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연구 | 노인문제,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
토요일 오전마다 학생들과 책을 읽고 나누어온지 벌써 1년 반이 넘었다. 원래 강의를 나가는 학교 교수학습센터 지원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는데, 책 읽고 나누는 시간 자체가 너무 좋아서 요즘에는 지원 없이도 자발적으로 모이고 있다.
사실 학생들을 위해 연다고 하면서도 내가 너무 좋아서 그만 둘 수가 없다는 것이 팩트. :)
학기 중에는 한 권, 방학 중에는 두 권을 선택해서 각자 읽고 한 주에 한 번 기억에 남은 구절, 나누고 싶은 이야기와 질문, 관련 기사들과 자료를 나누고 우리가 읽고 있는 책이 던져주는 물음에 '나는,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 오는 중이다.
기수가 거듭될수록 졸업생, 학생의 동생 등 점점 참여자가 다양해지고 있어서 대화가 더욱 풍성해지고 있다.
책의 홍수 속에서 어떤 책을 읽을지를 결정하는 것도 쉬운 문제가 아닌데, 구성원 모두가 다시 읽고 싶은 책이나, 읽고 싶은데 너무 두꺼워서 혼자서는 엄두를 못 냈던 책(덕분에 무려 752페이지에 달하는 총, 균, 쇠를 함께 읽었다!), 관심 있는 책 등을 소개하고 투표하는 방식으로 정하다 보니 좋은 책들을 계속 읽어올 수 있었다.
이번에 읽고 있는 책은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고3 학생이 추천해준 소준철 작가의 '가난의 문법'이다. 읽다 보니 서울시 연구원에서 지원하는 '작은연구 좋은서울' 연구사업에 참여했던 분의 글이어서 더 반가웠다. 2019년 하반기 사업에 함께 참여하면서 연구자로서 한 뼘 성장할 수 있어서 참 감사함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 팀도 썼던 보고서를 발전시켜서 책을 써도 좋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도 솟아난다.
가난의 문법은 다양한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폐지 줍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책을 읽으며 늘 길에서 만나던 분들, 늘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는 분들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깨달으며 스스로 너무 부끄러웠다.
궁금했으나 더 알아보지 않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데.. 이런 연구를 긴 시간 진행하고, 해결을 위한 문제를 던지는 시도를 한 작가님이 너무 존경스러웠다.
읽을수록 좋은 이 책에 대한 리뷰는 책을 다 읽은 후에 쓰고, 오늘은 학생들과 책을 읽으며 책이 다루는 내용에 더해 조금 더 원론적으로 나누었던 '노인문제 해결'에 대해 토론하며 떠오른 일본의 한 레스토랑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려 한다.
일본에는 주문한 요리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큰 팝업 레스토랑이 있다. 간판의 이름도 '주문 실수 레스토랑 The Restaurant of Order Mistakes'이다.
물이 두 잔씩 나오기도 하고, 샐러드에는 스푼이, 뜨거운 커피에는 빨대가 같이 나오기도 한다. 주문 실수 레스토랑을 찾은 손님들 사이에는 진귀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하는데, 주문한 메뉴가 제대로 나오면 실망을, 엉뚱한 메뉴를 받은 손님은 환호를 하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오히려 함께 즐기세요!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완벽한 것을 추구하고, 빠름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노인들이 설 자리, 살 자리는 많지 않다. 특히 치매를 만났거나 장애가 있다면 더 그렇다.
'가난의 문법'을 읽어가면서 우리 팀 모두 느끼는 것이 있다. 책을 읽다 보면 "도대체 나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막상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는.. 막막하고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는 것.
"물론 이 식당 하나로 치매와 관련된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실수를 받아들이고 또한 그 실수를 함께 즐기는 것, 그런 새로운 가치관이 이 식당을 통해 발신될 수 있다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고 두근거렸습니다. 그 설렘을 주체하지 못하고 2016년 11월, 본격적으로 함께 일할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오구니 시로,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2018: 웅진지식하우스), 18쪽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과 그 뒤를 따라가고 있는 우리가 '노인문제'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다면, 오구니 시로처럼 즐겁고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실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인을, 치매환자를, 더 나아가 내 주변의 한 사람을 과소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들의 존재 자체에 대해 알고, 인정하고, 더불어 살아갈 방법을 찾는다면 어떨까. 요즘 많이 고민하게 되는 포인트이다.
부자든, 가난하든, 장애가 있든, 없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어느 나라 국적을 가지고 있든, 국적을 잃은 상황이든... 인간이라면 모두가 겪게 될 것이 있다.
바로 노인이 되고, 모든 능력이 저하되고, 결국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날이 온다는 것.
그 상황이 되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내가 수많은 실수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면, 내 존재가 누군가에게 부담이 된다면, 나는 타인이 나를 어떻게 대해주기를 바라게 될까..?
"일본의 이 프로젝트는 중요한 점을 시사하고 있다. 바로 주변에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노력이 있다면, 치매 환자도 얼마든지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치매 환자를 과소평가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점이다. 치매 환자를 대할 때 아주 조금만 더 시간을 두고 이해하려는 관용과 배려만 있다면 우리 사회는 소중한 무언가를 얻게 될 것이다." 같은 책, 27쪽
나 또한 노인이 된다.
노인의 문제는 바로 내 문제이다.
나와 상관없는, 먼 이야기가 아닌 짧으면 몇 년, 길어도 몇십 년 후에 내가 마주할 나의 하루이다.
조금 더 고민해야겠다. 지금의 노인들과, 앞으로의 나를 위해.
그리고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함께 읽기]
https://www.yna.co.kr/view/AKR20180809158000005
https://www.asiae.co.kr/article/2017061608380498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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