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혼돈이 낳은 춤추는 별.
이 영혼이 불타는 지옥 같은 우울증 안에서도 그나마 정신줄을 잡고 살 수 있는 이유는 음악 때문인 것 같다.
그중에서도 내가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20세기 초 중반의 현대 러시아 음악 - 소련 음악은 나의 영혼의 마지막 보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위로를 주고 있다.
음악을 통한 구원은 많은 철학자들이 경험했던 바이다. 쇼펜하우어는 의지는 왜곡되어 현상으로 드러나지만 음악은 의지 그 자체가 드러나는 유일한 것이라고 말했다. 철학자로서의 명성보다는 덜 했지만 그 스스로 작곡가였던 니체가 음악에 대해서 한 말은 유명하다. "음악이 없다면 인생은 잘못된 것이다.". 그는 (나중에는 쇼펜하우어를 비난했지만) 쇼펜하우어의 의지를 이어받아 음악은 무한한 인식의 세계 건너 - 인간의 심연, 그리고 삶의 본질 그 자체를 드러내는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하필이면 정신이상으로) 죽기 전까지 피아노를 곁에 두었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음악에 의지하고 위로받았다는 의미겠지.
나의 경우에는, 클래식 음악은 가끔 듣기는 했지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꽤 다양한 스펙트럼의 음악을 좋아하는데도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할 정도로 듣지는 않았다. 그냥 가끔, 현악 4중주나 피아노 소나타는 가끔 마음의 열기를 낮추고 싶을 때 듣곤 했었는데 그것조차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에 한정되어 있고 피아노곡은 드뷔시나 쇼팽같이 19세기의 한정된 범위의 곡들 뿐이었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어디였더라.. 아마 판을 디깅 하다가 우연찮게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의 판을 발견했다. 아무 생각 없이 들고 왔는데 그 찢어지는 듯한 바이올린 소리와 긴장을 고조시키는 트럼펫소리 도대체 어느 타이밍에서 튀어나오는지 모르겠는 피아노 소리가 뭔가 나의 마음을 별똥별처럼 가로질렀다.
쇼스타코비치 음악에 대한 관심은 곧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에 대한 관심 그리고 내가 소련 음악이라고 부르는 음악을 좋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닥치는 대로 듣고 먹어 치울 수 있을 만큼 먹어치웠다. 정말로 나는 소련 음악덕에 구원받았다.
쇼스타코비치도 프로코피예프도 스탈린 정권 시기에 활동했던 작곡가로서 작품에 대한 매우 심한 검열과 밑도 끝도 없는 형식주의라는 공개적인 비난, 무엇보다 언제 제거당할지 모른다는 불안함을 갖고 산 사람들이다. 그 와중 그들의 조국 소련은 나치와의 전쟁을 겪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음악은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와 그에 대비되는 묘한 은밀함이 있다. 정권과 스스로의 예술적인 소신 사이에서 개인의 번뇌. 스탈린의 대숙청으로 이웃이 사라진 황망함 뒤에 나치와의 전쟁을 견디는 당시의 참상. 그 모든 것들이 녹아 매우 독특하고 매력적인 음악을 만들어낸다. 이는 같은 시대의 서양 현대 음악과도 다르다. 리게티, 쇤베르크 등 내가 들어봤던 현대 클래식에서 느꼈던 아방가르드 성향과 무조음악이 두드러지는 것과 달리 소련 음악은 스탈린 때문이던 작곡가들의 의도 때문이던 그 길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파괴적인 구성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음들, 급격한 흐름 등으로 모던한 매력을 뽐낸다. 그것이 내가 느낀 소련 음악의 특징이다.
행복 중독 사회라도 되는 것 같은 요새의 사회는 나를 정말로 지치게 만든다. 서점가를 가도 위로와 힐링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을 고취시키는 책들이 베스트셀러라고 팔리는 시대이다. SNS에는 누구 하나 우울한 사람은 없이 다들 유토피아에 사는 것 같다. 그것이 연출된 - 그리고 누구나 사람들에게 제각기에 불행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지만 뭔가 우울하고 갈 곳 없는 분노로 지옥을 경험하는 나에게 왜 너는 행복해지지 못하니? 내 글을 읽어봐 또는 내 사진을 봐봐, 그럼 너도 행복해질 수 있어. 라며 나를 전시하는 삶을 포기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고 가르치는 듯한 식의 사회는 너무나 숨이 막혔다.
그래 누구 하나는 솔직하고 담백하게 나는 우울하다고 말하는 것이 있어야지. 감정 과잉의 상태에서 외치는 것도 그렇다고 만들어 낸 것 같은 웃음들 사이에서 끼인 것도 아닌 그냥 담백하게 아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 우울하구나.라고 담백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돌파구가 나에게는 필요했다. 그런 나에게 폭발적이다 못해 약간의 광기가 느껴지는 소련 음악은 세기를 넘은 위로가 되었다.
평생 모르고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우연히 소련음악을 알게 되었다. 아슬아슬한 우울증의 파도 위 항해에서 사람에게 받을 수 없는 위로를 음악으로 받았다. 운이 매우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