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신명님. 저를 도우소서.
미래를 알려고 하고 좋은 운수를 비는 것은 인류의 탄생과 같이 했다. 제사장이 없는 문명은 어디에도 없다. 가끔은 사람을 죽여서 공물로 바치기도 하고 동물을 바치기도 하고 거북이 등껍질의 글자를 읽어 운수를 파악한다.
동물이 있었고, 하늘이 있었고, 별이 있었고, 태양이 있었다. 그리고 종교가 등장했다. 무언가에 더 나은 것을 비는 부질없는 행위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계속 반복되어 왔다.
요새의 나는 운세에 일희일비한다.
사실 몇 달만 자세히 뜯어보면 운세앱이 나에게 하는 말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대충 예상해 보건대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서 랜덤으로 몇 개의 문장을 뽑아내 조합해서 수많은 경우의 수를 결괏값으로 출력하는 것 같다. 내 뇌는 이게 그냥 컴퓨터가 뽑아낸 어떠한 랜덤의 결과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않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거나 일이 될 것 같다가 앞에서 넘어지는 일을 반복하게 되면,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능숙하게 잘 흘러가는 일들이나 내 의지와는 관계없는 일들이 계속 반복된다면 안타깝게도 나도 사람인지라 운을 탓하게 된다.
그리고 요새의 나는 정확하게 그렇다. 가장으로서 책임져야 할 것은 너무 많은데 되는 일도 넘어져서 엉엉 울고 있는 나를 도와주는 사람조차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정말로 운만이 나를 도울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다. 아주 터무니없을 정도의 일말의 가능성. 그것만이 지금의 나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가능성에 밖에 매달릴 수 없다.
끊임없이 점성술사에게 묻고 묻는다. 돈은 언제 도나요? 저의 운은 언제 풀리나요? 제 앞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물론 점성술사는 다 부정적인 대답을 내놓는다. 그리고 사실이다. 지금 내 앞의 문제들은 하나도 해결되지 않는다.
아니면 수많은 운을 이미 가져다 썼기 때문에 중요한 순간 더 이상 가져다 쓸 운이 없는 걸까?라고 생각하는 마음과 신은 주사위 게임을 하지 않는다. 운은 수많은 확률 중 하나일 뿐이다. 일단 신의 존재부터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말하는 머리가 있다. 이런 내 머리…
운이란 정확하게 무엇일까? 자연, 환경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수많은 네트워크 안에서 교류의 때가 맞으면 터지는 반응을 아마 운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것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좋은 화학적 반응이 터지면 좋은 운이라고 하고 나쁜 화학적 반응이 터지면 나쁜 운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 나는 추론한다. 그렇다면 운에 대해서 사람들이 하는 말은 대부분 맞다. 내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네트워크 안에서 화학적이 반응이 터지기도 하지만 천재지변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니 피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마 나는 이 상황들이 나아질 때까지 끊임없이 점성술사를 괴롭히고 점괘를 뽑는 짓을 반복할 거다.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으니까. 사실 점괘가 좋은 결괏값을 준다고 해서 내 운이 풀리는 것은 아닐 텐데도 그래, 나는 뭐든지 잘될 거라는 마음의 위로와 확신을 얻고 싶은 거일 테지.
오늘 새벽 나는 주역점을 하나 뽑았다.
천우신조. 하늘이 돕고 신이 돕는다. 극적인 상황에서 탈출하거나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을 거란 일이 이루어지는 점괘라고 한다.
나는 이걸로 또 며칠을 견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