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롯데월드를 사고싶어요.

사랑스러운 Y의꿈 #1

by Sonia

처음 만난 날, Y는 누워있었다. 내가 하는 수업에는 도통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함께 하시는 선생님이 깨워서 몸은 일어나 앉았지만 이내 눈이 감겼고, 곧 다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 녀석이 나를 무시하나? 선생님을 뭘로 보고?'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겠지만 다양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많이 접한 이후여서 다행히 감정이 상하거나 수업을 중단할 만큼의 마음속 어려움은 없었다. 아마도 밤 새 게임을 하다 겨우 몸을 일으켜 학교로 온 게 아닌가 싶었다.

마음속으로, 이번 학기 Y에 대한 최대 목표는 '수업 시간에 앉아서 들어야 할 내용을 듣게 하기'로 잡았다.


몇 차례 수업을 진행하면서 Y에게 상당히 예술가적 기질이 있다는 것과 기질뿐 아니라 능력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예술가적 기질 때문에 올빼미 생활을 하고 있어서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 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나 또한 창작을 위해서는 아침보다 밤 시간에 활동하는 것이 더 집중이 잘 되고, 늦은 밤~새벽 시간에 더 소통이 원활한 사람들이 있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고민이 시작되었다. 내가 그저 Y의 친구 혹은 동료라면 그 시간에 맞추어 함께 살아가고 응원하면 되겠지만, 현재 나의 위치는 Y의 교사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아이의 예술가적 기질과, 그로 인한 시차를 인정해주고 잠을 자도록 두어야 하는 것인지,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게 해 줄 것인지를 정해야 했다. 다행히 우리 학교는 공교육의 시간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창의적 시간 사용이 보장된 대안학교이기에 조금 더 깊은 고민이 가능했다.


문득, 한창 첼로 강사로 대치동 일대를 열심히 다닐 때 처음 만났던, 귀국 후 만난 나의 첫 제자 S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음에도 하루가 과외와 과외 숙제로 빼곡히 차 있던 그 아이의 시간표. 아이는 밥 먹는 것조차 힘들어했고, 의자에 앉아 첼로 활을 드는 것도 너무 큰 에너지가 필요해 보였다. 첼로 수업을 하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수학 선생님이 내 주신 숙제, 영어 선생님이 내 주신 숙제가 가득했다.

그때 했던 생각은 '왜 나는 첼로를 가르치고 있나?'였다. 단지 아르바이트비를 벌기 위해? 그렇다면 시간만 잘 때우면 되는 일이었다. 첼로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사실 그 아이를 위해서는 학교 음악 수행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정도의 역할이 필요했다.

내가 첼로를 배울 때 불행했기 때문에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첼로를 떠올리면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꼈으면 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마음이 아플 때, 껴안고 조금씩 연주하면 기분이 나아지고 위안이 되었으면 했다. 그렇다면 나는 먼저, S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선생님이 되어야 했다. 다른 목표들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S의 첼로 레슨 시간을 위해 되도록 3시간을 비워두었다.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아이가 좋아하고 맛있어하는 것을 먹이는 것. 때때마다 이것저것을 사서 들고 가 보았다. 맛있게 먹는 것을 보는 게 그렇게 좋았다. 먹은 후에는 잠을 재웠다. 허브 오일을 가져가서 두피 마사지, 어깨 마사지를 해주기도 하고, 어떻게든 잠을 푹 잘 수 있도록 했다. 자는 아이를 보며 책을 읽기도 하고 공부를 하기도 했다. (당시 나는 편입 준비 중이었다.) 잠을 푹 자고 일어난 아이는 너무 개운해했다. 그 개운한 기분으로 레슨을 하고 나면, 짧은 시간에도 많은 것을 흡수했고 잘 따라왔다. 어떤 날에는 함께 각자의 숙제를 먼저 하고 레슨을 하기도 하고, 레슨을 먼저 하고 재워두고 나오기도 했다. 선생님, 00시에 깨워주세요!라고 하면 알람이 되어 전화를 해주었다.

사랑하는 S는 지금 첼로를 너무 사랑하는 성인이 되었다. 레슨을 멈추고도 혼자 계속 연습하더니 대학에 들어가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 가입하고, 수석까지 하고 있다고 소식을 들려주었다. 비가 엄청나게 오던 날, 첫 오케스트라 연주를 보러 갔다. 무대의 S는 빛이 났다. 행복해 보였다.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고도 했다.

Y를 만나고, S를 생각했다. 물론 개인 교습 강사와 대안학교 교사로 위치가 달라진 상황이지만, S를 대하듯 Y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매주 만났다.


어느 날 Y는 아침 일찍 파일을 하나 보내왔다. 밤 새 작업한 결과물이었다. 1학기를 마치고 수업 발표회를 하기로 했는데,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상황에서도 먼저 준비를 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듣지 않는 것 같았으나 수업을 들어왔고, 내용을 잘 파악하고 있었고, 자신만의 생각을 담아 고민을 했다니. 그리고 결과물을 이렇게 훌륭하게 만들어 놓았다니.

한 것이라고는 몇 주간 누워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토닥이고, 다음 주에는 짧게라도 얼굴 보여줘,라고 말하고 일어난 날에는 박수를 쳐주고, 깨어있을 때 눈 맞추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준 것 밖에 없는데 아이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 주었다.

결과물을 보내준 다음 주부터 Y는 수업 시간에 앉아 열심히 듣고, 참여하고, 의견을 내고, 자신의 것을 계속 발전시켰다. 결국, 발표 날 너무 훌륭하게 자신의 몫을 다 해주었고, 다른 친구들을 위해서로 자신의 재능으로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 학기 초에 Y를 위해 잡았던 수업 목표, '수업 시간에 앉아서 들어야 할 내용을 듣게 하기'는 이미 달성이 되었고, 아이는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새롭게 2학기를 시작하며 아이들의 열정과 희망을 찾는 작업을 시작했다. 열정 + 희망 = 꿈이라는 공식을 함께 배워가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적어 내려가는 과정 중 Y가 말했다.

선생님, 저는 제2 롯데월드를 사고 싶어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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