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한 Sep 24. 2023

고양이 푸름이

나도 고양이를 임시보호 하게 되었다!

우리 집은 고양이가 네 마리나 있고 마당에서 15마리라는 많은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임시 보호라고 불리는 고양이가 자기 집을 찾아가기 전에 하는 탁묘 같은 것은 하지 않고 있다.. 만 갑자기 푸름이란 친구를 임시보호 하게 되었다.


푸름이.

외국에 자주 나가는 주인 놈 덕분에 우리 집 고양이는 시터분이 집에 오셔서 고양이를 돌봐주시는 경우가 많다. 한 시터분이 오래 맡아주시다 보니 시터분이랑 우리 집 고양이들 건강에 대해서 이야기도 하고 마당 고양이들 이야기도 하고 하다 보니 연락을 자주 주고받게 되었는데 그분이 구조하신 고양이 친구가 갑자기 갈 곳을 잃어서 우리 집에 부탁할 수 없겠냐고 물어보시는 것이다.


평소였으면 극구 반대했을 남편이지만 (왜냐면 분명히 내가 임시보호 하다가 키울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얼마 전에 자살시도 때문인지 아니면 임시보호라는 말 때문인지 크게 반대하지 않고 쉽게 받아주었다.


푸름이는 구조하신 분이 전에 구조하던 친구를 고양이별로 보내고 장례식장에서 나오는 길에 만난 친구라고 한다. 그것도 비 오는 날. 비 오는 날 경기도의 한 장례식장 근처에서 등장했는데 목에 어디 짐승에게 물렸는지 커다란 상처와 털이 다 뜯겨 텅 빈 목덜미로 구조자님을 따라왔다고 한다. 구조자님은 마음이 쓰여 캔을 주면서 오랜 시간 고민했지만 결국은 푸름이를 두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던 게 구조자님 댁에도 이미 역대급으로 많은(18마리의 아깽이라고 들었다) 입양 보내야 하는 아이들이 있어서 푸름이를 데려갈 자리가 부족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푸름이와 구조자님의 인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아서 결국 눈에 밟힌 그 친구를 외면하지 못하고 구조자님은 서울에서 다시 경기도로 간다. 그 근처에 푸름이를 알고 계시는 분에게 그 친구가 등장하면 알려주세요라고 말하고 몇 날 며칠을 잠복수사를 하던 중 푸름이가 구조되고 수술과 한 달간의 입원생활, 그리고 또 대학생 집에서의 한 달간의 임시 보호 생활 끝에 우리 집에 오게 된 것이다.


구조자님은 푸름이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고 말씀하셨는데 푸름이가 순하고 - 사람을 너무 믿는 본인의 모습을 본다고 말씀하셨다. 고양이를 구조하는 일을 10년간 해오셨는데 아무래도 보수를 받지 않고 마음 하나로 하는 일이다 보니 자신들의 스타일이 강하고 - 사람들끼리 부딪히는 경우가 무척이나 많은 것 같다. 얼마 전에 자신과 같은 고양이를 구조하는 일을 하는 구조자 분이 돈 2만 원 할인받겠다고 본인이 소개해준 동물병원 원장님께 갑질을 해 상황을 난처하게 만드는 등 (하필이면 그날에 푸름이를 임보 한다고 하신 분이 새벽에 임보가 어렵겠다고 문자 한 통으로 임보를 포기하셨다고 해 무척이나 힘든 하루였다고 한다) 같은 구조자들 사이에도 상식을 벗어나는 일들이 생겨 아, 내가 놓기만 하면 다 되는 일인데 생명을 살리는 일이 뭐라고 이 일을 하고 있나.라고 자조하면서도 내가 한번 견디면 한 생명이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고양이를 구조하는 일을 10년이나 하고 있다는 분.


순하고 사람을 좋아한다는 푸름이는 어째서인지 우리 집에서는 구석에 숨어서 나오지 않고 있다. 낯선 집이라서 그런다기에는 다른 집과 다른 환경에서도 비교적 원활하게 적응했던 걸로 보이기에 더욱 걱정이 앞선다. 아마 우리 집에 고양이가 너무 많아서 낯선 동물들에게 공격받았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잘 적응하면 좀 더 넓은 세상에서 즐거운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을 텐데 안타깝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하다.


이 동거생활의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푸름이가 이런 세상도 있구나.라고 알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 조금은 세상을 믿는 그런 경험이 되길 빌어본다.

너도 나도 존버해 보자.

작가의 이전글 자살시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