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인생을 소비하는 시대.
오늘 우리 집에는 손님이 오셔서 텔레비전이 오랜만에 역할, 일요일 낮에 예능을 트는 일을 했다. (평소에 나는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다) 점심 식당을 예약하려고 다른 방에 있다가 거실로 나왔는데, 다들 소파에 쪼르르 앉아서 뭔가 멍한 듯이 연예인 부부가 컵라면 하나를 나눠먹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닌가. 나는 거기서 매우 기묘함을 느꼈다. 왜 다른 사람이 라면 먹는 장면이 뭐라고 저걸 사람들이 홀린 듯 보고 있는 것인가? 그것에는 특별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요새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흥행하는 시대다. 연애부터 결혼, 심지어 이혼까지 한 번에 실시간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관음 할 수 있다. 원래는 연예인의 (가상의) 연애나 결혼으로 유행하던 프로그램은 우리 같은 보통의 사람들을 섭외하여 더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다.
연애도 종류별로 즐길 수 있다. 초혼, 재혼, 재혼을 바라는 독신 남들의 모임부터 동성의 연애까지 거의 뷔페다. 연애 뒤에는 결혼이 기다리고 있다. 결혼을 앞둔 연예인들이 끊임없이 그들의 경사를 중계하는 프로그램이 수두룩하다. (결혼은 환상의 사업이라 그런지 환상을 만족시켜 줄 재력이 있는 연예인이 아무래도 유리한지라 일반인 대상은 적다.) 환상의 결혼을 대신해 주는 프로그램. 멋지지 않은가?
그 뒤에는 가족의 위기와 별거. 이혼까지. 이는 저명한 심리상담가가 붙어서 실시간으로 코멘트를 남기고 결혼한 패널들이 리플을 단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댓글을 단다. 나의 불행은 곧 남의 즐거움으로 탈바꿈한다.
한 발자국 더 나가서 배우자와의 밤일까지 타인의 관음의 대상으로 탈바꿈시킨다.
이 저명한 심리상담가는 다시 인생의 다음 단계 육아 역시 상담해 준다. 여기에는 사연 있는 아이들이 다음 관음의 대상이 된다. 좋아. 어른까지는 그렇다고 해도. 글쎄. 어린아이까지 관음의 대상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거는 ... 꽤나 복잡한 기분이 든다.
나는 처음에는 이것이 사람들이 나만 이렇게 살고 있는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에 따른 공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저렇게 많은 연애 프로그램과 점점 자극적이고 다양한 포맷이 양산되어야 할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어차피 이렇게 살고 있는 것. 한 번만 보고 위로를 얻으면 되지 무슨 크루아상을 플레인, 소금, 초콜릿 종류별로 365일 먹는 것처럼 종류별로 저렇게 많은 프로그램을 즐기면서 나만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구나를 몇 번이나 리플레이 할 필요는 없으니까.
나는 사람들이 하나의 스토리를 소비하듯이 다른 사람의 삶을 소비하는 시대가 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제 점점 살아있는 사람 보다는 세계 어딘가에 존재하는 '객체'에 가깝게 인식되고 있는게 아닐까? 분명 세계 어딘가에서 일어나지만 나와 관계없는 그렇기 때문에 쉽게 말하고 쉽게 보고 쉽게 소비할 수 있다.
저 사람의 감정적인 어려움이나 고통은 나의 것이 아니다 오롯이 영상에 나와서 고통받는 저 사람의 것이지.
하지만 반대로 화려한 결혼식 등 저 사람의 행복은 나의 것이 될 수 있다. 내가 직접 해보진 못했지만 경험한 듯한 연출과 효과음 등으로 나를 그 세계에 퐁당 빠트린다.
단건 삼킬 수 있고 쓴 건 뱉을 수 있다. 드라마에 빠지는 것과 같다. 문제는 드라마는 허구고 리얼리티는 현실이며 분명 누군가는 고통에 겪는 감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매력 때문에 사람들은 드라마보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더 몰입한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전혀 상처를 주지 않는 그냥 먹다 버릴 수 있는 껌 같은 한없이 가벼운 구경거리.
원래 예부터 불구경 싸움 구경이 제일 재밌는 법이라고 했다고 그 불구경 싸움 구경을 동네 구경이 아닌 광범위하게 만든 것이 리얼리티 아닐까? 사람들은 삼포세대기 때문에 사람들이 연애 리얼리티를 소비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훨씬 깊은 감정. 그러니까 점점 인간들 간의 연결성과 그것에서 파생되는 측은지심 - 인간성이라는 것- 그게 사라진다는 것이 리얼리티를 소비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티브이에 나오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고 객체이다. 나와 연결 되어있지 않아 내가 정신적인 에너지를 쏟을 필요는 없지만 이 세계 어딘가에서 분명히 존재하는. 그래서 깔끔하고 자극적인.
나와의 연결성이 있을 때 그는 사람이 되지만 연결성이 없는 사람은 그냥 단지 객체이고 그의 불행은 나에게 아무런 타격감을 주지 않고 그냥 소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주는 위로감. 얼마나 중독적인가.
점점 더 인간성과 연결성을 상실해가는 시대에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객체일 것이다. 한마디로 그냥 씹다 버리는 껌 같은 존재일 것이고 나의 불행은 그에게 한 줌의 구경거리밖에 되지 않겠지. 나는 사람들이 점점 인간성을 포기하는 이 상황이 옳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물론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다른 사람의 삶에 간섭을 하는 사회였다지만 누군가의 불행을 한 줌의 구경거리로 만드는 사회였던가? 공감보다는 쉽게 누군가의 불행이나 괴로움에 댓글로 훈계질을 날릴 수 있는 사회였던가? 그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