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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ia May 02. 2021

Ich, Sonia, 경계인으로서의 삶

나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들 #3

오늘은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경계인으로서의 나의 삶'을 나누었다.

그간 강의 속에서,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조금씩 살아온 이야기를 한 적은 있었지만 내 이름을 걸고, 게다가 나의 정체성을 '경계인'으로 두고 이야기한 것은 처음이었다.

장애와 비장애의 사이에서, 국적 한국인과 문화적 유럽인의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던 이야기들과, 나와 같은 삶, 아니 더 힘든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들과 한인 2세 아이들을 만나면서 스스로 정리되고 정립된 '경계인'으로의 나의 이야기들이 과연 누군가에게 필요할까 싶었다. 어쩌면 너무 실험적이었던 무대였다.

감사하게도 나의 이야기들에 공감하고 조금의 위로들을 얻어가신 것 같다. 각자의 자리에서 흔들리며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한 분들이 오셨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사실 오늘 나눈 나의 이야기들은 오롯이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지금의 내가 지금이 모습이 되어 누군가에게 삶을 나누기까지, 나의 삶을 꽉 채운 것은 나와 누군가가 함께 살며 만들어온 흔적의 이야기들이었다.

웃으며 이야기하고, 즐겁게 나누고 돌아왔는데, 아직도 잠들지 못한 채 복잡한 감정 위에 부유하고 있다.

아픔과 슬픔, 아련함과 그리움, 기쁨과 평안, 감사와 기대.. 복잡한 것들이 마음에 소용돌이친다.

독일에 두고 온 아이들이 보고 싶다. 그 시절 사춘기였던 아이들은 이미 성인이 되어 한 회사의 중직자가 되어 있고, 레스토랑 지배인이, 사장이 되어있다. 한인 교포 2세였던 아이들은 이제 3세의 부모가 되었다.


지난주에는 내 나이 22살, 그 아이 16살에 만나 누나 동생 하며 지냈던, 마음으로 아들처럼 품고 기도했던 아이의 결혼식에 가서 축주를 하고 왔다. 누나 나 schon(벌써) 37살이에요,라고 말하며 축주를 부탁해왔을 때에도, 내 눈 앞에 턱시도를 입고 서서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식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연주를 하면서도 지금 이 상황이 꿈인가 현실인가 혼돈스러웠다.

언니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이야? 누나 나는 왜 엄마랑 사전을 펴놓고 이야기해야 해? 왜 엄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하며 울던 아이들. 울며 가출해서 우리 집에 머물다 가던 아이들. 이제는 너무나 잘 커준 아이들. 한국과 독일의 가교가 되어 살아가는 아이들.

내 인생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에 서로의 혼돈과 아픔을 나누던 아이들이 그립다. 그 시간들이 그립다.


스무 살, 어린 시절 독일로 쫓기듯 날아가 만났던 아이들. 나도 흔들리고, 그들도 흔들리며.. 그렇게 가족이 되어갔는데. 7년여의 외국 생활로 온 몸이 부서지듯 약해지고 아파 잠시 휴학하고 귀국한 후 다시는 못 돌아갈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다시 돌아갈 줄 알았기에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떠나온 시간. 너무 보고 싶을 것 같아서,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면 무너질 것 같아서 연락도 못하던 시간이 14년이나 쌓였다. 그 긴 시간이 지난 후에 만났는데도 왜 그렇게 떠냤냐 묻지 않고 여전히 어제 만났다 헤어진 듯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함께 흔들리며 쌓아진 신뢰와 사랑 덕분이었겠지..


오늘 지나온 나의 삶을 풀어내며 주마등처럼 스친 7년과 14년.

다음 주에 결혼식의 주인공을 만나 그간의 이야기들을 나누면 조금 더 정리가 되기를.

문 틈에 끼인 것만 같았던 삶 덕분에 온전히 공감할 수 있었던 그 아이들의 삶, 이제 새롭게 써가는 이야기, 여전히 계속 이어지는 우리의 만남이 주는 의미가.. 조금은 더 알아지기를..


왠지 오늘 밤은 너무나 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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