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천재들은 다들 우울증 하나는 달고 산다던데..
나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나는 멜랑콜리 한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검은 담즙이라는 고대 그리스어를 어원으로 하는 이 단어는 히포크라테스가 '검은 담즙이 과도한 사람은 우울하고 나태하며 정신 이상이 온다.'라고 한 데서 출발한다. 멜랑콜리는 중세 시대에는 신이 내린 저주의 표식을 뜻하고 몇 세기 뒤에 낭만주의 시대에는 광기 어린 천재를 뜻하게 된다. 몇 세기 만에 달라진 이 대접은 곧 20세기 심리학의 발전과 함께 우울증이라는 단어와 동의어가 된다. (어느 면에서 히포크라테스는 정확하게 우울증이라는 병을 예언한 셈이다.)
몇 세기 전만 해도 미친 천재를 의미하는 단어가 어쩌다가 우울증과 동일어가 되었을까? 나는 우울증과 멜랑콜리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멜랑콜리는 약간의 비관적임을 포함하는 예민한 상태에 가깝고 우울증은 그냥 병이다. 끊임없는 자살 충동, 아무것도 즐겁지 않은 마음, 침대 위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몸... 등등 사람마다 양상은 아주 다양하지만 물에 잠겨 질식사하는 것과 같은 것은 똑같다. 물에 잠겨 죽는 병. 그게 우울증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동네의 작은 정신과 병원에서 우울증 판정을 받은 뒤로 30대 중반인 나는 지금까지 계속 우울증을 앓고 있다.
우울증은 표정을 달리한다. 가끔은 조울증 또는 공황장애 등 다른 병이 되기도 한다. 아니면 같이 다니거나. 나 역시 우울증만 앓았던 것은 아니다. 10대 후반에는 우울증 20대 초반에는 조울증을 앓았으며 최근에는 조울증 대신에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같이 왔다. 사실 난 아직도 그 차이를 모르겠다. 그냥 정신과에서 주는 약만 달라지는구나.라는 생각만 든다. 약은 나의 증세를 완화시켜 주긴 했지만 지금까지도 우울의 파도를 내 내면에서 쫓아내는 데는 완전히 실패했다.
우울증은 여러 가지 중독증상과 비정상적인 판단도 같이 불러일으키는데 나는 20대 때에는 과소비부터 정서적 불안으로 인한 타인에 대한 비정상적인 헌신. 그리고 아슬아슬한 알코올중독 증세를 겪었다. 30대인 지금 나의 우울증 증상은 집 밖으로 웬만해서 나가지 않고 외모에 신경 쓰지 않으며 어떤 것을 봐도 행복하다는 감정이 들지 않는 것이다. 나는 무쾌감증을 앓은 지 아주 오래되었다. 조울증과 같이 다니던 20대와 우울증과 같이 다니는 30대. 비유하자면 기름 두른 장작을 두르고 불에 몸을 던지던 20대와 물에 가만히 잠겨 죽을 날만 기다리는 30대 지금 중에서 뭐가 더 나은지는 잘 모르겠다.
낭만주의 시대의 사람들의 생각처럼 멜랑콜리아 - 그러니까 우울증이 나에게 천재적인 재능을 주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과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정신과 병원에서 뇌파 검사를 했는데 내 뇌파는 전부 파란색으로 나타났다. 병원에서는 파란 뇌파란 스트레스에 오래 노출되어 뇌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짐을 말한다고 했다. 떨어진 뇌 기능은 어떤 영향을 주느냐, 바로 내 지능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요즘 예전에 비해서 단어가 생각이 잘 안 났던가? 어쨌든 광기 어린 천재는 나와는 먼 단어인 것이다. 그냥 지능이 떨어진 자살하고 싶은 사람. 그것이 지금의 나를 표현하는 적절한 표현이다.
우울증을 오래 앓은 만큼 정말로 수많은 종류의 약과 - 온갖 민간요법. 그리고 TMS라고 불리는 최신 의학 기술까지 전부 시도해 보았지만 그 순간의 완화만 가져올 뿐 그들은 내 우울의 파도를 완전히 잠재우진 못했다.
현대 의학은 한 번에 몇십 만원씩 드는 TMS 치료를 계속 받지 않은 끈기 없는 나를 탓할지 모르겠지만 우울증이 과연 정말로 낫는 병일까?라는 것에는 아직도 의문이다. (사실 포기했다. 나는 그냥 우울증이랑 평생 살기로 결심했다.)
이는 내 경험에 기인하는데 나의 우울증은 어떤 의사를 만나냐에 따라서 다른 진단을 받았다.
특히 20대의 내 우울증은 다양한 의사를 통해 가끔은 우울증이 되기도 하고 다른 병원에서는 조울증이 되었다가 처음 간 병원인데도 당장 입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증 환자가 되기도 하였다.
암세포처럼 누가 봐도 암입니다! 항암 치료만 하면 됩니다! 이런 병이 아닌 탓이 크겠지만 어떤 의사는 내 우울증을 고쳐보겠다고 심리 치료를 권유했다가 그 심리치료가 내가 당장이라도 죽는 게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일이겠다라고 나를 극단에 몰아넣는 경험도 해봤다. 누군가를 믿고 이 병을 같이 핸들 할 의사를 찾는 것부터가 일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과정이 필수로 따라온다. 그 과정은 우울증 환자를 포기하고 피폐하게 만든다.
노와 나, 그리고 오래되고 작은 나룻배 한 척이 전부인 대항해. 나는 우울이라는 망망대해를 10년 넘게 항해하고 있다. 파도는 언제나 친다. 다만 그 파도가 잔잔하냐 아니면 목숨을 걸 정도로 큰 파도가 차이일 뿐이다. 파도는 피할 수도 쉴 수도 없다.
부디 몸이 파도에 잠기는 한이 있어도 가라앉지 않길 바랄 뿐이다.
아닌가. 가라앉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