터 칭찬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칭찬에 고팠던 걸까. 내가 존재하는 것으로 행복해해 주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좋았던 걸까.

내가 죽어가는 것도 모른 채, 암덩이가 신나게 자라는 것도 모른 채 참으로 열심히 달렸다.


암진단을 받은 지 반년이 훌쩍 넘었다.

작년 8월부터 지금까지 나를 돌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처음에는 쉬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도움을 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관성의 법칙처럼 자꾸만 내 손이 먼저 나가고, 몸이 먼저 달려가려는 걸 참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남을 아끼는 만큼 나도 나를 소중히 여기고 아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암이 준 선물이자 아프지 않았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사실이다.

가만히 있어도, 쓸모 있는 일을 할 수 없어도, 그저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존재라는 것.

남에게는 수없이 그렇게 말하며 살았지만 정작 나에게는 해주지 못한 말들.

무용해 보이는 시간이 결코 무용한 것이 아니고, 내가 누군가를 도우며 행복했던 만큼 내 주변에서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도 나를 도우며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다.


오늘은 어느새 표적항암 세 번째 날이다.

아침 일찍부터 제자가 데리러 와 준 덕분에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다.

주사를 맞으러 들어온 순간 "교수님,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라고 카톡을 보내 준 사랑스러운 나의 제자, 후배, 귀한 우리 졸업생, 동역자.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하며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쌓여서 감사하다.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되니 오히려 주변의 사랑하는 이들과 더 깊은 만남이 시작되었다.

내가 다 알아서 할 때보다 누군가에게 기댈 수밖에 없게 되니 서로를 더 아끼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몸이 나아지고 5년 후 완치 판정이 난다고 해도 지금의 마음을 잊지 않을 수 있기를.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키워가지만 그럼에도 나 스스로를 아끼는 마음을 지닌 채 누군가에게 곁을 내어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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