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항력적인 영구귀국 이후 14년 만에 다시 그곳에 다녀오고 나서, 그 후에는 한동안 괜찮았다.
그곳의 사진을 보는 것도, 그곳에 사는 누군가 쓴 일상의 글들도.
2004년, 몸이 많이 아파 잠시 휴학(인 줄 알고 들어왔으나 결국 돌아가지 못한)을 하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한국에 돌아왔다. 매일 그리던 내 방, 집 앞 편의점, 익숙한 간판들 사이로 돌아왔을 때, 많이 아팠던 몸의 상태가 향수병이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약을 먹거나 물리치료를 하긴 했지만 크게 수술 등의 의료 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조금씩 몸이 나아져갔으니, 아마도 그 원인이 가장 컸을 것 같다.
그런데, 마음이 조금씩 안정이 되면서는 또 다른 마음에 휘말렸다. 두고 온 모든 것이 그리워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너무 떠나고 싶었던 곳, 나중에는 그 언어를 듣는 것조차 너무 힘들어 귀를 막고 싶었던 나라. 떠난 것이 아니라 두고 왔다고 마음이 외치는 것을 깨달은 것은 우연히 튼 티브이에 나오는 내 동네의 모습에 심장이 찢어질 것 같은 아픔을 느끼고는 황급히 채널을 돌리고 나서였다.
그러고 나서 한동안 독일이나 유럽풍의 모든 것을 보기가 힘들었다. 티브이에서 걸어서 세계 속으로 같은 류의 여행 프로그램이 나와도 채널을 돌리고, 서점에서 여행 서적이 있는 곳도 볼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역으로 향수병을 앓고 있었다. 그 증상(?)은 2018년에 연구차 다시 독일 땅을 밟고 나서야 해결이 되었다. 그리웠던 거리들을 구석구석 돌아보고, 늘 궁금했던 나의, 우리의 초록 집 벽을 손으로 쓸어보고 온 후에는 오히려 티브이 프로그램에 그 거리들이 등장하고, 비슷한 풍경이 나오면 반갑고 행복했다. 한동안은 그랬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조금 전 둘러보다 우연히 클릭한 한 블로거님의 글에서 'Frankfurt에서 장보기' 글을 보고 다시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경험했다. 갑자기 다시 2004년으로 돌아간 것만 같다. 단편의 사진을 보고도, 하나의 장면을 보고도 그려지는 프레임 밖의 모습들, 그 건물 밖을 걸어 나가면 펼쳐지는 거리들, 그곳의 냄새와 소리들이 떠오른다.
그리움. 그곳에 살 때는 이곳에 대한 그리움이, 여기에 살면서는 그곳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 삶. 어쩔 수 없는 경계인의 삶. 이제는 여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아직도 독일과 한국의 경계인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여전히 그렇다는 것을, 아니 앞으로 계속 이런 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한국에는 이주배경인들 250여만 명이 살고 있다. 통계청은 2028년에는 대한민국 국민의 10%가 외국인일 것으로 추산한다. 경계인들이 늘어간다. 두 배의 그리움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그립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사랑하지 않으면 그립지 않을 것이기에. 그것이 애증이라 할지라도.
2028년까지의 골든타임 동안 나의 감정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한다. 나 혼자만의 그리움으로 끝낼 것인가,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경계인들과 함께할 방법을 고민할 것인가는 나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어야 하는 것도. 그리움을 가지고 양쪽을 더 사랑할 수 있다면.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더 많이 고민해야겠다. 다시 시작된 향수병, 심장이 아픈 그리움을 붙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