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스플레인

내 모습에서 보이는 아저씨.

by 지한


'남자들은 언제나 나를 가르치려 한다. '


몇 년 전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던 시절이 있다. 일명 오빠가 잘 아는데.. 를 한 단어로 줄인 이 단어는 남자들이 여성을 가르쳐야 할 - 열등한 생물체로 보고 있다는 것을 레베카 솔닛이라는 작가가 에세이로 써낸 이후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얻었다.


우리 집에도 설교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나다.

내가 아저씨가 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 계기가 있는데 남편과 찻집에서 차를 마시다가 왜였던가? 내가 남편에게 19세기 낭만주의에 대해서 말을 막 시작하려 하는 참이었다. 그러다가 입을 다물었다. 순간 머릿속으로 남이 원하지도 않는 정보를 설명하려고 하는 게 아저씨 같아!라고 생각 되었기 때문이다.


아저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에게 있어서 아저씨들의 모습은 언제나 술자리에서 뭔가를 설명하는 모습이었다. 그래 아저씨가 아니더라도 남자들이 대부분 그랬다. 말하는 것은 좋다. 문제는 그 정보를 듣는 사람이 원하냐는 아주 다른 문제이다. 개인적인 추론으로는 인정받고 싶다는 남자들의 욕구가 남자들의 맨스플레인을 부추기는 요소가 되는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남자들은 그 경향이 무척이나 강한데 왜일까.


현실치료의 창시자 윌리엄 글래서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5가지 욕구가 있는데 생존, 사랑과 소속, 힘,자유, 재미이다. 그중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힘을 갖고 싶은 마음을 합치면 딱 인정받고 싶은 욕구라고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힘) 그 사람이 나를 호의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사랑) 그것을 합쳐놓으면 딱 인정이라는 욕구 아닐까?

물론 여성에게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남성만의 욕구는 아니다. 다만 남성이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중세에는 랜슬롯이 있었고 근대에는 돈키호테가 있었다. 랜슬롯과 돈키호테가 있을 때 기네비어와 둘시네아는 그들과 싸워서 나도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어!라고 말하기보다는 그들의 극대화된 환상 속에 살았다. 이를 생각해 보면 나는 남성의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는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부족한 내 짐작에는 진화생물학적으로 수컷은 암컷의 관심을 끌고 또 그것으로 자식을 번식해야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안타깝게도 요새의 나에게 그런 모습이 보이고 있다. 남편은 19세기 낭만주의 같은 것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아 할 사람이고 그리고 그거 알지 못한다고 남편의 업무에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몰라도 잘 사는 그런 정보인데 내가 굳이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하기 전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과연 남편이 원하는 정보인가 내가 그냥 말하고 싶어 하는 정보인가? 굳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는 정보인가 아닌가? 더 깊게는 나는 남편을 계몽시켜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가 아닌가?


뜨거운 자기 검열 뒤에 내가 남편을 계몽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좋게 말해서 계몽이지 그냥 설교질이라고 하자. 상대가 원하지 않는 이야기는 그냥 설교질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인정받고 싶은 걸까?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았지만 나는 상대방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없다. 그러면 왜 설교질을 하는 걸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상대도 알고 그걸로 같이 이야기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는 것일까?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만약 정말로 같이 이야기할 상대가 필요했다면 인터넷 커뮤니티를 찾으면 되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나는 이해받고 싶은 게 아닐까 싶다. 상대에게 내가 이만큼 알고 있어라고 자랑하는 대신에 나 이런 거 알고 있는데 너도 나랑 같이 조인할래? 같은 마음. 하지만 이 마음조차 걸스플레인이라는 타이틀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남을 계몽시키려는 마음과 내가 이해받고 싶은 마음은 정말로 종이 한 조각 차이니까.


걸스플레인이라는 행위 자체로 내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게 아닐까? 조금이라도 나의 입맛에 맞게 상대를 편집하려는 의도가 없었을까? 나는 솔직히 확신할 수 없다. 왜냐면 나는 통제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아무리 내가 좋은 것을 가지고 상대와 나누려고 해도 상대가 그걸 원하지 않는다면 그냥 소음에 불과할 뿐이다. 그 사실을 알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 같다. 내가 누나가 말인데... 를 시전하고 있다는 사실. 술자리의 아저씨 같아지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나에게는 전쟁에서 이겨 쟁취할 명성도 없고 그렇다고 옛날 사람들처럼 세상에 이름 석자 알리겠다고 출사표를 던지는 그런 야망 넘치는 사람도 아니다. 집에서 애먼 남편을 데리고 걸스플레인을 실천하는 꼴이 세계를 구하겠다고 나서는 돈키호테와 비슷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구하겠다고 방랑하는 돈키호테 말고 한자리에서 미끼 없는 낚싯대를 드리우는 강태공이 되어야지. 매번 다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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