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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한 Oct 26. 2023

이태원 참사 1주년

그럼에도 이태원에서 누군가는 살아가기에.


이번주에도 도쿄에 갈 일이 있어 숙소를 잡으려고 보니 주말이라고 해도 생각보다 너무 자리가 없다. 왜 그럴까 가만히 생각해 보았더니 그렇다. 핼러윈 데이가 낀 주말이라 딱 금요일에서 토요일 넘어가는 그날만 자리가 그렇게 없었던 모양이다.


작년 핼러윈데이가 생각난다. 우리 집에서 순천향대 병원은 차로 5분 정도 거리다. 밤새도록 한남대로를 달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새벽 내내 티브이 건너편으로 늘어나는 사망자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태원은 누군가에게 참사로만 기억되겠지만 나에게는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다. 그 터전이 한순간에 죽음의 장소로 기억되는 것은 분명 누구의 잘못이 아닌데도, 고통스럽기 그지없다.


지금 이태원은 매우 조용하다. 물론 나 역시 근본도 없는 핼러윈 축제가 열리는 걸 달가워하는 편은 아니다. 진짜 용산구민들은 핼러윈 때 그곳에 가지 않는다는 용산구민들의 국룰이었다. 그런데 이런 거대하고 가슴 아픈 사건이 터질 줄이야. 정말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작년 이 무렵에는 용산구에서 주최하는 이태원 세계문화 축제가 열렸다. 이태원 대로를 차량 통제로 막아두고 열린 축제는 터키 아저씨가 판매하는 양갈비를 먹으며 역시 터키 사람들은 곧 세계를 정복할 거야.라고 웃곤 했다. 다른 어느 축제에서도 볼 수 없는 둠칫거리는 클럽 음악을 들으면서 역시 이태원 축제는 힙하구먼 하고 용산구 주민으로서 뿌듯하기도 했다. 레게 머리를 땋아주는 아프리카 부스와 함께 파전을 굽는 동네 어르신 부스가 함께하는 광경은 정말로 용산구라서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물론 그 역시 이제는 참사 앞에서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작년 이 무렵 사진이라고 추천해 준 알고리즘이 아니었다면 올해의 나는 기억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참사 1년으로부터 무엇이 변했을까 생각해 보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이태원의 경기 침체는 참사의 문제보다는 전반적인 경기 침체의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은 또 삶을 살아야 하는 것처럼 눈치 보다가 열리지 못한 세계문화 축제처럼 이태원은 아직도 참사의 눈치를 보는 중인 것 같다. 


이태원에도 많은 사람들의 삶이 이어지고 있다. 그 독특한 다양성은 어디서도 찾기 어려우며 그래서 아마 그 많은 젊은이들이 핼러윈 데이에 몰렸을 것이다. 상처를 짜내고 고름을 짜내는 일들은 분명히 누군가를 아프게 만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은 흘러가며 딱지를 만들고 아물게 할 수밖에 없다. 사실... 상처를 쪄내는 일을 유가족의 희생만이 아닌 좀 더 유가족들과 참사에 관련된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되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만 관련 다큐멘터리조차 볼 수 없는 것을 봐서는 아직은 요원한 길 같다.


이태원은 다시 그 건강하고 튼튼했던 다문화의 영광을 찾을 수 있을까? 용산구민으로서 다시 세계화 축제에서 터키 아저씨의 구수한 한국어 솜씨를 들을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많은 분들의 응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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