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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ia Apr 04. 2021

나, 경계 부유자

나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들 #1 | 모호한, 하지만 명확한 나의 정체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 한국 국적자와 문화적 유럽인  | 전공자와 아마추어 첼리스트
대학 선생과 대학원 학생 | 이북 피난민과 서울 시민 | 당뇨인과 당뇨경계인


나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자주 '경계'에 서 있곤 한다.

그래서 나의 삶을 '경계에서 부유하는 삶'으로 정의하고 있다.

어느 한쪽에 온전히 소속되어 있기보다는 경계에 서서 이 쪽과 저 쪽을 오가는 경험.

그렇기에 경계에 온전히 서 있는 것도 아닌, 떠다니며 부유하는 것 같은 삶.

경계에 산다는 것은, 꼭 문 틈에 끼어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쪽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저쪽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중간에 끼어있는 느낌.


소속감을 갖고 싶어서 고민하던 시간이 길었다.

왜 나는 이렇게 정체성이 모호한 채 살아가야 하나 싶어 괴롭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이 삶이 오히려 나의 정체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1.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에서

6급 시각장애인지만 겉으로는 장애가 드러나지 않기에 사람들은 나를 비장애인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한쪽 눈으로만 살아가는 시각장애인이다.

경계에 있기에, 양쪽을 다 조금씩 이해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이들과 소통하며, 보이는 눈으로는 보이는 이들과 소통한다.

물론, 내가 모르는 삶은 양 쪽 다 보이는 삶, 양 쪽 다 보이지 않는 삶이다.


한쪽 눈을 가리고 양 쪽 검지를 맞대어 보는 놀이(?)가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다.

한쪽 눈을 가리면 달리 보이기에 양 쪽 검지를 맞댈 수 없다 했다.

그런데 나는 오른쪽 눈을 가려도 양 쪽 검지를 맞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늘 그렇게 보고 있으니까!


태어나서 '인지'를 하게 된 후 나는 단 한 번도 양 쪽 눈이 다 보이는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

두 눈이 다 보이는 건 어떤 느낌일까?

오른쪽에서 날아오는 공을 맞지 않을 수 있는 시야는 어느 정도의 범위일까?


2. 한국 국적자와 문화적 유럽인의 경계에서

유학생이던 부모님으로 인해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태어난 후, 다시 한국에 돌아와 학령기를 보내며 '고향'을 묻는 질문에 대답하기가 참 모호했다.

한국에서 보통 고향을 물어볼 때는 태어난 장소를 묻는다기 보다 조상이 살아온 터전을 물어볼 때가 많았으니까.

나는 아빠의 고향인 평양을 말해야 하는지, 아빠가 피난 온 후 오랜 기간 사셨던 대구를 말해야 하는지, 내가 진짜 태어난 비엔나를 말해야 하는지, 아니면 오래 살아온 서울을 말해야 하는지 늘 고민했다.

고민 끝에 '비엔나'라고 말하면 휘둥그레지는 선생님의 눈, 그리고 친구들의 눈에 마음이 휘둥그레지곤 했다.


국적은 한국인이지만, 1-4세를 오스트리아에서, 20세-27세를 독일에서 살았기에 나의 문화적 정체성은 한국적인 것과 유럽적인 것이 섞여 있다. 온전히 한국인의 것이라고도, 온전히 유럽인이라고도 할 수 없는 모호한 정체성.

김치와 밥을 사랑하지만, Brötchen과 Schinken, Sauerkraut를 그리워한다.

한국어가 편하지만, 어떤 단어는 독일어로 밖에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가장 편한 사람들은 독일 교포 2세들이다.

가장 말이 잘 통하고, 가장 보고 싶은 독일의 내 동생들..


온전히 한국적인 것은 무엇일까?

온전히 독일적인 것, 오스트리아적인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경계 부유자', 그게 나의 정체성이 아닐까!


오늘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경계에서 부유한다.

모호하지만 명확하다.

이제는 이렇게 떠다니며 고민하는 시간이 좋다.

고민 끝에 이해할 수 있는 양 쪽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행복하다.


오늘은 여기까지 고민해야지.

내일은, 내일의 태양을 보며 또다시 고민해야지.

이렇게 경계 부유자로서의 하루가 간다.



경계에서 떠다니는 단상들을 적어 내려가고 싶은데,

왠지 글을 읽는 분들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도 된다.

그래도 이게 나의 삶이니 용기 내어 끄적여보려 한다.

어지러우신 분들은 패스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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