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 태어났어요
네발에 동그란 얼굴 큰 눈 쫑긋한 귀와 살랑거리는 꼬리. 고양이는 그야말로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서 태어난 완벽한 생물체라고 생각한다.
비단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나뿐만은 아니다. 조크라는 고양이 특별 보좌관을 두었던 윈스턴 처칠은 개는 우리는 올려다보지만 고양이는 우리를 내려다본다고 했다. 그렇다 고양이는 우리를 내려다본다.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고양이 반려인구는 2021년 대비 고양이 반려 인구는 12.7%나 증가했다. 바야흐로 고양이의 시대인 것이다.
나 역시 고양이를 네 마리나 키우고 있다. 3년 전에 한 마리를 데려온 것이 한 녀석 한 녀석 늘어 지금은 네 마리나 되었다. 매일매일이 뛰고 물어뜯고 전쟁터다. 작년 겨울에 산 침대는 이미 넝마짝이 되었고 집에 사람 물건보다 고양이 물건이 더 많다. 나는 고양이 집에 얹혀 산다고 표현한다. 이 친구들이 나의 노고를 아는지 모르겠지만 마음의 위로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고양이는 언제부터 사람과 살기 시작했을까? 유전학적으로 집고양이와 야생고양이가 명확하게 나뉜다고 한다.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고양이는 집 고양이의 유전자를 가진 리비아 고양이를 조상으로 두고 있다. 처음에는 곳간을 지키는 쥐잡이로 인류와의 관계를 시작한 이 친구들은 고대 이집트에서는 신비함을 나타내는 영물이 되고 중세에는 마녀로 몰려서 사냥의 대상이 되다가 현대에는 도시화된 사회에서 독립적이고 주인과의 적당한 거리감으로 개보다 더 환영받는 반려 동물이 되었다.
과학적으로 고양이들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은 그 귀여운 외모도 한몫한다고 한다. 고양이의 동그란 얼굴과 큰 눈은 사람 아기의 얼굴과 비율이 비슷하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분명히 귀여운 외모는 고양이의 생존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 외모로 쥐잡이에서 시작해 반려동물이 된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를 함께 해왔다.
개인적인 사견이지만 고양이를 좋아하는 유명인들 중에서는 우울증을 앓는 것으로 유명한 유명인들이 많은 것 같다. 헤밍웨이, 윈스턴 처칠, 라이너 마리아 릴케, 몽테뉴.. 왜 그럴까? 내 생각에는 개와는 다르게 고양이의 거리감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 특유의 섬세한 영혼에 위로가 되는 게 아닐까 싶다. 개는 분명 따뜻하고 친절하지만 거리감이 너무나 좁다. 그 거리감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고양이는 독립적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주인과의 유대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편견과 다르게 고양이와 주인과의 관계는 친한 친구와 같다. 서로 각자의 영역을 지키지만 또 함께 동지로서 위로를 주고받아야 하는 순간에는 위로를 주고받는다. 그런 부분이 많은 예민러(?)들의 사랑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집 고양이들도 예민한 나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남편은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는데 어린 여자랑 사는 대가로 고양이를 키우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나보다 더 훨씬 고양이를 좋아한다.
우리 집 고양이들은 여자아이인 한 녀석 빼고는 다들 무던한 아이들이다. 심지어 사람인 나보다도 무던한 아이들이다. 잘 먹고 아무 데나 잘 눕고 잘 뛰고 잘 잔다. 언제 한번 길게 쓸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여자아이 하나에 남자아이 셋인데 확실히 남자아이들은 성격이 무던하다. 그중 한 녀석은 보호소에서 구조해 온 10살 정도의 녀석인데 크게 아픈데 없이 어린 녀석들을 패고 다니는 것을 보면 다행이다. 아 열심히 캔값을 버는 보람이 있다!
다만 이 친구들의 수명은 높은 확률로 나보다는 먼저 갈 확률이 높아서 그것이 걱정된다. 오는 데는 순서 있어도 가는 데는 순서 없지만 그래도 확률상으로는 고양이들이 나보다 더 먼저 갈 가능성이 크겠지. 대학 갈 때까지 오래 살아줘야 하는데... 물론 수의학도 예전에 비해서 많이 발달하고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님들도 많아져 고양이 전문 병원들도 많이 늘어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 없는 친구들이라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지 언제나 노심초사이다. 내 목숨이라도 나눠 줄 수 있다면 무척이나 좋을 텐데.
고양이를 키우는 순간 세상 모든 고양이는 내 고양이가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살고 있는 세상 모든 고양이들이 행복하기를 빌어본다. 얘들아 만수무강하자. 아줌마가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