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운치 있고 매력적인.

한시에는 거부할 수 없는 고고함이 있는 것 같다.

by 지한


20대 전체적으로 나는 집에 정착하지 못하고 많이 떠돌아다녔다. 내 대학이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도 했고 어머니의 재혼이 그 시기에 맞물려서 집이라고 부를 장소가 없었다. 여름 방학에도 기숙사에서 숙식하며 집에 돌아가지 않았으니 말 다한거지.



그런 나의 붕 떠있는 마음을 달래준 것이 한시였다. 최치원의 추야우중(秋夜雨中)을 20살 때 읽은 것으로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秋風唯苦吟 世路少知音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쓸쓸한 가을바람에 괴로워 읊조린다. 이 세상 뉘라서 내 마음을 알아주리, 삼경 깊은 밤 창밖에 비는 내리고, 등불 앞에 초조한 심사는 만리를 달리네.-한국민속문화 대백과사전)


그때는 그게 고통인지도 잘 몰랐지만 고향을 멀리 떠나 오래 사는 일이 처음이었던 나에게는 고향의 모든 것들이 그리웠다. 그런 나의 마음을 담백하고 고풍스러운 언어들로 엮어낸 최치원의 시는 그 나이대의 나의 지적 허영심과 더해져 나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세상에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없고 내 마음도 어둠에서 만리를 달리는 기분이었다. 외로운 밤이면 돌베개에서 나온 최치원 시 선집을 계속 돌려 읽었다.


최치원으로 시작된 한시에 대한 관심은 금방 당시(唐詩) 대한 관심으로 옮겨갔고 시성과 시선의 시로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나는 두보의 시를 자주 곱씹곤 했다. 꽃 피는 풍경을 노래하고, 사람들의 비애가 가득 묻어있는, 고향을 떠나 그리워하는 마음이 무척 그때의 나와 비슷해 보였다. 두보의 시 중 '강남에서 이구 년을 만나(江南逢李龜年)'를 달달 외웠다. 꽃 지는 계절이라는 단어가 무척이나 맘에 들어서였다. (물론 지금도 제일 좋아하는 시이긴 하지만 지금은 나이가 좀 먹어서 그런지 담백한 이백의 시 역시 자주 보고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한시에 대한 책들을 구하려면 많이는 구할 수없다. 다만 그때의 나에게는 대학교 도서관이라는 좋은 재료가 있어서 많은 한시에 대한 책을 볼 수 있었다. 한시에 대한 구조나 시대에 따른 변화, 압운 같은 지식들도 그때 알아서 아직까지 써먹고 있다. 한시를 필사하고 어설픈 지식으로 제법 멋들어지고 허세 가득한 해석을 써놓기도 했다. 몇 세기도 훨씬 전의 사람들이 지금의 나와 상황은 다르지만 같은 정서적 고통을 겪었다는 것은 제법 퍽 위로가 되었다. 인류라는 거대한 흐름을 보면 나의 고통은 그렇게 큰 고통은 아니구나. 누구나 한 번쯤은 겪고 지나가는 고통이구나.


그때는 무척이나 경제적으로도 빈곤하고 매일 두부 한모와 라면 반쪽으로 연명했던 때였는데 어떻게 그렇게 긍정적이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잘 모르겠다. 아마 어려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지적으로 팽창하는 시기였고 - 훨씬 감성적이었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고통에 가득 찰지언정 특별한 감성의 세상과 내가 세대를 뛰어넘어 이어져있다는 사실에 고무되어서였을 수도 있고..


어쨌든 한시는 내 마음이 분노에 가득 차거나 아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라고 생각되었을 때 훌륭한 도피처가 되어주었다. 아름답고 고고하게 풍경을 노래하는 단어들도 매력적이었고 그 사이에서 흘러 들어오는 시인의 외로움, 광기들이 무척이나 좋았다. 좋은 시구는 시에 미치고 삶이 가난해야 나온다고 했던가? 위대한 시인들은 언제나 달빛을 벗 삼아 술을 마시고, 떠나간 친구를 그리워하고, 세상이 내 뜻을 알아주지 않아 헛헛해하는 등 쉽지 않은 인생을 살고 그 사이에서 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하여 영원의 단어들로 만들어내었다. 한시를 읽으면 세상이 고요해지고 시가 그리는 그 풍경에 내가 앉아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무척이나 좋다. 그 위로는 정말로 한시만이 줄 수 있는 위로라고 생각한다.


요새도 한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영역이라 그런지 신간을 찾을 수 없고 몇 년 전에 나온 구간을 우리고 우리는 일이 계속되는 것 같다. 그나마 김영사와 돌베개가 한시 관련 책들을 틈틈이 내놓고 있던데 나에게는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다. 최근에 내가 처음으로 한시를 시작했던 최치원의 책이 아직까지 서점에서 팔리고 있어서 무척이나 감격했던 경험이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 누가 읽고 있구나. 어딘가에서 버티는 한 또 나 같은 붕 떠있는 영혼이 한시로 위로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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