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원한 사랑. 와인.
고량주부터 위스키까지 온갖 술을 섭렵해 온 나지만 누군가 나에게 무슨 술을 가장 좋아하냐고 물으면 난 언제나 브루고뉴 산 와인을 꼽는다.
아델의 노래 중에 ‘I drink wine’이라는 노래가 있다. 아델의 돌아가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아델은 유일하게 마실 수 있는 술이었던 와인 - 한때 그 와인에 찌들어 살았던 시절을 뒤로하고 술을 끊었다고 한다. 그 노래 가사 중에서 어째서 뭐든지 즐거웠던 어린 시절은 떠나버리고 술에 찌든 어른이 되었는지 말하는 가사가 있는데 바로 나라고 하겠다…
그렇다. 금욕적인 어머니와 마약 중독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적절하게 태어나 술을 좋아하는 자식이 돼버린 나. 뭐 적절하게 부모님 두 사람이 섞였다면 섞인 거 아닐까.
주변 사람들 평가에 따르면 술을 꽤나 아저씨처럼 마셔댄다는데 그런 걸 보면 외할아버지가 아주 유명한 술꾼이셨다는데. 내 생각엔 나의 알코올의 세기는 격세유전이 아닌가 싶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는 조금 억울하실 수도 있겠지만.
내가 맨 처음 술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건 와인이었다. 21살 때부터 시작했으니까 꽤나 긴 세월 간 이어진 사랑이 되겠다. 중간에 다른 술에 재미를 붙이는 날도 있었지만 결국은 언제나 와인으로 돌아왔다. 이는 나를 보는 사람들에게도 전해지는지 내가 와인을 마시는 것을 본 누군가는 정말로 와인을 좋아하는 것이 느껴진다고 그랬다. 맞다. 와인은 나의 영원한 사랑이다.
와인의 세계는 위스키의 세계만큼 또는 그보다 더 너무나 다양한 와인들이 존재해서 정말 눈이 어지러울 정도이다.
만드는 나라도 아주 다양하다. 이탈리아 와인에서 프랑스 와인 같은 전통적은 구대륙 와인뿐만이 아니라 스페인 와인들도 요새는 꽤나 힘을 쓰고 있다. 호주와 남아공과 칠레 등 신대륙도 테이블 와인만 내놓는다는 이미지와 다르게 알마비바나 펜폴즈 등 고급 와인들도 많이 나오는 추세이다.
만드는 방식도 다양하다. 유기농부터 내추럴까지. 나는 입이 구식이라 아직 내추럴 와인에는 재미를 붙이지 못했지만.. 내추럴 와인바들이 많이 생기는 것을 보면 분명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무엇인가가 있는 게 분명하다.
그 사이에서 내가 왜 브루고뉴 와인을 맛있다고 생각했는지. 그것이 내 취향이 되었는지 생각해보려고 해도 어렵다. 다만 보르도 와인의 타닌의 끝맛보다는 브루고뉴 와인들의 화사한 향과 팍 퍼지는 부케가 내 입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많은 브루고뉴 와인들 중에서도 특히 샹볼 뮈지니 와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와인이다. 레자무레즈를 맨 처음 마셨던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퍼지는 꽃향, 입안을 맴도는 다층의 과실맛, 완벽한 밸런스. 어떻게 이렇게 맛있는 와인이 있을 수 있을까?라는 감격.
그런 와인에게도 모든 것이 다 좋지만 단 하나. 뷔페처럼 종류별로 마실 수 없다는 점이 단점이다. 와인은 병을 따는 순간 공기와의 접촉으로 산화가 시작되어 익기 시작한다. 한 병을 혼자 다 마시면 배가 부르다. 다음 병은 배가 불러 마실수도, 마신다고 해도 그 길로 알코올 중독자의 길로 가기 십상이니 두병 이상 딸 순 없다.
하지만 마실수는 없어도 모을 수는 있다.
식료품관에 가면 가장 먼저 와인코너를 체크한다. 내가 좋아하는 와인병이 좋은 가격에 남아있는지 체크하는 것이다. 코로나 전에는 찾는 것이 어렵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무척이나 찾는 것이 어려워졌다. 금액은 아주 많이 올랐다. 예전에 마셨던 병을 이제는 두 배의 금액으로 주고 마셔야 한다.
요새의 일을 예로 들자면 샤토 디켐을 찾는데 매우 애를 먹었다. 디켐은 우리 곰씨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소테른 지방의 디저트 와인인데 몇 년 전만 해도 90년대 빈티지도 쉽게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새는 엄청나게 비싸진 가격은 째 치고 최근 빈티지가 아니면 도저히 구할 수 없게 되었다. 이유는 알 수 없다만… 예전에 저렴한 가격으로 마셨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속 쓰린 최근이 아닐 수 없다.
반대로 구하기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와인을 좋아한다는 증거로 받아들여도 될까? 아니면 오퍼스원이나 야마자키 위스키처럼 중국 사람들이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이름 없었던 와인에도 손을 대고 있다는 신호일까.
지금의 와인은 위스키에 비하면 조금 유행이 지난 감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속 40도가 넘는 고도수의 술을 마시는 것은 분명 부담스럽지만 한 병으로 모두와 나눠먹을 수 있는 15도 정도의 술은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다. 아마 와인은 좀 더 오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거고 - 나 역시 몇 번이고 와인으로 돌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