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한 Oct 21. 2023

마음

영혼의 빛이 사라지고 있다. 곧 휴식이다.


지금의 나는 영혼이 빛을 잃어 몸과 분리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 미친 소리 같겠지만 정말 딱 그렇다. 

사람이 수많은 불행을 계속 맞다 보면 영혼도 닳아 없어져 빛을 잃는다고 생각한다. 파도의 풍파를 이기지 못해 동글동글해진 자갈처럼. 차라리 이건 비유가 낫다. 사실상 해안침식이 계속되고 있다. 계속 내 마음의 해안선은 후퇴하다 못해 마지막 남은 해안절벽도 곧 없어질 위기이다.


우울증의 여러 단계를 겪었지만 지금처럼 스스로를 완전히 놓는 일은 약을 먹고 실려갔을 때 말고는 없는 것 같다. 나는 나에게 안식을 주고 싶다. 언제나 나에게 안식을 주고 싶었지만 그전에는 자해에 가까운 분노의 감정도 함께 했다면 지금 내 마음은 아주 평화롭다. 그냥 나는 이 생에서 할 만큼 했고 더 이상 희로애락을 맛보고 싶지도 않다.


사람은 약간의 희(喜)로 지옥 같은 얼마간을 살아간다. 데드풀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인생은 괴로움의 연속이고 행복은 짧은 광고와 같다고. 데드풀과 나의 다른 점은 데드풀은 정규 방송으로 돌아갈 시간이라고 했고 나는 마지막 방송을 찍고 싶다는 것 그 차이뿐이다. 왜냐면 나의 삶에는 그 긴 정규방송을 쉬어갈 짧은 광고조차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지.


나 스스로를 원망할 기운조차 없다. 사실 나는 일들이 잘 안 풀릴 때 나를 자학하는 방법을 선택하곤 했다. 이는 내가 어떤 일이던 정확하게 답을 내는 것을 좋아하는 습성에 따른 것인데 가끔은 - 그리고 특히나 인간관계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 나를 탓하는 게 편하다. 아 내가 뭔가 잘못해서 틀어졌겠지. 아 내가 뭔가 그 사람이랑 맞지 않았겠지. 등등등.. 일단 내 탓을 하면 편하니까. 근데 이제는 일을 조진 것에 대해서 나 스스로를 원망할 기운조차 없는 것이다. 


자 감정의 해안 침식이 되다 못해 이제 곧 쓰나미가 몰려서 해안을 다 박살 낼 것이다. 나는 내 해안이 무너지고 박살 나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해 죽음을 한번 택했었고, 내 죽음은 남에게 비웃음거리가 될지언정 깊은 이해를 받지 못했다.


곧 쓰나미가 몰려온다. 나는 나 스스로를 더 이상 견딜 힘이 없다.

나는 이제 나를 편하게 해주고 싶다. 그동안 충분히 고생했다.

더 이상 내가 삶을 이어가는 것은 내가 나를 가학 하는 행위이다.

나는 나를 위해서 나를 놔주고 싶다.


전에 내가 쓴 글을 리마인드 해보니 이럴 때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라고 하던데 사실 정신과 의사도 나에게 약을 주거나 입원을 권유할 뿐일 것이다. 하지만 가장인 내 현실에 입원은 정말 쉽지 않다. 오죽하면 내 소원이 벽돌에 머리를 맞아 한 달만 중환자실에 누워있었으면 좋겠다이겠는가? 현실은 나를 입원의 사치조차 누리지 않게 한다. 나는 집안의 대출금을 갚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온갖 비용을 대야 하며 남편이 아직 사업으로 남긴 빚까지 처리해야 한다.


약이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건데, 내가 우울증을 깊게 앓고 있다고 하면 몇몇 사람들은 약에 의존하지 말라고 한다. 근데 사실 행복을 쉽게 만들어 내는 것은 마약 아니면 고 카페인을 죽을 만큼 마시는 것 아니면 정신과 약 밖에 없다. 우울증 환자에게는 사실상 약을 먹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마약중독자인 아버지를 둔 탓으로 나는 고등학교 때 조울증 판단을 받았지만 엄마의 자식의 대한 부정과 함께 '니 아버지 닮아서 약 엄청 좋아한다.'라는 딱지를 받았다. (내 무덤 묘비에 새겨야겠다.) 이렇게 말하면 우리 어머니가 정말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냥 전생에 원수가 현생에는 부모로 태어난다는 말을 몸소 실천하시는 보통의 대한민국의 부모이다.

다만 나에게는 특수하게도 약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버지가 있었고 그것을 어린 자식에게 투영하여 비난하는 훌륭한 어머니를 뒀다 보니 나도 정신과 약으로만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약쟁이가 되었나 보다. 



이 모든 것은 나의 마음의 소리이다.

내 해안에 쓰나미가 몰려오는 것을 나는 무기력하게 바라볼 예정이다.

내가 나 스스로 해안을 폭파시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비난이 가득했지만

누군가 내 해안을 폭파시키는 시도는 적어도 실패는 없을 것이고 비난조차 없이 일부의 외면 또는 싸구려 위로 그리고 몇 안 되는 사람의 진정한 걱정만 받겠지.



이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를 쉬게 해 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향(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