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불행을 관음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내가 요새 내 불행에 대해서 전시하며 씨부리면서 느끼는 건데 생각보다 행복한 사람들 찾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다. 돈 있는 사람들은 남의 가난을 빌려서 가난 코스프레까지 해가면서 불행을 뒤집어쓰려고 하고 돈 없는 사람들은 그냥 돈이 없어서 불행하다. 지금 한국 사람들은 모두가 불행한 것 같다.
실제로 정말 잘 팔리는 글은 가만히 보면 불행에 대한 글들이다.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내가 시가에 대해서 온갖 자료 조사와 경험을 토대로 공부를 해서 쓴 글 보다 내가 약 먹고 자살한 이야기가 더 잘 팔리다니. 음... 사르카즘이지만 불행을 잔뜩 글로 전시해서 내 불행 모음집으로 책이라도 한 권 낼까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다. 왜 불행한 글에 반응할까 사람들은?
아마 본인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것 아닐까? 아니면 남의 불행을 보면서 야 너도?라는 위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일까. 요새의 한국사회의 모든 것들은 아주 양극단인 것 같다. 극단적으로 잘난 모습을 보이거나 아니면 극단적으로 비관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둘 중 하나뿐으로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인류라는 거대한 흐름을 보면 제각기 이유로 불행한 사람들은 많았다. 사실 행복한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울 지경이다. 얼마 전에 일생을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산 클래식 작곡가들은 누가 있을까?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래 봐야 리스트 - 바그너 정도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 자식이 많아서 평생 노비 같이 일해야 했지만 자식이 대성한 바흐도 있다. 나머지는 정신병에 걸리거나 자살 시도하거나 요절하거나 아니면 당국의 압박에 미국으로 망명하거나 아니면 당국의 선전 도구로 이용되거나 등등... 뭐 하나 정상적인 사람이 없었다.
막상 인생에 큰 걱정 없이 잘 먹고 자식들 많이 낳고 잘 산 사람들 생각해 보면 그렇게 생각나지 않는다. 누가 있을까... 사실 나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신은 아주 잔인하고 냉정해서 모두 가진 사람을 절대 두지 않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한 번씩 실패를 준다. 물론 그 실패의 기준이 남들이 봤을 때 대실패냐 아니면 그냥저냥 한 실패냐의 차이일 것이다.
이렇게 실패한 사람들만 모인 인류에서 성공한 소수의 사람들은 추앙받고 역사에 이름 남기겠지만 요새 들어 그 소수의 사람들을 추앙하는 분위기는 더욱더 심해진 것 같다. 정말로 성공하기 힘든 시대여서 그런 것 일 수도 있고 사람들의 '성공했다'라는 기준이 매우 냉정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후자의 경우라고 한다면 실패하는 사람들은 확률적으로 더욱 많이 늘어나게 된다. 예전에는 고만고만했던 갑순이의 행복도 요새 시대에는 행복 축에도 못 끼는 불행이 되는 것이다.
기술의 발달은 불행을 계속 찍어내고 있다. 마르쿠제가 그러지 않는가? 인간은 허위의 욕구와 진실한 욕구를 구별하지 못한다고. 아마 마르쿠제가 지금을 봤으면 "봤지? 내 말이 맞다고!"라고 했을 것이다. 제각각 다른 옷을 뒤집어쓴 똑같은 욕구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그 제각각 다른 옷을 뒤집어쓴 똑같은 욕구는 분명 기술의 발전에서 온 인간들 서로가 만들어내는 환상일 것이다. 그와 같은 원리로 사람들은 기술의 발전으로 나와 다른 옷을 입었지만 비슷한 얼굴의 불행을 가진 사람들을 금방 찾아낼 수 있다.
아마 그래서 내 자살 모험기가 꽤나 인기가 있는 것 같다. 누구나 자살은 하고 싶지만 나처럼 약을 와장창 먹으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은 분명 드물었을 테니까. (다시 말하지만 그런 멍청한 짓을 하는 사람은 나 하나로 족하다.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라고 해도 굳이 복어 독을 계속 먹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사람들은 백 명인데 백명의 사람들의 행복은 10가지가 안 되는 것 같다. 그 사이에서 나 역시 나만의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지만 쉽지 않다. 정신과 의사는 나에게 우울증으로 인한 무쾌감증이라는 진단을 내렸지만 글쎄.. 물론 그것도 있겠지만 나는 내 인생을 컬러풀하게 칠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언제나 인생이라는 캔버스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그릴 줄 모르는 멍청이가 된다.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비슷하지 않을까?
그러기에 기술의 발전을 무기 삼아 다른 사람이 그리는 캔버스를 모방하려는 시도를 하니 옷은 각기 다른데 비슷한 얼굴의 행복을 쫓아 - 불행을 가지고 사는 것이겠지.
나는 내 캔버스에다가 무엇을 그리고 싶을까? 뭘 그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