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되었던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는 행복이라는 것은 작은 것에 있다고 우리가 끊임없이 교육받는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는 행복은 쉬운 것이 아니다. 행복은 아아아아아주 어려운 것이다. 스스로 해내기는 더더욱. 그러기에 정신과가 돈을 벌고 우울증 환자들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행복하지 않으니까. 적어도 둘 중 무엇인가는 잘못되었다. 행복이 작은 것에 있다고 말하는 통설이나 아니면 행복이 정말 작은데 있는데 발견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거나.
안타깝게도 작은 것에 있는 행복을 스스로 발견하지 못해 우울증 약을 움켜쥐고 사는 나는 스스로를 행복하게 하는 것을 실패했다. 이 사태를 해결하긴 해야겠고 무언가 방법을 쥐어짜긴 해야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나의 재능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으로 방법을 바꿨다.
이 해결방법에 대해서 곰씨는 이해를 잘 못했는데 (왜?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 안타깝게도 내 재능이 나에게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지만 사회 전체의 공동선으로 보면 어딘가에 쓰임이 있고 그 공동선에 기여하면 공동선의 절대적인 양이 늘어 돌고 돌아 나도 행복해지는 뭔가가 오지 않을까?라는 미신에 기이한 믿음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아무 데도 안 쓰이는 것보다는 그래도 쓰이는 게 낫지 않나.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안 쓰이는 것보다는 쓰이는 게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까?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있다.
사실 거창한 재주가 필요하진 않다.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무례하지 않고 거리감만 잘 지키면 된다. 최대한 사람들을 공평하게 대하는 게 제일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다.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공손한 말씨를 쓰려고 한다. 내 일본인 친구가 말하는 것처럼 한국말에는 존댓말 시스템이 무척이나 복잡해서 (난 일본어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는데) 아직까지도 많이 헷갈린다만 그래도 배워가면서 노력하려고 한다. 물론 무례한 사람에게는 무례하다고 면전에서 말하는 것 역시 제대로 하려고 한다. 절대 뒤에서 말하지 않는다. 뒤에서 말하는 것만으로도 무례하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말하면 그 사람에게 변명할 기회가 생긴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태도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친절들 역시 따라오기에 가끔 곰씨가 보기에는 너무 과한 것 같아 보이나 보다. 특히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게 잘 대해주려고 노력한다. 언제 어떻게 헤어질 사람일지 모르는데 그 순간에 너무 잘해주는 거 아니냐고 곰씨는 언제나 말하는데 반대로 나는 그렇기 때문에 더 잘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한다. 그게 나의 지론이다. 적어도 나중에 생각했을 때 그 순간의 나에게 후회하고 싶지 않다. 물론 돈도 들고 시간도 들고 내가 그렇게 하고도 떠나보낸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적어도 그 뒤에 생각보다 그 사람들이 그립지는 않다. 나에게는 그 시간 자체가 최선을 다 했고 내가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 스스로 잘 알고 있기에 그만큼 나에게도 최선을 다 할 수 있으며 나와 같이 지내는 것으로 충만한 시간을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수많은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물론 나와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낸다고 내 행복지수가 높다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스스로 만들 수 있는 행복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사람마다 필요한 사회적인 교류의 양은 다르겠지만 아마 아예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주변 사람이 행복해지면 언젠가 나도 행복해지는 날이 오겠지. 나는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