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짝 친구와 함께 유방암 환자가 되었다 #1
고등학교 2학년 겨울이었다. 복도에서 아이들이 웅성대고 있었다.
"야! 옆 반 부반장이 대성통곡하고 있어!"
창문에 붙어 교실을 바라보니 창문 가에 한 친구가 엎드려 엉엉 울고 있었다.
1995년 겨울, 유명 남성 힙합 듀오 가수의 죽음으로 울고 있던 옆 반 부반장.
그게 GB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방학이 지나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악질이었던 고1 때 담임을 다시 만나게 되어서 절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떤 아이들이 한 반이 되었나 궁금해서 둘러보던 중 하얗고 동그란 얼굴을 한 GB가 보였다.
울고 있던 날 등 한 번 두드려주지 못해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옆 반 부반장.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는 고3 내내 어디든 붙어 다녔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았는지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의 눈을 피해 색종이에 빼곡하게 쪽지를 써서 전달을 했고, 학교를 마치고는 구반포 맥도널드 2층 창가에 앉아 후렌치 프라이 라지사이즈 두 개를 펼쳐놓고 어둑어둑할 때까지 이야기를 했다.
서로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구반포와 카페골목을 몇 번이나 오가다가 겨우 헤어지던 우리.
좋아하는 남자 친구들 이야기, 앞 날에 대한 이야기, 부모님과 동생들에 대한 이야기, 불안하고 빛나던 우리의 수많은 이야기는 내가 유학을 떠나며 멈춰지게 되었다.
인터넷도 아직 없던 시절, 국제전화는 너무 비쌌고 서로 바빠지며 간간히 오가던 편지도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방학에 한국에 오게 되면 그날로 가장 먼저 달려가 만나곤 했지만 멀리 있기에 점점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되어 슬펐다.
유학을 갑자기 중단하고 들어왔을 때 GB은 일을 하고 있었다. 학교 두 군데를 다니며 7년 동안 유학 생활을 했지만 몸이 아파 졸업을 하지 못하고 돌아온 나는 고졸이었다. 귀국 후 1년이 조금 지나 결혼을 하게 되었고, 전공을 바꾸어 다시 대학에 들어가며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이후 몇 가지 사건으로 우리는 조금 더 멀어졌다. 늘 그리웠지만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아빠의 큰 수술로 용기를 내어 다시 연락을 했다. 관상동맥 세 개가 모두 막혀 응급 수술을 한 후 중환자실로 가신 아빠를 보며 가장 먼저 생각난 건 GB였다.
서로 좋아하는 사이가 아니냐 오해를 받을 만큼 어딜 가도 붙어 다니던 우리.
함께 쌓은 시간의 감정들이 그리웠고, 내 친구라면 아무 말하지 않아도 위로가 될 것 같았다.
다행히 우린 다시 만났고, 서로 많이 다른 삶을 살고 있음에도 새롭게 추억을 쌓아갔다.
서로가 당하는 부당한 일에 함께 화내고, 서로가 겪는 어려움에 함께 울고, 각자 해내는 성취에 박수를 치고, 함께 회사에 다니기도 했다.
엉엉 울던 내 친구가 좋아하던 그룹의 콜라보 신발이 나온다는 기사를 본 날, 반갑고 그리운 마음에 카톡을 보냈다.
"00 신발이 나오네.. 보고 생각나서"
카톡을 읽은 지 오래인데 답이 오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사실 그전 날에도 생각이 나서 연락을 했지만 답이 없었던 터였다.
한참 뒤 GB에게서 답이 왔다.
"송아야, 내게 좀 일이 있어... 그래서 네가 내 생각이 나는가 보다."
"아이고!! 왜 왜!! 자꾸 며칠 생각이 더 나더라고!"
"몸이 아픈 것 같아. 그래서 엊그제 조직검사 하고 왔어."
심장이 떨어지면 이런 느낌일까.
조직검사라니. 암이라니.
드문 드문 답이 오는 걸 기다리느라 피가 마르는 느낌이었다.
후에 내가 암이라는 사실을 들었을 때보다 GB이 암으로 확진이 되었다는 걸 들었을 때가 더 충격적이었다.
수술을 하는 날도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입이 마르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가슴 한쪽을 누가 뜯어간 것 같이 아프다고 할 때, 보호자 없이 혼자 병실에 있다고 할 때, 팔 전체에 멍이 든 사진을 볼 때마다 곁에 있을 수 없어 괴로웠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통증을 겪고,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을 지날 GB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마음을 다 담아 위로를 전한 들, 같은 경험을 하지 못한 내가 하는 이야기들은 공허한 울림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에.
그래서 내가 암진단을 받았던 날 한편 감사한 마음이 들었었다.
이제야 내 친구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니까.
드디어 진심을 담아 등을 쓸어줄 수 있는 자격이 생겼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